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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BT 서바이벌 - 001
해결사M | L:6/A:35
16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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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596 | 작성일 2014-09-28 13: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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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BT 서바이벌 - 001

001
1월 1일, 새로운 해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날, 난 바쁜 다른 가족들을 대신해 집 지키기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아빠는 친구들과 술 마시러 나가고, 엄마는 연구소에서 철야 작업이고, 여동생은 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해서 사실 거의 반강제적이었으나 딱히 불만은 없었다. 집 지키기라고 하면 보통 개가 하거나,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집 지키기는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한 행위이다. 집 지키기. 그것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쉼터를 지키는 숭고한 행위이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빨리 낡아버린다고 한다. 쓰이지 않는 물건이 금세 낡아버리는 것과 같다. 난 항시 집에 있음으로서 우리 집이 낡아버리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칭찬 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하지만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옛말대로, 난 나의 숭고한 행위를 누구에게 자랑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집에 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집에 혼자 있는 건 좋아한다. 혼자 있으나 다른 가족이 있으나 내가 하는 행동은 거의 비슷하나, 왠지 모를 느낌의 차이가 있다. 나 홀로 집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걸 보고 웃을 나이는 지났지만. 그러고 보니 올해로 20살이다. 열 줄에서 이십 줄로 넘어간다는 게 아직 느낌이 팍 오진 않았다. 그러나 이제 대학에 가서 혼자 살 생각을 하니, 어른이 된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직 대학이 정해지지 않은 애들이 대다수라 다른 애들은 상당히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수능을 보기도 전에 이미 수시1차로 근처 국립대에 붙은 상황이라 고3 같지 않은 고3말을 보냈다. 고2의 연장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애들에 비해 한층 더 빨리 나른해졌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남는다. 그러면 자면 된다. 난 잠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할 때마다, 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면 시간은 어느새 지나있고, 몸도 한 층 개운해졌다. 물론 너무 많이 자면 역효과로 몸이 더 뻐근해지기도 하지만, 반나절 정도까진 괜찮다. 20살을 시작하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1월 1일 중 가장 중요한, 1월 1일을 난 여느 때보다 시시하게 보내고 있었다. 연초마다 하는 영화 재방송을 돌려보며 귤을 까먹는 것으로 난 오전을 보냈다. 오후엔 낮잠을 잤다. 그리고 적당히 5시쯤 일어나 e스포츠 방송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tv에서 가요대상 재방송이 나와 좀 보다가, 10시쯤 다시 침대에 누웠다. 20대로서의 첫 날이 2시간만을 남겨둔 채, 내 마지막 십대가 허무하게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난 침대에 누운 채로 창문 밖을 바라봤다. 밝은 보름달이 세상모르고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곧 구름이 몰려와 달을 가려버렸다. 내 청춘이 저 보름달이라면, 분명 저 구름이 걷힐 일은 없을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쳇. 난 혀를 찬 뒤, 고개를 돌려 벽 쪽을 바라봤다. 벽지의 규칙적인 무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갔다. 난 다시 정자세로 누웠다.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달이 구름 사이로 빠끔히 그 자태를 드러냈다. 그 때, 갑자기 보름달에서 엄청나게 눈부신 빛이 내 쪽으로 비쳐왔다. 그 빛은 조그마한 소녀의 형상이었다. 난 순간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배경에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곰의 모습이었다. 달빛을 받고 내려온 작은 소녀는 하얀 곰 팬티를 입고 있었다. 초등학생을 연상시키는 작은 체구에 그런 캐릭터 팬티가 더해지자,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는 완벽한 초등학생 그 자체였다. 초등학생이 어째서 내 방에 침입했는가. 아니, 그보다 5층이나 되는 우리 집을 어떻게 창문을 통해 들어왔는가. 난 그 답을 생각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방 창문을 깨 부시고 들어온 소녀는 내 침대 위로 떨어져 한 번 통 튀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자세를 가다듬어 내 침대 위에 똑바로 섰다. 소녀는 짧은 팔을 내 쪽으로 쭉 펴 보이며, 쓸데없이 당당하게 날 향해 소리쳤다.
“나랑 승부다!!”
“?!?!?!”
