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리뷰
-서론
저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합니다.
예전에 '러프' 리뷰를 했었을 때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들은 대개 소년만화인듯 소녀만화인듯 그 경계에 서있거든요.
물론 주인공은 하나 같이 재능이 뛰어나서 150km 속구를 던진다거나,
수영 천재거나,
복싱 천재인 점은 매우 비현실적이긴 하죠.
히로인들 또한 하나같이 개성 있고 매력적이고
뭣보다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을 눈빛만으로 알아채고요.
주인공은 스포츠 만화라면 겪어야 할 모든 시련을 재능으로 가뿐히 뛰어넘고,
히로인은 순정 만화라면 겪게 되는 주인공과의 갈등이나 생각 차이 같은 것을 눈빛교환만으로 해결합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스포츠 만화로써도, 순정 만화로써도 한끗 부족한 그런 작품들이죠.
하지만 저는 그런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따듯하고, 인간적인 감성들이 섞여 들어있거든요.
망설임, 어설픔, 조숙함, 그리고 사춘기의 설렘 등...
다른 만화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터치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보면 대개 등장인물들이 어떤 시련을 겪을 때, 갈등을 겪을 때
다른 만화처럼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독백으로 줄줄 외면서 해결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일이 해결된 후에서야 나중에 '아, 사실은 이랬구나'하고
독자들에게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등장인물들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건 흡사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타인의 상황을 알게 될 때와 매우 비슷합니다.
결코 그 당시에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당사자와 그 상황을 직접 본 사람만이 알 뿐이죠.
우리는,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사실은, 그게 그랬다ㅡ'
하고 말이죠.
'터치'는 유독 그런 장면들이 많습니다.
'러프' 또한 미묘하게 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들은 많지만 조금 다릅니다.
'러프'는 정말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고,
'터치'는 정말 타인과의 관계 같은 느낌이 강하다는 걸 말이죠.
같은 야구만화인 'H2'도 이것보다는 직설적이고,
복싱 만화 '카츠'도 비슷하지만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그 외 '크로스게임'이나 'MIX', '미유키' 등의 작품은 본지 꽤 오래 전 이야기라 말을 못하겠네요)
-터치(2)
'러프' 리뷰를 쓰고 난지 한 1년 반정도 지났지만,
그 뒤로 한번도 아다치 미츠루 작품의 리뷰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만화 작가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데 말이죠.
바로 '터치'에 관한 엄청난 리뷰를 봐버렸거든요.
한번 어떤 작품의 리뷰를 보고 나면 왠지 따라 쓰게 될 것만 같아서
그 작품은 리뷰를 안 쓰는 경향이 있는데
얼마 전 갑자기 '터치'를 다시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그게 다일까?
그때 제가 읽은 작품에서는 '터치'의 터치를 초반부에 나왔던 달리기의 바통터치,
그 연장선으로만 해석해서 꿈을 잇는 작품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있더군요.
카즈야가 너무 갑작스럽게 죽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터치' 관련된 리뷰를 읽어보거나, 아니면 작품을 깊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의미죠.
그때는 저도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요.
-터치(3)
본론으로 돌아가기 앞서 그때 제가 읽었던 그 리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 리뷰는 H2와 엮으면서 H2는 4명의 이야기,
터치는 미나미의 꿈을 이뤄주려던 카즈야의 꿈을 이어받는 타츠야의 이야기,
정도로 해석했습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H2는 4명이 확실히 부각됐지만,
터치는 읽고 나니 타츠야와 미나미도 생각났지만
그와 못지않게 그 주변인물들이 더 생각나더군요.
항상 카즈야, 타츠야를 찾으며 징징대던 코타로나,
처음엔 원한을 품고 감독직을 맡았지만 결국에는 뜨거운 여름,
갑자원 신화에 동참하는 카시와바 에이지로,
결국 못이기는 척 호박 소꿉친구와 이어지는 니시무라 등등..
물론 H2에도 사연 깊은 조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빚쟁이 아버지를 가진 시마나 야구에 안 좋은 기억을 가진 슈우지 등이 말이죠.
그래도 저는 왠지 읽으면서 이들은 왜 히로의 팀이 갑자원에 갈 수 있는 강한 팀인지,
그러니까 히로와 주연 4인방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조연들로 밖에는 안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터치'는 달랐습니다.
-터치(4)
저는 '터치'를 읽으면서 왠지 '인연'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더군요.
니시무라와 그 소꿉친구도 인연이고,
코타로가 카즈야와 배터리를 맺다가 결국에는 카즈야와 배터리를 맺게 된 것도 인연이고,
에이지로가 감독을 하면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도 인연이고.
카즈야도 타츠야도 미나미도 터치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인연으로, '터치'로 이어져있습니다.
조연들이 하나 같이 개성이 강한 H2와는 다르게 말이죠.
'터치'의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서로가 없다면 무너질 것만 같은 인물들입니다.
과연 하라다의 조언이 없었다면 타츠야가 갑자원 우승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요?
닛타의 여동생이 없었다면 사사키는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터치'의 터치는 과연 바통터치일까요?
터치는 바통터치처럼 뒷사람에게 맡기고 쉬러 가버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터치로 이어져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쉽게 말해 인연이죠.
물론 미니미의 꿈을, 카즈야의 꿈을 타츠야가 이어받긴 합니다만 그건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특히 하라다의 정신적 조언이 없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인연이라는 뜻은 23권에서 감독의 말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죠.
"타선이란 말을 아나? 9명의 바보들이 한 사람씩 타석에 들어가 봐야, '선'이 되질 않지."
점수를 내기 위해 만드는 타선처럼, '터치'의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긴 선으로 이어져있었습니다.
-결론
'러프'가 미완성인 자신들을, 그리고 타인을 알아가는데 집중했다면
'터치'는 그들이 이루고 있는 관계에 더 집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답게, 그리고 실제 타인의 관계처럼
알게 모르게 또 미묘하게 숨깁니다.
설령 그 타인이 소꿉친구라고 해도 알아채기 어렵게 말입니다.
서로가 관계를 맺고, 그것이 긴 선이 돼서 누군가는 지탱을 해주고,
누군가는 꿈을 이뤄주며, 또 누군가는 치유 받고, 누군가는 사랑을 하는,
그것이 바로 아다치 미츠루가 '터치'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터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