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질 때 - 엄원태
어두워질 때 엄원태
금호강 방죽 위를 걷는다
해는 저물었지만
잉크병 같은 박명(薄明)의 푸른빛이 있다
오래전부터 이 시간을 사랑하였다
강변 풍경엔 뭔지 모를 이끌림 같은 게 있다
어스름이란, 마음에도 그늘처럼 미미(微微)한 흔적을 남긴다
강바닥 버드나무들은 언제부턴가 둥근 무덤들을 닮았다
그때 너를 놓아 보냈던 게
내 손아귀 안간힘이 다해서였던가,
생각하면 모래알같이 쓸쓸해지지만 여한은 없다
해오라기 하나 물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있다
저대로 밤이라도 새우려는지
가슴께에 보드라운 흰 털이 바람에 부스스 일어난다
새들도 저처럼 치명적인 상처를 가졌다
나는 가슴을 가만히 쓸어본다
버드나무에 걸린 지난 홍수의 비닐조각들은
내 등허리에도 틍증처럼 걸려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앟다
이제 곧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