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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도종환
섬란카구라 | L:43/A: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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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222 | 작성일 2020-02-23 10: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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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도종환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해인으로 가는 길' 문학동네 201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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