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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쓴 단편 소설 - 그레잇 그레잇 그레잇 개츠비.
미쩌리 | L:0/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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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1-0 | 조회 295 | 작성일 2018-12-01 12: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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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쓴 단편 소설 - 그레잇 그레잇 그레잇 개츠비.

  그레잇 그레잇 그레잇 개츠비.

 

 

 

 

 

 

 

  

  무언가 글을 쓰도록 하자, 조금씩 정리해보도록 하는 거야. 그래, 개츠비, 개츠비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자. 내가 기억하는 개츠비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183cm의 커다란 키에 온갖 종류의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 독서와 토론에서 단련된 달변까지 더해져 개츠비는 더 없이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 개츠비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도대체 언제, 얼마만큼의 책을 읽은 거야?"

  나는 언젠가 개츠비에게 그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개츠비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당시 내 안에서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인 사람의 이미지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 나는 개츠비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개츠비의 삶은 언제나 금요일 저녁처럼 향략과 떠들썩한 활기로 가득했다. 나는 개츠비가 조용한 방에서, 혹은 카페나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글쌔, 적어도 네가 읽은 것들, 말하는 것들은 다 읽어봤지."

  개츠비의 심드렁한 말에 나는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헌책방집의 아들로 태어나, 작가 나부랭이로 살면서 남들보다 서너 배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바였다. 나는 개츠비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당장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럼 ‘그가 내 사랑에 도끼질을 해댈지도 몰라요!’라는 대사가 어느 책에서…"

  “시라노.”

  나는 개츠비의 즉답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얼마 전 ‘시라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책 속의 구절들에 대해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새는 자신의 알을…"

  “데미안. 이건 쉽지. 유명하잖아.”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악한 성격을 숨기고 착한 성격만 나타내려고…”

  “지킬박사와 하이드, 로버스 루이스 스티븐슨. 재밌는 책이지.”

  개츠비는 망설이지도 않고 답했다. 당장 생각나는 책의 대사들은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나는 무리수를 강행하기로 했다.

  "더 이상 유가를 잡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건 오늘 아침 자 K일보 기사지. 기자 이름이 분명 김선웅이던가?"

  '어디 더 말해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개츠비의 눈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의 제목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내가 읽었던 아침 신문의 기사 내용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일까? 나는 기자의 이름까지 맞춰버리는 솜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개츠비는 마치 나의 생각이라도 읽은 것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네가 알고 있는 것쯤이야, 나도 다 알고 있지.”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개츠비는 잔잔히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개츠비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듯 했다. 개츠비의 자신감, 아니 그것을 넘어선 오만함은 마치 큰 바위언덕 위에서 울부짖는 사자 같았다.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개츠비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은 채 의자를 뒤로 쭉 밀어 몸을 일으켰다. 카페에서 나가기 위해 앞서 걷는 개츠비의 하얀 목덜미로 일그러진 흉터가 일렁거렸다. 그것은 개츠비의 유일한 오점이었다. 그러나 굳이 숨기고 싶어 하는 내색은 없는 듯 했다. 그 당당함의 절반이라도 내가 닮을 수 있었더라면, 나 역시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나는 종종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여러모로 개츠비와 정반대였다. 늘 어두운 그늘이 진 표정, 잘할 줄 아는 운동조차 하나 없는 극심한 몸치, 소심한 성격 탓에 숫기가 없어 말주변도 없었다. 나를 특히나 괴롭혔던 것은 목 뒤의 화상자국이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이 커다란 흉터는 늘 나의 자신감을 좀먹었다. 남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누군가 나의 흉터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사람들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들이 나를 피했던 것일까. 둘 다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터놓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던 나의 관심은 좁은 방에 홀로 앉아 읽는 책들, 공허한 상상 속으로 향했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현실의 나와는 또 다른 나를 상상하는 것은 뇌를 녹일 것처럼 달콤한 일이었다. 그러나 망상 속에서 깨어나 적막한 방 속의 나 자신과 마주했을 때 나는 더 없는 자괴를 느꼈다. 나는 매몰되고 정체되어 있었다. 그런 내가 개츠비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개츠비가 나의 음침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시원한 남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개츠비를 처음 만났던 것은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닥쳐오기 시작하는 학자금의 빚에 허덕일 때였다. 배워온 것이 도둑질이라고, 늘 책을 끼고 있었던 나는 내가 직접 쓰게 된 몇 편의 이야기를 묶어 여러 출판사에 보내고 있었다. 물론 빈번히 거절당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거절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삶, 그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글을 쓰는 것, 그 외의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만약 마지막 남은 한 곳에서 더 거절당한다면,

  나는 원고가 들은 서류 봉투를 끌어안은 채 지하철역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5월의 어느 날, 따뜻한 날씨,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오직 나만이 모든 것이 멈춰있었다. 그대로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날리는 자신, 흩날리는 종이뭉치, 붉게 물 드는 선로와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지하철이 진입 한다는 안내가 역 안에 울려 퍼졌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승강장에, 선로에 가까워질수록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지하철이 모습을 드러내며 진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누군가 나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에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머리를 어딘가에 강하게 박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번개가 치듯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빠르게 꿰뚫었다. 겨우 다시 눈을 뜰 수 있었을 때, 내 눈 앞, 그곳에는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이 있었다.

