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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분이 줬던 소설인데
후유네코 | L:53/A: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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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1-0 | 조회 2,315 | 작성일 2013-10-08 18: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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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분이 줬던 소설인데

블로그도 폭파하고 실수로 포맷하면서 사라질 뻔해서 츄잉에 백업해둠

딱히 다른 곳에 올려둘 곳도 마땅히 읍고 게이버 아이디는 전부 해킹당했고

 

뭐 소설 지망생은 보통 이 정도 쓰는 구나~하고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음

 

 

 

A-1.

벌써 그곳을 떠나온 지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게 신기해. 네가 지금 이걸 보고 있다는 건, 내가 걸어둔 암호를 제대로 넣었다는 소리겠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너 혼자 봤으면 해서야. 혹시라도,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이 볼 일이 없도록.

이건 내 마지막, 보잘 것 없는 마음이니까. 너에게 맡겨두었고, 이제는 영원히 맡겨두게 될 마음이니까.

 

 

B-1.

새소리 때문에 눈을 떴다가 날카로운 햇살 때문에 다시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이것이 벌써 몇 번째일까? 아침 햇살에 눈이 아플 정도로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서도 다시 눈꺼풀 밑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고, 아침마다 날 깨우는 저 새소리를 듣고 싶지 않고, 눈을 뜰 때마다 날 아프게 하는 저 햇살을 보고 싶지 않다. 왜 현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까? 왜 세상은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끝끝내 내 머릿속에 새겨 넣고,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내 귀에 밀어 넣고,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내 눈 속에 찔러 넣는 걸까?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시간을 모두 접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제멋대로인 생각을 접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오늘도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그냥 귀를 틀어막고 눈꺼풀 밑으로 도망치고 싶다. 그 어두운 구석으로, 어떠한 빛도, 어떠한 소리도 닿지 않는 곳에서 남은 평생을 낭비하고 싶다. 지금의 내게 현실은 너무 무겁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 안의 나를 바라봤다. 눈 밑은 거뭇했고 흰자위는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자석 만난 철가루 마냥 사방으로 삐쳐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함이 더해 왔다. 고개를 숙여 물을 틀고 양 손 가득히 물을 받았다. 뼛속까지 시려올 듯한 냉기에 우울함이 조금 가셨다. 몸이 떨렸다. 물을 받아든 손을 위로 세차게 올려쳤다. 물이 얼굴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튀었다. 손을 한참 동안 얼굴에 그대로 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이었고, 얼굴에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의 36.5도짜리 온기와 몇 도인지 모를 수돗물의 냉기였다. 이윽고 손을 떼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양치질을 했다. 아침은 먹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는 체념 같은 느낌으로, 아침부터 밥을 차려먹는 짓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냥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로 형우가 떠난 지 1년 3개월째다.

 

 

A-2.

지금 창밖을 바라보고 있어. 어두워. 빛마저 삼켜버리는 그곳을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워서 몸이 떨려와. 빛이 너무 약해. 그곳의 태양도 이곳의 태양도. 모든 것이 내게서 너무 멀어.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어. 이렇게 하면 네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너와 난 같은 어둠을 보겠지. 같은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야.

 

 

B-2.

