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哭) ― 오호애재(嗚呼哀哉)
아들따라 손주놈들 앞뒤에 주렁주렁 거느리고 서울메누리 앞세우고, 날만 따스해지면 남산공원으로 동물원으로 화신상회로 나들이 실컨 서울구경을 하시겠다는 어머니.
태백산 밑에서 나서 태백산 밑에서 여쉰 환갑투룩 밭갈기와 산에 산나물 이름 섬기기와 호박국에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는 것과.
열두대문집 마름살이 한세월에 천한 사람의 말 두어 천 개쯤 귀에 익혔을 뿐, 흙빛 얼굴을 들어 유쾌한 웃음 한번 온전히 웃어 본적도 없이 느티나무처럼 늙은 어머니.
멧돼지보다도 더한 등살에 자식놈들 뿔뿔이 잃어 버렸든 자식놈들따라, 인제사 좋은 세상 왔으니 기와집 한 채쯤 지니고 서울 살겠다고, 서울에는 사래 긴 밭도 많고 논도 많을 줄 알았다고.
여름에 보리밥 먹기 좋은 상추쌈과 녹두랑 팥이랑 강냉이 당고추 같은 것이라든지, 봄철 들면 뿌려야 할 가지가지 씨앗을, 뜨내기 이불 봇짐 속에 이어 오신 어머니.
왜놈들 가고 또더한 왜놈들 등살에 예나제나 상기도 쫓겨다니기만 하는 둘째의 이름을 불러, 여느 때 참말로 좋은 세상이 와서 참말로 기와집 한 채쯤 지니고 살겠느냐고 물으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날씨가 풀리어 채 따스해지기도 전에 화신상회 동물원 구경을 하시기도 전에, 쫓겨다니는 이 자식놈을 돌볼 겨를도 없이 어데로 어데로 이렇게 바삐 길을 채리시는 것입니까.
목이 터지두룩 아모리 불러도 대답없이 하늘가 자꾸만 머얼리로 바삐 가시는 어머니, 어디메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번지수를 찾아 가시기에 이처럼 이처럼 바쁜 길이옵니까.
가시든 길 돌아오이소 어머니,
왜놈들과 왜놈들의 붙이는 아주 사뭇 쫓아버리고 봄이 오면 틀림없이 이 땅에 봄이 오면, 이불봇짐과 함께 가지고 오신 어머니의 씨앗을 갈아 꽃 피우겠습니다, 꽃 피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