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 김지하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가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