학교에 나가자 동기들이 웅성거리며 주저함이 엿보이는 태도로 나를 맞았다. 약한 경악, 당혹감, 의아함, 안도감, 그런 것들이 뒤섞인 그들의 표정은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다양했다.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을 마주한 그들의 표정으로 짐작컨대 내 웃음은 상당히 괴이했을 것이다. 아마 탈이나 가면처럼 굳어지고 일그러진 웃음이었으리라.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출석을 부르던 영문학 교양 교수는 나에게 결석이 많다고 말하며 대체 리포트를 써야 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난 알았다고 대답했다. 교수는 별 말 없이 강의를 시작했다. 저 사람도 내 사정을, 아니, 형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이 학교에서 형우는 상당한 유명 인사였고, 형우와 사귀는 나 또한 덩달아 유명세를 탔었다. 형우가 있을 때에는 그런 걸 딱히 신경쓰지 않았고, 어땠냐고 굳이 표현하자면 약간은 즐기는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난 그 당사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연인의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형우가 떠난 뒤로는 목표를 상실한 세간의 이목이 이리 저리 방황하다가 나에게 모여들었다. 더군다나 형우가 있을 때는 그러한 주위의 소문이며 시선 등이 꽤나 밝고 쾌활한 형태였지만, 형우가 떠난 뒤로 그것들은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부담스럽고 음험한 형태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았다. 소문이란 것은 다 이러한 것일까? 두 사람이 받던 양극의 시선은 한 사람이 사라지면 음극이 되어 한 사람에게 쏠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까? 앞에서 말하고 있는 교수의 모습이 꼭 나를 향해 시위하는 것 같다. 내 앞, 뒤, 좌, 우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날 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존재가 숨 막혔다. 간신히 참았지만, 그것도 쉬는 시간까지였다. 쉬는 시간에, 난 가방을 싸서 강의실을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이 보였지만, 애써 무시하며 발을 옮겼다. 아무도 날 제지하지 않았다.

강의실을 나와서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반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만들어낸 어둠 속에서 익사체처럼 떠돌게 될 것 같은 예감, 아니 확신이 느껴졌다.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햇살이 내 눈을 아프게 하는 동안은, 이곳에서 그 빛을 참아내 보리라 생각했다.

 

 

A-3.

눈을 감고, 너와 함께 했던 날들을 기억해. 우연히 너와 서점에서 만났던 것을 기억해. 같은 책을 향해 뻗었던 손이 닿은 것을 기억해. 생각 외로 차가웠던 너의 손이 기분 좋게 느껴졌던 것을 기억해. 함께 바다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던 걸 기억해. 내가 별자리를 말해주면 네가 옆에서 즐겁게 웃었던 것을 기억해. 둘이서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교양 수업에 늦었다고 손을 맞잡고 허겁지겁 뛰어 갔던 것을 기억해. 수업 시간에 졸던 너의 모습을 기억해. 그리고 깨우지 않았다고 화를 냈던 모습도 기억해.

내가 떠난다고 했던 날, 나에게 화를 내다가 돌아섰던 너를 기억해.

 

 

B-3.

건물을 나왔지만 생각만큼 햇빛이 강하지 않았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넓게 깔려 있었다. 내 발 앞에서 구름의 그림자가 천천히 흘러갔다. 한 걸음을 내딛었다. 하늘의 그림자는 그 한 자락을 내 발등 위에 부드럽게 얹고 미끄러지듯이 흘러갔다. 두 걸음 째를 내딛었다. 세 걸음 째를 내딛었다. 머리 위에 인 구름 그림자의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거대함이, 너무도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그런 허무함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땅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땅이 아니라 내가 흔들렸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떨려왔다. 문득,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눈을 뜨고서야 오랜 친구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내 어깨를 밀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희는 웃으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 강의시간이 아니냐고 묻는 지희에게 난 몸이 안 좋아서 나왔노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지희의 얼굴 위로 잠깐이지만 어두운 구석이 보였던 것은 아마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지희는 그런 표정을 금세 지우고 웃으면서 자기도 교양 수업 자체 휴강했노라고 말하며 약속 없으면 같이 싸돌아다니자고 말했다. 집에는 가지 않기로 했지만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나에겐 제법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 손을 잡아끌며 지희는 배가 고프다고 투덜거렸다. 자취하면 왜 이렇게 아침밥을 챙겨 먹기가 힘든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똑같이 아침을 굶고 나온 난 자연스럽게 맞장구 칠 수 있었다. 여기서 지희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A-4.

돌아서던 네 모습을 보면서 굳이 널 화나게 하면서까지 떠나야 하나 고민했어. 그냥 평범하게 그곳에서 너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정말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삶이지 그 정도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인생을 걸어간다는 것은. 하지만 네가 자주 말했던 것처럼, 난 어떤 느낌에 사로 잡혀 있었어.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예감 같은 것에. 오늘 이때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았지만.

 

 

B-4.

