무등을 보며 - 서정주
무등을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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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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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공론>(19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