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방민호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옷 없는 짐승들처럼 골목 깊은 곳에 단둘이 살 때
우리는 가난했지만 슬픔을 몰랐다.
가을이 오면 양철 지붕 위로 감나무 주홍 낙엽이 쌓이고
겨울이 와서 비가 내리면 나 당신 위해 파뿌리를 삶았다.
그때 당신은 내 세상에 하나뿐인 이슬 진주
하지만 행복은 석양처럼 짧았다.
내가 흐느적거리는 도시 불빛에 익숙해지자
당신은 폐에 독한 병이 들어 내 가슴 속에 누웠다.
지금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침을 뱉는다.
시간이 물살처럼 흐르는 사이
당신을 잃어버린 내게 남은 건
상한 간과 후회뿐
그때 우린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나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백열등 하나가 우리 캄캄한 밤을 지켜주던 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