지희는 맛있는 밥집을 찾았다면서 학교 옆 샛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골목길로 날 끌고 들어갔다. 군데군데 분식집이 보였다. 으슥한 골목인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곳을 걷고 있는 것은 나와 지희 둘 뿐이었다. 이윽고 지희가 여기라며 척,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곳을 보고 난 숨을 삼켰다. 왜 그러냐고 묻는 지희에게 난 형우랑……이라고 말하고 말끝을 흐렸다. 지희의 표정이 곤란한 빛을 내보였다. 난 괜한 말을 했다고 속으로 후회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우물쭈물하는 지희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난 먼저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 형우와 왔을 때 같이 앉았던 자리는 피했다. 형우와 왔을 땐 다른 길을 통해서 왔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아 괜히 수저통을 달그락 거리고 있으니 지희가 어두운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았다.

지희는 성격이 너무 좋아 탈이었다. 남 걱정 잘하고 남 도와주는 걸 좋아하고 게다가 너무 솔직했다. 지금처럼 괜한 곳에 날 데려왔다는 자책감 어린 표정이, 자신은 숨기려고 하지만 내 눈엔 너무 선명히 보여서 나도 지희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눈앞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그게 뜨겁다고 비명을 지를 수도, 그 불을 끌 수도, 뒷걸음질 칠 수도 없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희의 얼굴에서 눈을 돌려 메뉴판을 바라봤다. 지희도 메뉴판을 쳐다봤다. 둘 다 말없이 메뉴판만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메뉴판 구경하러 온 줄 알았을 정도로. 침묵을 견딜 수 없었던 난 주인 아주머니를 불러 오징어 덮밥을 시켰다. 지희는 제육 덮밥을 시켰다. 알았다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따가울 정도로 카랑카랑했다. 주문을 한 뒤에도 우린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잠자코 있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한 내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했다.

괜찮아.

지희는 움찔하더니 내 눈치를 살피듯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겁에 질린 토끼 같은 눈이었다. 그때 지희를 마주 본 난 어떤 표정이었을까? 거울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가게 안 어디에도 거울은 없었다.

괜찮아.

한 번 더 말했다. 지희는 그제야 애써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 괜찮아?

정말, 괜찮아.

지희의 물음에 난 같은 말로 대답해 주었다. 지희는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가만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힘들게 지어 보인 웃음이 안쓰러웠다. 너무 안쓰러워서, 나도 웃어주었다. 지희의 그 웃음이 희극적이라, 그 애써 지어 보인 웃음에 나도 마주 웃어주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웃어 주었다. 웃음 사이로, 덮밥들이 나왔다. 먼저 내 오징어 덮밥이 나왔고 뒤이어 지희가 시킨 제육 덮밥이 나왔다. 우린 밥을 먹으며 떠들었다. 형우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A-5.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봤어.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는 것보다, 이 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떠나온 이유였다고, 그렇게 생각해.

 

 

B-5.

밥을 먹고 나올 때쯤엔 어느덧 정오라 점심을 먹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학생들이나 회사원들이 골목길을 간간히 지나가고 있었다. 지희는 끄윽, 하고 트림을 한 번 하더니 이젠 어디 갈까, 하고 물었다. 생각해봐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형우가 있을 때는 어디라도 좋았다. 형우가 있을 때는 길바닥에 앉아 형우의 어깨에 기대고만 있어도 좋았다. 형우가 떠난 뒤로 난 내가 있을 자리를 잃었다. 아니, 나를 잃었다. 형우 곁에 있지 않은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난 지희의 물음에 애매하게 대답했고, 지희는 내 애매한 대답에 애매하게 반응했고, 그 결과 우리는 애매하게 걷기 시작했다. 들어왔던 길과는 반대로 나갔다. 예상대로 나와 형우가 이곳에 들렀을 때는 반대편 길에서 들어왔던 것인지, 나가는 길에 마주친 풍경들이 낯익었다. 형우는 항상 감이 좋았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전에 왠지 느낌이 안 좋다, 아니면 느낌이 괜찮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런 형우의 느낌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제아무리 날씨가 맑고 일기예보에서 오늘은 화창할 거라고 말해도 형우가 우산을 들고 나오면 그 날은 비가 왔다. 둘이서 노닥거리다가 강의 시간에 늦어 뛰어가야 할 때도 형우가 오늘은 괜찮을 거 같다며 천천히 가자고 하면 그 날은 담당 교수가 우리보다 늦게 왔다. 이 골목길 음식점도,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괜찮은 식당들이 모두 휴업했던 날 형우가 이 골목길로 가보자며 들어갔던 날 발견했던 곳이다. 나는 그날도 오징어 덮밥을 시켰고, 형우는 김치찌개에 백반을 시켰다. 맛있냐고 내 눈치를 살피며 묻는 형우에게, 난 덮밥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더랬다.

