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 박 철
상추
- 박 철
베란다에 흙 한 삽을 가져다 뿌려놓고
상추씨 몇 알을 얻어다 뿌려놓고
세상이 다 파랗게 되기를 기다린다
물 한잔 따라주고 우리들 가슴속에 있는
아직 싹 트지 못한 힘겨움이
무럭8무럭 자라나 호박넝쿨로 우거지길 기다린다
여름이면 탐스럽고 노란 참외가 열리고
가을이면 붉은 감이 열려라
겨울이면 마른 줄기 걷어다
맛있게 생선조림이라도 해먹기를 기다린다
비오는 날 바보처럼 먼 곳을 보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싹이 트고 잎이 나고 한잎 한잎 따다가
흰쌀밥 담아 쑤셔넣으며 부질없이
기다려온 온갖 그리움도 깊이 쑤셔넣는다
맞다 그래봐야 이 모양이지
그러나 생각하면 기다림이란
얼마나 풋풋한가 상추의 진면목인가
누군가 내게 한 그릇의 사랑을 뿌려놓고
몇 알갱이의 정분을 심어놓고
세상 우리 것이 되기를 기다리겠는가
이만큼이나 기다리고 기다리겠는가
오늘도 해가 지기 전 한줌의 흙을 떠다
마음 깊이 상추씨를 뿌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