이유는 모르겠으나 난 그 초등학생 같은 소녀에게서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작은 체구였지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마치 아기 호랑이에게 겁먹는 고라니처럼, 난 허둥지둥 소녀에게서 물러서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소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좀 더 자길 즐겁게 해달라는 듯,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이며 웃어보였다. 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현관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미쳤다. 저 소녀는 미쳐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쩌면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드디어 외계인의 지구 침략이 시작된 것인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러면 5층이나 되는 우리 집에 창문으로 들어온 것, 초등학생답지 않은 분위기와 말투도 설명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긴가. 이미 벌어진 일이 현실을 벗어난 황당한 일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비현실적인 가설을 세우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후. 난 일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난 정처 없이 걷다가 도착한 근처 공원의 미끄럼틀 뒤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뭔가 소녀의 정체를 알만 한 실마리가 없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이상한 편지가 왔었다. 그저 장난인 줄 알았는데 설마 진짜였나.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새해 신년을 맞아 이렇게 새롭게 20대가 된 여러분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 편지와 함께 동봉된 알약은 여러분의 잠재능력을 깨워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칩, 이 칩을 3개 모으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을 한 가지 저희가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소원이든지 반드시. 이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고 참가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부담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지 장담합니다만, 여러분은 반드시 이 알약을 먹고 게임에 참가하실 겁니다. 그게 본인의 의지든, 타인의 의지든 간에 말이죠. 그럼 부디 여러분이 이 게임에서 승리하길 바랍니다. 아,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게임이 끝날 때 자신의 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 게임에 참가하는 유일한 리스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칩만 가지고 있으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부디 칩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기원합니다. -BT' 솔직히 말해서 누가 보든 단순한 장난에 불과했다. 잠재능력을 깨워주는 알약이라든가, 3개가 모이면 소원을 이뤄주는 칩이라든가, 그런 게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바보 같은 이야기다. 차라리 7개 모으면 소원을 들어주는 볼 쪽이 신뢰가 간다. 물론 나도 믿지 않았다. BT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정말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까 그 소녀. 도저히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는 그 소녀가 만약 나와 같은 편지를 받고 그 알약을 먹은 거라면. 그리고 승부라는 게 서로의 칩을 빼앗는 그 게임을 말한 거라면. 그렇다면 그 칩도 진짜.
“여기 있었구나! 숨바꼭질을 내가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꽤 오래 걸렸어. 칩을 가지고 있었으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소녀의 목소리였다. 공원의 입구 쪽이었다. 아직 내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한 것 같았다. 난 숨소리도 내지 않고, 미끄럼틀 옆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소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라고!”
소녀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진 소녀는 내 앞 모래사장에 착지했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소녀의 손에는 편지봉투가 들려 있었다. 내가 아침에 받은 편지봉투와 같은 편지봉투였다. 아니, 자세히 보니까 그건 내 편지봉투였다. 그렇다면 내 칩은 이미! 소녀는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내게 물었다.
“어째서 알약을 먹지 않은 거야?”
“넌, 먹은 거냐? 그 정체도 모를 알약을?”
“안 먹을 이유가 없잖아. 게다가 재미있어 보이고.”
“재미있어 보인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인생을 재미로 사는 거냐?”
“정답이야. 너 의외로 머리가 좋은가 보네. 당연한 거 아니야? 인생은 재미로 사는 거야. 따분한 인생 따위 살 가치도 없어.”
“최근엔 가장 따분한 직업인 공무원이 대 인기인 거 모르냐? 지금 시대의 모토는 그야말로 따분함이라고. 좋은 말로 안정감이라고도 하지.”
소녀는 딱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봤다. 난 순간 움찔했지만,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나도 소녀를 노려봤다. 어렸을 때부터 날카로운 눈매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나였다. 이런 애 같은 소녀에게 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 소녀는 만만치 않았다. 내 눈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먹이를 코앞에 둔 암사자 같은 소녀의 눈빛에 오히려 내가 소녀의 시선을 먼저 회피할 정도였다.
“헤~그래도 어느 정도 존심은 있나 보네.”
“내 프라이드를 얕보지 않는 게 좋아. 약자한테 약하고, 강자한테도 약한 게 내 프라이드다.”
“뭔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꽤 재미있어 보여.”
소녀는 내 쪽으로 편지봉투를 던졌다. 그리고는 무언으로 나에게 명령했다. ‘알약을 먹어.’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그걸 먹고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소녀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보냐. 난 소녀에게서 받은 편지봉투를 꽉 움켜잡았다.
“실망이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었을 텐데. 뭐, 그렇게라도 빨리 이 세상을 뜨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이 재미없는 인간아!”