날씨 좋-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변을 걸으며 지희가 말했다. 화창한 하늘에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고 구름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무심히 흘러갔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부드러웠고, 이따금 곁을 스쳐가는 차들이 내는 소리가 시원했다.

저기, 뭐 하나……물어봐도……될까?

지희는 어절을 뚝, 뚝, 끊으며 말했다. 주저하는 태도가 노골적인 것은, 역시 그 사람 좋은 성격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뭘 물어보고 싶은지도 눈에 뻔히 보였다.

형우?

아, 응.

뻔히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도 자신은 그걸 몰랐다는 듯이, 아마 실제로도 몰랐겠지만, 놀라는 모습이 지나치게 지희답다. 어떻게 할까 생각해봤지만, 강아지 같이 애타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지희에게 안 된다는 대답을 꺼내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희는 여전히 머뭇거리며 말했다.

형우 때문에, 아직, 힘들어?

많은 것을 담은 말이었다. 힘드냐고 물으면, 당연히 힘들다. 형우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사무칠 정도로 힘들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천근만근으로 나를 짓누른다. 별을 쫓아간 그 바보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이 힘들었고, 그 바보나 그 바보와 함께 갔던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이 힘들었다. 힘들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너무나 솔직하게 부딪쳐 오는 지희에게, 나도 한 마디 정도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힘들어.

그렇게 담담한 선고와도 같은 말을 하면서, 난 내 안에서 항성처럼 이글거리는 감정, 그리고 폭발하는 별처럼 휘몰아치는 말들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그 바보와 더 이상 함께 걷지 못 하는 사실이 슬퍼. 그 바보와 마주 앉아 오징어 덮밥이 맵다고 투덜거릴 수 없단 사실이 눈물겨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자리 이야기를 해주는 그 바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단 사실이 시리도록 사무쳐. 집에 있을 때도 집 밖을 걸어 다닐 때도 어디에나 그 바보의 흔적이 보이는데 정작 그 바보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워. 자기 마음은 내 안에 있다고 늘 농담 같은 투로 말하던 그 바보의 기억이, 날 짓눌러.

입 밖으로 내지 않았건만, 지희의 표정은 그 모든 말들을 들은 것 같았다. 지희가 힘들어, 라는 한 마디만 듣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아이란 건 알지만 그럼에도 왠지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지희가 물어왔다. 힘들어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어.

 

 

A-6.

그래도 이 일과, 내가 알게된 것과, 너에 대해 생각하면 난 이 상황이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B-6.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지희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해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쯤 헤어져서 각자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울해 보이는 내가 염려됐는지 지희는 어떻게든 날 즐겁게 해주려고 했고, 그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아서 지희와 함께 있는 동안은 유쾌하거나 즐겁기까지 하진 않아도 나름대로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지희와 헤어져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다시 내 안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에, 아니 늪에 빠진 것 마냥 스스로의 우울 속에서 허우적대면 허우적댈수록 내 안의 우울 속에 더 깊이 가라앉았다. 오후 한때나마 지희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 더 큰 반작용을 불러온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이윽고 집에 돌아온 나는 정말 누군가에게 쫓겼던 것처럼 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가방을 던져두고 침대 위로 기다시피 해서 올라가 엎드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다.

 

 

A-7.

다만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다면 이 편지가 제대로, 끝까지 너에게 가 닿는 거야. 그것만이 이 이상 아무 것도 바랄 수 없을 내 마지막 바람이야.