  “위험하잖아.”

 흩날리는 종이들 사이에서 개츠비가 웃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원고들 줍는 것도 일이었지. 역무원한테도 엄청 혼나고 말이야. 그 때 너 나 없었으면 큰일 났어.”

  개츠비는 그 날의 일을 회상하며 나를 놀리곤 했다. 첫 만남 이후로 우리는 종종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개츠비는 기이하게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듯 했다. 읽어봤었던 나의 원고가 마음에 들었다나. 나 역시 개츠비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나의 삶 또한 많은 것이 변해갔다. 개츠비는 내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지인이 되었다. 그러나 개츠비, 그 자신은 수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 있었다. 나는 그의 본명조차 알지 못했다. 재벌 집 막내아들, 강남의 건물주, 유력한 정치인의 무남독녀 외아들 등, 많은 사람들이 개츠비의 정체를 추측하고 궁금해 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널 더러 개츠비라고 부르던데. 알고 있어? 정체가 무엇인지 모를 젊고 부유한 남자. ‘개츠비’말이야. 어디서 그렇게 자꾸 돈이 생기는지.”

  “다 들어오는 구석이 있단 말이지. 그런 너는 뭐에 쓰기에 돈이 매일 없냐.”

  “그러게 말이다. 나름대로 일은 하고 있는데 말이지.”

  당시의 나는 쓰고 있었던 소설이 운이 좋게도 연재 제의를 받게 되었다. 나름의 인세를 받는 프리터의 생활, 그럼에도 늘 상 가난에 허덕였다.  

  “내가 개츠비라, 요즘 세상 치곤 고풍스러운 별명이네. 그럼 너는 닉 캐러웨이가 되는 걸까? 개츠비의 친구 캐러웨이. 물론 개츠비는 캐러웨이의 사촌 여동생을 목적으로 캐러웨이에게 접근 했던 것이지만 말이야.”

  “글쌔, 너도 나를 만나는 이유가 따로 있다던가? 내 사촌동생이라거나. 아니면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개츠비의 연애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만나는 여자를 달마다 한번 씩 바꿀 만큼 개츠비는 여성을 사랑했다.

  “설마. 나는 이성애자야. 너도 그렇지? 아까부터 저 쪽의 여자를 흘끗거렸잖아.”

  개츠비가 짓궂게 웃었다. 나는 자신이 관찰 당했다는 것을 깨달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개츠비의 말대로 나는 카페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여성을 종종 쳐다보곤 했다. 짧게 자른 머리에 날카로운 콧날이 인상 깊은 여자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적었을까. 개츠비가 말했다.

  “사실 아까부터가 아니지? 벌써 며칠이나 연속으로 카페에 왔잖아.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나 마셔대면서 말이야. 가서 말이라도 걸어 봐!”

  개츠비가 턱짓으로 카운터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여성에게 말을 걸어본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말을 걸면 여성도 상당히 불쾌해 할 것이었다. 손님과 점원, 이렇게 바라만 보는 관계라도 좋았던 나는 그 순간을 잃고 싶지 않았다. 개츠비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내놈이 멀쩡한 허우대로 겁먹기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게. 나가자! 오늘은 불금이다.”

  “오늘 월요일인데...”

  “그냥 조용히 있어.”

  그날 저녁 나는 개츠비와 함께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가을날, 평일의 쌀쌀한 저녁임에도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저마다의 갈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변이 온통 사람들로 가득했다. 개츠비는 진정으로 기쁜 듯 밝게 웃고 있었다. 가지런한 이가 네온사인에 하얗게 빛났다. 내게 개츠비의 모습은 마치 거리의 주인, 어떠한 삶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던 몇몇은 개츠비를 알아보고는 그를 향해 인사했다.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다소 불편함을 느꼈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피어올랐다.

  “안되겠어, 개츠비. 나는 집으로 돌아갈게.”

  “그래, 알았어! 라고 보내주고 싶지만 딱 한잔만하자구. 조용한 곳이라도 좋아. 내가 잘 알고 있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로 가볼래? 너도 좋아할만한 곳이야. 여기서도 가까워.”

  나는 영 내키지 않았지만 자기가 살 테니 함께 가자는 개츠비의 부탁을 거절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나는 못이기는 척 개츠비의 손에 이끌려 어떠한 건물 2층에 위치한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D’ 그것이 가게의 이름이었다. 시끄러운 거리와 다르게 가게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마치 별개의 세상 같았다. 어두운 조명과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나는 괜히 긴장했다. 나와 개츠비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을 오가는 사람들이 내 시야의 아래로 긴 선을 이루었다.

  “어때, 잠잠하니 괜찮지?”

  개츠비의 물음에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긴 생머리의 젊은 여성 종업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우리가 앉은 자리로 왔다.