소녀는 순식간에 도약해 내 쪽으로 날아왔다. 터무니없는 스피드였다. 소녀의 주먹에 미끄럼틀은 힘없이 구부러지고 말았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지 다시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힘을 그 알약 하나로 끌어낼 수 있다는 건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눈 앞의 소녀는 진짜였다. 진심으로 날 죽일 기세였다. 꿀꺽. 메마른 목에 침이 한 방울 흘렀다. 난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빈혈이 일어난 것처럼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성공, 한 건가? 난 흐릿한 시야로 지상을 내려다 봤다. 발목 부분에 위화감이 느껴져 발목을 본 순간, 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내 발목에는 하얀 뼈로 된 날개가 달려 있었다. 엄청난 위화감이 들기는 했지만,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난 그 날개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날개로 날개 짓을 하는 것은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만큼 쉬웠다. 이게 그 알약의 힘이란 말인가.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먹었어?! 먹었구나!! 하하 너도 드디어 이 지루한 현실에 지쳐 이 쪽 세계로 오기로 했구나. 잘했어. 왜 안 그러나 했어. 난 또 너도 그 인간들과 같은 재미없는 인간인 줄 알았다고. 하마터면 아까운 인간을 죽일 뻔 했네.”
소녀는 마치 미끄럼틀이 아령이라도 되는 양, 미끄럼틀을 한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굉장히 기뻐 보였다. 먼 타지에서 동족을 발견한 듯 하는 눈이었다. 하지만 난 소녀와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분명히 소녀가 말하는 재미없는 인간 쪽일 것이다. 그건 확실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렇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재미없다. 그건 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것만큼 객관적인 지표도 없었다. 난 20년 동안 줄곧 평범한 삶을 살았고, 평범한 삶에 만족했다.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별로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에 적극적이지도 않았던, 난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난 그것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혼자인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충분히 난 내 삶에 만족했다. 혼자서 밥을 먹는 아이를 사람들은 처량하게 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들의 착각이며,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불과하다. 혼자가 어째서 불쌍한가. 어째서 처량한가. 그건 그들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생물이기 때문이고, 혼자서 잘 살고 있는 우리 고독의 용사들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째서 난 알약을 먹었는가. 그건 소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소녀는 그것 때문에 알약을 먹고, 이 게임에 참가한 모양인데.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이다. 자기 이야기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란 말이다. 난 오히려 이 현실에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알약을 먹은 것에 불과하다. 앞서 말했듯이 난 이 현실세계가 좋다. 이 세계 이외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이미 이 세계에 너무나도 적응돼 있다.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소녀가 왜 이렇게 현실을 싫어하는 지 잘 모를 정도로 지금 이 세상이 좋다. 그렇기에,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망치려고 하는, 내 세상을 부수려고 하는, 저 소녀가 난 맘에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세상을 지켜낸다. 그 일념이 날 알약으로 이끌었다.
“아까부터 혼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네가 정말 싫다. 곰 팬티 소녀! 어디의 초등학생이냐 너는! 지금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인 부모님 소환 술을 쓰겠다!”
“하?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하는 거야. 그리고 초등학생이라고 하지 마! 난 이제 어엿한 20대라고!!”
“에?!”
“에?! 가 아니라고 이 녀석아! 올해로 20살이 되는 어엿한 숙녀다 인마!! 이제 맥주도 혼자서 마실 수 있다고!!”
“에?!”
“아까랑 똑같은 반응이냐?! 하, 뭐 됐어. 어떻게 생각하든 네 자유니까. 그보다 언제까지 거기 떠 있을 거냐. 정정당당히 내려와서 승부를 가려라!!”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녀석한테 정정당당히 란 소리 듣고 싶지 않다. 이 초등학생아!”
“했겠다?! 또 초등학생이라고 했겠다. 넌 죽어도 용서하지 않겠다. 당장 내려와.”
“내려오란다고 내려오겠냐! 넌 바보냐? 바보지? 이 바보 초등학생 녀석아!”
“으, 으, 으.”
잠깐, 이건 내가 초등학생 때 관찰한,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를 놀리는 어수룩한 남학생 패턴이잖아. 언제나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관찰할 수 있었던, 난 초등학생 때도 다른 애들의 행동패턴을 관찰하며 놀았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패턴 화 한다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놀이다. 그것으로 다음 행동도 대체로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기서 그 다음에 여자애가 취할 행동은 둘 중 하나이다. 첫 번째는 우는 것. 여기서 여자애가 울면 대게 상황은 그것으로 종료된다.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두 남녀의 싸움은 여자의 울음으로 반강제적으로 종료된다. 남자는 우는 여자애의 옆에 붙어서 다른 애들의 모든 질타를 한 몸에 받으며 여자애의 울음을 그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이서 같이 선생님께 끌려가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두 번째, 이 경우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만, 여자애가 상당히 기가 세고 자존심이 센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그건 바로, 폭력! 남자애를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하면서 그 상황을 종료시킨다. 이 경우 여자애가 남자애를 어떤 방식으로 제압하든 선생님에게 불려갈 일은 없다. 어째선지 선생님한테는 남자애가 여자애를 놀리는 것과 여자애가 남자애를 때리는 것이 등가교환으로 보이는 것 같다. 누가 봐도 남자애가 손해 아닌가. 그럼 여기서 소녀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소녀의 언동으로 보았을 때는.