 

 

B-7.

지이잉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두웠다. 고치 속의 애벌레처럼, 내가 이불로 온 몸을 감싼 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고치를 벗어던졌다. 그래도 여전히 어두웠다. 몇 시나 된 걸까?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가 녹색으로 빛나며 10시를 말하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들렸던 소리가 떠올랐다. 휴대폰 진동음이었다. 휴대폰을 어디 뒀었지, 하고 생각하며 다리 쪽을 덮고 있던 이불을 마저 걷어냈다. 휴대폰은 가방 안에 있었다. 아까 들어오자마자 내팽개치다시피 했던 가방을 뒤적거리며 휴대폰을 꺼내든 나는 모르는 번호에 눈살을 찌푸렸다. 스팸메시지인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메시지를 열었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형우에게서 온 것이었다. 난 정신없이 메시지를 읽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형우는 나에게 학교에 다닐 때 자신의 은사였던 교수님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천문학이나 물리학과 관련된 용어들이 난잡하게 뒤섞여 있어서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조금 읽다가 말았다. 그리고 메시지가 하나 더 있었는데, 넘어가려고 하니 무슨 음성 인식을 해야 한다고 떴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이 바보는 여전히 내 속만 태우는 걸까. 1년이 넘어서야 연락이 오고, 그런데도 나에 대한 건 얘기하지도 않고, 메시지 중간엔 알 수 없는 암호나 걸어두고. 어쨌든 난 형우가 부탁한 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문득 일어서려다가 음성 인식을 해야한다고 표시되는 부분 아래에 한 줄이 더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지만 그 바보에게서 너무나 오랜만에 온 연락에, 나는 들떠 있었다.

 

 

A-0.

Hint : Where is my IC1805?

 

 

B-8.

늦은 시간이었지만 형우가 말한 그 교수님은 학교의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걸로 유명한 분이었고, 굳이 밤을 새울 일이 없더라도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사는 걸로도 유명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친 분이었다. 연구실에 전화를 해보니 예상대로 그 교수님이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형우가 보내달라고 한 메시지가 있다고 하자 그 교수님은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이것저것 질문을 폭풍 같이 쏟아냈다. 형우와 굉장히 죽이 잘 맞는 분이었다. 형우가 우주 탐사 업무에 지원할 때도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자기와 같이 연구나 하자며 설득하려 애썼던 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제나 형우를 높게 평가하며 가까이 뒀던 분이었다. 그 외의 사항으로는 의외로 유명한 분이라 외국에도 연줄이 많다는 등의 말들이 많았지만 난 형우를 통해서만 알뿐 개인적으로 그 교수님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어쨌든 형우한테서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이 왔는데 지금 찾아뵈어도 될까요, 라고 물으니 안 될 리가 있냐며 지금 밤도 늦었는데 오는 길 위험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콜택시라도 불러줄까 하는 걸 내가 보이지도 않는 손사래를 쳐가며 막았다. 차분한 성격의 형우와는 달리 마치 어린 아이 같은 교수님이었다.

밤거리는 고요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별들의 숨소리마저 들릴 것 같을 정도로 고요한 밤이었다. 형우가 떠나고 나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울증에 걸린 채 시간을 허비했던 나를 떠올렸다. 답답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내 곁에 형우가 없다는 사실이 외로웠고, 내가 있는 자리가 형우의 곁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펐다. 떠나고 나서 1년도 더 지난 뒤에야 도착한 형우의 메시지는, 비록 나에게 전하는 말이 없단 사실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나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었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았지만.

