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 마검사는 귀찮은 것이 질색이다 - 4
중학교 때의 귀여움은
더 어른스러워진 교복의 스타일에
대조되어 한층 빛나고 있었다.
" 이야~ 정말 오랜만이네! 한 2 달만인가.
그 교복 엄~청 잘 어울려! 미치도록 귀여워~!! "
" 하...하.... 고마워.
세린이는 잘 지내....지? "
" 네가 그리운 걸 빼면 잘 지내~ "
유치원 시절부터 초, 중학교까지
우리 넷(+정용표)은 같은 곳을 진학해왔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소연이 혼자 다른 곳으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 저......저......
시온이.....도 잘 지내지...? "
" 뭐, 그럭저럭. "
왜일까, 녀석은 예전의 소심했던 모습에 더해 시무룩해 보이기까지 하다.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친구 사귀기......아니지.
저런 귀엽고 성실하며 재능이 넘쳐나는 녀석에게
나 정도나 되는 녀석에게 있을 문제점이 공통될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 용표는 집에 들어왔어? "
정소연, 정용표,
둘은 이란성 쌍둥이,
2일전부터 정용표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돌연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일단 그 녀석이라면 또 어디서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한다만.....
" 그 녀석이라면 또 어디서 바보같은 짓이나 하고 있겠지. "
" 역시나 그러냐. "
다만 바보짓에 짚이는 것은 있었다.
" 소연이는 잘 지내지? "
유세린의 엄마 눈빛,
" 응! 좋은 친구도 많이 사겼구!
선생님들도 친절하신 분이구!
급식도 맛있구!
꽤나 즐거워!! "
급 밝아지는 표정으로 찬란한 스쿨라이프를 역설하는 소연,
엄마에게 첫 학교 생활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초등학생......은 착각이겠지.
그러다 표정은 또 금방 시무룩해진다.
" 아...아무튼....잘 지내고 있어.....
그.....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 뭔데? "
" 저.....그.....
둘은.....요즘 그렇게 단둘이서 같이 다.....녀...? "
묘한 부분을 묻고 있다.
게다가 명백히 떨리는 목소리.
나는 소연이가 묻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질문에 유세린은 뭔가를 생각하는 시늉을 하더니
갑작스레 팔을 내 목에 감았다.
" 물론. "
딱 잘라 답하는 말투.
" 아, 그래, "
전조없이 소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반쯤 감긴 눈매의 차가운 표정.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녀석의 오랜 친구인 내가 봤을 때,
저건 녀석의 '열받았다' 는 표정이 분명하다.
" 가자. 시온아. "
왠지 모를 오버하는 말투로 걸음을 재촉하는 유세린,
그런데....
" 너 여기서부터 나랑 다른 길이잖아. "
" 응? 아.....그러긴 그러네......
근....데 너 아까 쓰러지기도 했고 좀 걱정도 되고 그러니까......"
" 가자! 시온아!! "
갑자기 머뭇대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녀석을 짓누르듯
소연이는 순식간에 나와 팔짱을 꼈다.
" 아......어어. "
나는 녀석이 끄는 대로 그 방향에 끌려갔다.
꽈악.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
그와 동시에 반댓팔에 격통이 전해져왔다.
" 안......돼!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시온아.
아무래도 네 몸이 걱정돼서 못 참겠거든. "
엄청난 악력으로 팔을 놓지 않는 세린,
이건 마치.....
" 하아? 자고 가라니 그건 무슨 무리수야.
시온이는 나랑 집에 돌아갈 거라고오오오! "
양쪽에서 잡아 찢어 죽인다는,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능지처참의 형벌과 같다.
-
" 후...하...하...."
" 윽....읏.....으으......"
" 아....으.....아........"
지금 3분간 이 골목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정신이 혼미하다.
" 명심...해....둬.....
결국 고등학....교 진학은 나와 같....이 하게 됐다고.....? "
" 하....하.... 웃기지마.
스코어.....8:5 라고,
내가 3번이나 더.....헉.... 같은 반...이였어..... "
어지러운 정신속에서 무슨 소린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귀찮은 건.... 정말 질색이야.....
벌떡-
정신을 다독이며 어느새 눕혀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핫. "
"읏."
왠지 당황하는 녀석들.
" ......난 이만 가볼게. "
"아.......응....."
"어.......응.....
아.......? 같이가, 시온아!!!"
귀찮아도 처음부터 자력으로 걸었다면 됐을텐데.
아무튼 귀찮은 것은 질색이다.
-
오몰오몰.
" 음~ 맛있어! "
헬렐레한 표정으로 초코피아를 씹는 소연,
" 더 먹으려면 먹어. "
나는 벌써 두 개째,
왠지 두 번 먹어버린 것만으로 이가 전부 썩어버린 것만 같았다.
" 너.....너무 달아서,
두 개는 무리. "
역시 무리한 부탁이였나.
어느새 길가는 많이 어둑해져서
가로등이 켜진 채였다.
집이 눈에 보일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 이쯤에서 헤어져야 겠네,
나중에 또 보자."
".......저기,
시온아. "
" ? "
" 그게 말이지,
너한텐 어려운 얘기일 수....도 있는데..."
" 어려운 얘기? "
"응, "
불길한 기분이 든다.
" 이번 주에,
우리 아빠가 돌아오셔. "
" 뭐? "
" 아빠가 한국에 오신다고. "
" 어....어....음......"
잠깐만,
"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가,
이 동네에 돌아오신다고? "
" 응, "
내 기억의 한켠에선
순식간에 악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 저기..... 아빠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데,
우리 집에.....와주면 안될까? "
아니, 내가 직접 가야한다.
안 그러면 살해당해.
" 물.....론.....
나도 오랜만에 아저씨를 뵙고 싶네....."
"정말? 정말!?
정말이지?!
정말 고마워!! "
웃는 얼굴로 녀석은 빙글 돌아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
" 잘 가, 시온아!
꼭 연락할게! "
" 어어...."
저 천진난만한 모습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구나-
아무리 나라도 귀여움을 느끼지 않을리 없다.
-
" 다녀왔습니다. "
신발장은 난장판,
시우 녀석, 그렇게 혼나고도 버릇을 고칠 맘은 없는 건가.
뭐, 귀차니스트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중얼거리며 신발을 정리했다.
그때,
" 한- 시온......."
" 엑? "
퍽,
"우웍."
숙여진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니
완벽한 돌려차기가 내 뺨을 강타했다.
그대로 난 전신에 회전을 먹고 바닥을 구른 뒤 옆 켠의 벽면으로 쳐박혔다.
" 어디서 농땡이치다 이제 들어온 거야?!
늦어도 너무 늦잖아 이 똥개야! "
" 미안......"
여동생의 돌려차기는 아프다.
코피가 나올랑 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