“으랴랴랴!”
소녀는 괴성을 지르며 내 쪽을 향해 미끄럼틀을 던져버렸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난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역시 아직 날개 짓이 몸에 확실히 익지 않았다. 미끄럼틀 옆쪽이 왼쪽 복숭아 뼈를 스쳤다. 오른쪽 날개로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할 수는 있었지만, 다시 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인가.
“후. 후. 아까 뭐라고 했더라? 바보?! 초등학생?! 그럼 각오는 되었겠지?”
지금까지 살면서 이 정도의 위험상황이 있었던가. 있었다. 몇 번 정도 동네 양아치에게 걸려 반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난 특유의 행동으로 그 위기들을 잘 넘겨 왔다. 안 된다고 생각될 때는 모든 걸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그것이 내 프라이드다. 어디까지고 비굴해질 수 있는 게 내 위기대처능력. 모든 것을 잊고 위기를 넘기자는 하나의 일념만으로 행동할 수 있는 집중력. 바닥에 무릎 꿇기, 구두 핥기 정도는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 어떻게 할 거지? 그 망가진 다리로는 더 이상 날 수도 없겠지?”
“하~”
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이미 각오는 돼 있었다. 난 머리를 바닥에 박고 큰소리로 소리쳤다.
“나의 패배다! 네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들어주지. 하지만 목숨만은 살려줘라.”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위기를 넘겨온 방법이다. 무엇보다 한심하지만,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이것을 보여주면 대부분의 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적절한 반항 행위와 그것을 억누르면서 느끼는 자신의 우월감이다. 그러나 이렇게 처음부터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을 바닥까지 낮춤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 하나 얻을 수 없게 된다. 우월감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상대를 꺾었을 때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상대를 억누르든, 그들은 절대 우월감을 느낄 수 없다. 게임에서는 졌지만, 승부에서는 지지 않는, 이것이 나의 비장의 전략이다. 물론 이 전략으로는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절대 지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무적이 아닌가. 이제 소녀가 전의를 상실하고, 이 자리에서 사라지기만을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건 나의 특기다. 언제까지고 기다려줄 수 있다. 이 정도 기다림 정도야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헤~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다고. 후. 후.”
“?!”
“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했지?”
“어? 아, 응.”
“그럼 넌 이제부터 내 종이다! 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내 옆에서 날 도와줘야겠어!”
“……저기 내가 잘못들은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좋아. 넌 이제부터 내 종이다! 내가 하는 말에 복종하는 충실한 종이 돼줘야겠어.”
“에……에~엑?!”
“에……에~엑?!이 아니라고. 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면서.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참고로 도망칠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칩은 나한테 있으니까. 칩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분명히 게임이 끝날 때 자신의 칩이 없는 자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그런 거야. 그럼, 또 연락줄 테니까.”
소녀는 휙 돌아서면서 나에게 쪽지를 던졌다. 난 꾸깃꾸깃 형편없이 접혀진 쪽지를 열어보았다. 그곳엔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소녀의 핸드폰인 듯 했다. 고개를 들어 소녀가 있던 방향을 봤을 땐, 이미 소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난 이 겨울방학에 터무니없는 일에 말려든 듯 했다. 하아. 평범함을 모토로 삼고, 안전한 삶을 원하는, 내게 있어서 이 게임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게임 첫 날부터 이상한 상대에게 내 칩을 빼앗겨 버렸다. 너무나 피곤했다. 지쳐버렸다. 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공원 모래사장에 누워버렸다. 모래가 그 어떤 좋은 침대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다. 머리카락 속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고, 난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정말 정신없는 새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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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2 시 문학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 박영희
크리스
2021-10-23 0-0 529
10351 시 문학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 재 삼
크리스
2021-10-23 0-0 857
10350 시 문학  
장수산 - 정지용
조커
2021-10-17 0-0 546
10349 시 문학  
작은 짐슴 - 신석정
조커
2021-10-17 0-0 366
10348 시 문학  
작은 부엌 노래 - 문정희
조커
2021-10-17 0-0 477
10347 시 문학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 정채봉
타이가
2021-10-17 0-0 698
10346 시 문학  
가지 않은 봄 - 김용택
타이가
2021-10-17 0-0 533
10345 시 문학  
울릉도 - 유치환
크리스
2021-10-17 0-0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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