연구실에 들르자 차를 끓이고 과자를 늘어놓은 교수님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교수님은 겸연쩍게 웃으며 대접이 너무 초라해서 그러냐고 말했고, 난 더듬거리며 아뇨, 저, 그게 그러니까, 이러실 필요 없는데, 라고 말했다. 어쨌든 형우를 통해서 만난 적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형우를 통해서였지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는 사이였기에 이런 식의 대접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뜻을 전하기도 불편해서, 난 단념하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리고 초조한 빛을 내보이면서도 내가 들어오자마자 그 일에 관해 묻기는 어려워하는 교수님에게 핸드폰에 형우의 메시지를 띄워서 건네 드렸다. 어린 아이 같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교수님은 내 핸드폰에 표시된 형우의 메시지를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난 그동안 교수님이 끓여둔 차를 마셨다. 이런 일엔 영 젬병인지 싸구려 티백으로 우려낸 녹차에선 씁쓸한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교수님은 형우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연신 아, 저런, 허, 이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린 아이 같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점이 지희를 떠올리게 했다.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으니 교수님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헬로, 디스 이즈……. 영어로 뭐라고 하는 게 들렸다. 형우가 무슨 메시지를 보냈기에 저러는 걸까? 이윽고 전화를 끝낸 교수님께 형우가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다. 교수님은 뭔지 몰랐냐고 되물었고, 난 모르는 말이 많아서 제대로 다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교수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 저, 그게.

내가 맨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초조해진 난 왜 그러냐고 재차 물었다. 교수님은 계속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이 말을 돌리려 했고, 나도 그에 지지 않고 왜 그러냐고 같은 질문을 했다. 한참동안 교수님의 말은 나의 입을 막지 못 했고 나의 말은 교수님의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교수님이 먼저 항복했다.

소행성 하나가 날아오고 있다고 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지구와 부딪힐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소행성은 날아오던 길에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를 가로지르던 무언가와 부딪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형우의 메시지엔 그 행성의 이동 경로가 나타나 있고 그걸 미국의 지인에게 알렸으며…….

난 그 소행성과 부딪힌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교수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고, 난 다시 물었다. 교수님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고, 난 소리쳐 물었다. 교수님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하려던 나는,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형우는요?

교수님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리고 내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미안하네.

뭐가 미안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곳을 나왔다.

 

 

C-1.

IC1805 : 카시오페이아 자리에 위치한 성운. 지구로부터 7500광년 떨어져 있으며 그 지름은 200 광년에 달한다. 그 가운데 있는 녹색 산개성단을 이루는 별들은 태어난 지 150만년 이하로 비교적 어린 별들에 속한다. 또한 이 성운은…….

 

 

B-9.

연구실에서 돌아온 난 낮에 그랬던 것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었다. 번데기 같은 모양으로 숨막히는 비명을 내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형우는요?

그렇게 물은 내 말에 고개를 돌린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표정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친한 사람의 이른 죽음에 애통해하며 장례식장을 찾은 것 같은 표정. 그 표정을 지우고 싶었다. 이 현실을 잊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잊고 깨어나지 않는 꿈속을 떠돌고 싶었다. 꿈속에서라도 형우와 함께 걷고 싶었다. 비록 현실이 아닐지라도, 형우의 어깨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울었다. 밤새도록 울었다. 지쳐 잠들 때까지 울었다.

 

 

A-8.

아마 내 편지를 읽었다면 넌 많이 울 거라고 생각해. 나에겐 과분할 정도로, 넌 나를 사랑해주었으니까. 나도 그만큼 보답해주려고 했지만 아마 턱 없이 부족했을 거야. 그 정도로 날 사랑해 주었는데도, 널 두고 먼저 가서 미안해. 널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단 것도 알고 있어. 그래서 미안해.

단지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서,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서 널 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어. 그래서 말할게.

 

 

B-10.

얼마나 울고,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잠에서 깨어나도 잠에서 깨어난 것 같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꿈속을 유영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랬으면 싶었다. 꿈속이라면 이렇게 비통하진 않았을 테니까. 내가 봤던 모든 것들이 꿈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다시 휴대폰을 들고 형우가 보낸 메시지를 보아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과, 알아듣고 싶지 않은 말들, 그리고 암호를 요구하는 말.

 

 

A-0

Hint : Where is my IC1805?

 

 

B-11.

