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려 - 유치환
나는 초려의 까마귀, 고독에 암울한 나의 나날을 어디로 향을 하고 이 포호를 보내랴
뉘는 이르기를 세월이 좀먹느냐고, 아니로다 아니로다
일순의 멎음 없이 사멸하여 가는 시간을 정녕 나에게서 볼지니
냉혹히 내 위에 임하여 나보다 오직 완전하고 영우너한 그의 존재를 증거하기 위하여 나는 여기 왔거늘
만저보라 각각으로 목석같이 굳어 가는 나의 안타까운 목숨의 단층을
아아 이미 회한에 낡아 빠진 이 초려를 박제하여 등에 지고 광야같이 저물은 저자에 서서 나는 나사레 사람처럼 까마기처럼 외쳐 이를 증거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