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매체에서 동양 검객 대표가 사무라이인 이유
우리는 어째서 늘 왜구에게 패하였는가. 단도끼리 붙게 되면 우리는 항상 그들보다 훨씬 못하였는데, 이것은 이른바 능한 자와 능하지 못한 자가 겨루는 것과 같았다.
.....하물며 그들이 장도를 가지고 번쩍 휘두르고 춤추며 들어오면 우리병사들은 용기를 잃어버리기 일수였다.
-척계광 『기효신서』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중략) 신의 아랫사람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칼을 쓰는 묘리는 왜인들이 최고이다. 그러므로 일향수(日向守) 애주이향(愛洲移香)은
"꿈에 신(神)이 원숭이 모양으로 나타나 칼쓰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름을 음류(陰流)라고 한다." 하였다. 우리나라 군교(軍校)인 김체건이 일찍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들어갔다가 그 방법을 배워 와서 지금까지 유전하니, 이른바 왜도(倭刀)라는 검술이다.
-『병학지남연의』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왜적은 실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왜적은 철환(鐵丸)을 비 오듯 퍼붓는데 한번 맞기만 하면 곧바로 쓰러지고 근접해서는 칼을 사용하는데 그 검술이 지극히 기이하니 이들은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고 하겠다.
- 『포저집』
단도(单刀)란 왜노들이 만드는 칼인데 단련이 정교하며 만듦새가 가볍고 예리하니 다른 지방의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검신의 빛나는 광채가 눈을 쏘아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그 용법은 좌우로 도약하는데다 기이한 방법으로 의도를 숨기니 인력으로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장병기가 항상 짧은 칼에 패배하였다.
-『단도법선』 단도설(单刀说)
검술은 유래가 오래되어... 수십 번을 안과 밖을 뛰어넘는 것이 마치 금수(禽獸)와 같으며, 더러 늘 경쟁을 시켜 사심(死心)을 앞다투어 발휘케 하는데 칼을 휘둘러 서로 치며 반드시 죽이기를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의검법이 있습니다. 근기(近技)는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다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인데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그 이유는 명나라 명장 척계광도 인정 할 정도로 검술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동시대에는 일본이 칼이었다면
당시 조선은 활이 가장 유명했었는데도 활하면 조선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잖음 선비 이미지만 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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