IC1805. 무슨 말일까. 형우는 밤이면 언제나 짙은 남빛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내게 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별들의 색깔. 별들의 시간. 별들의 운명에 관해서. 이것도 그런 것일까? 그런데 별이 어디 있냐니, 이번만은 형우도 내게 설명이 불친절했다. 다시 볼 수 없을 텐데. 그렇게 혼자 원망스러운 마음을 삭이고 있다가, 문득 뭔지 모르면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켰다.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며 컴퓨터가 켜졌다. 익숙한 로고가 나타났다. 익숙한 소리가 났다. 부팅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IC1805가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다.

IC1805. 성운. 카시오페이아 자리.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7500광년 떨어져 있고, 그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빛의 속도로 200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별들의 무리. 또한…….

 

 

C-2.

……또한 이 성운은 그 모양 때문에, 하트 성운이라고도 불린다.

 

 

B-12.

힌트. 나의 IC1805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심장은 어디에 있을까? 형우의, 심장은 어디에 있을까?

난 홀린 것처럼 음성 인식을 요구하는 휴대폰에 대고, 형우가 내게 늘 속삭여 주었던 말을 들려주었다.

“내 안에.”

 

 

A-9.

……그래서 말할게.

사랑해줘서 고마워. 먼저 떠나서 미안해. 하지만 날 위해 살아줘. 날 위해 울지 말아줘. 너를 지켜볼 날 위해 웃어줘. 난 IC1805, 그 사랑스러운 빛의 구름 속에서 언제나 널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

 

 

B-13.

메시지는 그렇게 끝났다. 난 핸드폰 액정 화면 위에 떨어진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원망스러움은 없었다. 형우의 마지막 마음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난 내가 죽더라도, 온 세상이 멸망해도 형우가 내 곁에 있어줬으면 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이 오더라도 형우가 곁에 있으면 웃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형우는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죽음마저 다행스럽다고 할 정도로 나를 생각해 주었다. 그리고 살아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살아가야겠다고, 난 울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형우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내일부터였다.

“오늘만…….”

난 형우의 말을 담고 있는 휴대폰을 품에 꼭 품으며, 가 닿지 않겠지만, 또한 가 닿을 말을 눈물과 함께 흘려냈다.

“오늘만, 울게.”

그래, 오늘만.

 

 

C-3.

별이 점멸했다. 하나의 별이 사라졌다. 또 하나의 별이 생겨났다. 별들이 빛을 뿜었다. 빛들은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이 우주를 여행한다. 매 순간, 모두 다른 빛들이 여행을 시작한다.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를 향해.

 

 

B-14.

밤새도록 울고 일어난 나의 얼굴은 말도 못할 만큼 부어 있었다. 그래도, 반쯤은 뭔가 안정된 마음으로, 반쯤은 형우의 말을 생각해서, 더 이상은 울지 않았다. 오늘부턴, 나를 보고 있을 그 바보를 위해 웃어줘야 하니까.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어제 잠들기 전에 깜빡 하고 컴퓨터를 끄지 않았단 걸 알았다. 컴퓨터를 끄려고 하다 보니 문득 자동 접속 설정이 된 메신저에 메일이 하나 온 것을 발견했다. 스팸 메일일까, 하고 열어 보니 영문학 교양 교수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출석 대체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한 게 기억났다. 메일을 열어보자 역시나 그것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영문학 교수답게, 영어로 시를 한 편 써서 내라고 말했다. 영어로 시, 라. 분명 영어는 잘 못 하지만, 그래도 한 편만 내라고 한 것은 그 나름의 배려였을까. 어쨌든 그 메일을 보자마자 무엇에 대해 쓸지 생각났다. 그리고 제목도.

IC1805.

어느 바보가 내게 맡기고 간 마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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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이
그 분이 직접 쓰신거임?
2013-10-12 21:57:28
추천0
[L:53/A:458]
후유네코
2013-10-12 22:50:10
추천0
HotHoneyTea
ㄷㄷㄷ
2013-10-17 21:57:42
추천0
[L:6/A:91]
레이션푸
눈에 잘 들어오네요.
2013-10-30 11:31:44
추천0
[L:35/A:544]
키세
Ic1805 을 왜 난 아이씨이팔로마로 본거지
2013-11-17 14:27:55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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