  “어, 오빠! 늘 먹던 걸로 드릴까요?”

  “응, 오늘은 평소보다 1인분 더 추가해서.”

  “흠? 1인분 추가요?”

  종업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뭣하면 2인분 더 줘도 좋고. 두 접시로 나눠서.”

  “흠, 그럼 1인분 더 추가해서 드릴게요. 근데 그렇게 많이 드시면 살찌실텐데?”

  “괜찮아, 나는 다 키로 가니까.”

  하! 재수없어! 하고 종업원은 개츠비의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고 갔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무엇보다도 밝고 명랑해보였다.

  “늘 먹던 거라니, 많이 왔었나봐?”

  개츠비의 태도는 분명히 한두 번 와본 기색이 아니었다. 잘 아는 가게라고 했으니 당연할 것이다. 개츠비는 고개를 내 쪽으로 당기고 은밀히 대답했다.

  “거의 매일 오지. 알바하고 있는 애가 정말로 귀엽잖아.”

  “그렇겠지.”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시선은 메뉴판의 글자들을 의미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비쌌다, 적어도 메뉴 한 가지, 한 가지가 나의 하루 식비와 맞먹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데.”

  개츠비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개츠비는 턱짓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카운터바, 거기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나이는 어려보이기도, 조금 들어 보이기도 했다. 사실대로 말해서 나는 여성의 나이를 가늠 할 줄 모른다.

  “저 여자, 아까부터 우리를 보고 있어.”

  “너를 보고 있었던 거겠지. 그리고 지금은 안보고 있는데?”

  “기다려 봐. 잘 보고 있어봐.”

  5, 4, 3, 하고 개츠비는 나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숫자를 샜다. 이윽고 숫자가 1에 다다르자 베이지 코트의 여성이 우리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싱긋 웃는 것이 아닌가?

  “신기한데.”

  나는 사실대로 감탄했다. 개츠비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을 뿐이다.  

  개츠비는 결국 자그마한 바에서 만난 그 여성과 밤을 함께 보냈다. 개츠비가 여성의 마음을 얻는데 사용했던 것은 단 두 가지로, 냅킨으로 접어낸 꽃 한 송이와 단 한 번의 미소였다. 

  여성, 그래, 개츠비와 나 사이의 일을 이야기 할 때 여성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개츠비에게는 타고난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다. 개츠비는 자신이 한 여자에게 얽매여 있다는 것을 싫어했다. 개츠비에게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낯선 여자들이었다. 그마저도 결국 시간이 얼마 지나면 마음이 식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 연애를 한번 해본적도 없었고 이성과 대화다운 대화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제 만났던 그 여대생이 내 흉터를 보고 아프지 않느냐고 묻는 거야. 그냥 아프다고 해줬지. 걔한테는 적당한 약점을 보여 주는 것이 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여러 가지 의미로서의 관계.”

  개츠비는 자신의 하얀 셔츠 위로 드러난 목, 거기에 수처럼 놓여있는 일그러진 흉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나와 같은 자리에 있는 상처, 저것은 개츠비가 가진 유일한 단점이었다. 나는 그 개츠비의 흉터가 마음에 들었다. 개츠비에게 느끼는 나의 유대감, 그것은 목 뒤에서 희미한 열처럼 번졌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때? 정말로 아파?”

  “아니, 그냥 비올 때 어쩌다 가려운 정도지. 뭐 예전에 다 낫기 전에는 엄청 아팠지만.”

  “그렇군, 근데 그 상처는”어쩌다가, 나는 입을 재빨리 입을 닫았다. 흉터란 숨기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랬다. 그러나 개츠비는 개의치 않았는지, 혹은 나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말이야. 우리 집은 굉장히 잘 사는 편이었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거야. 사업의 부도! 건강의 악화! 뭐 그런 것들. 그래서 결국 집의 가장이 빚에 허덕이다 못해 가족들에게 수면제를 잔뜩 먹이고 집에 불을 질렀어.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것이 바로 나고. 이건 그때의 흔적이야.” 거짓말이지만, 하고 개츠비는 사족을 붙였다.

  “뭐야 그게.”

  “뭐 그 정도의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친구들끼리 불장난 치다가 다쳤다는 건 비밀로 해두자고. 너도 그러고 싶지? 흉터 같은 것은 말이야.”

  개츠비가 나의 두 눈을 빤히 바라봤다. 내 속을 한 없이 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동자, 그 속을 바라보면 왠지 내 자신이 비춰 보이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개츠비는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나의 앞에서 흉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아마 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였으리라고,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너는 어때? 아직도 매일 이렇게 카페를 방문 중이신가?”

   개츠비의 질문이 나를 향했다. 나는 흘끗 카운터를 쳐다봤다. 피곤한 듯 반쯤 졸린 눈을 한 여성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브컷으로 짧게 자른 머리에, 전체적으로 선이 날카로운 얼굴로 얼핏 보면 여성이 아닌 미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성은 핸드폰을 다 본 것인지 고개를 돌렸다. 여성과 눈이 마주칠 것 같아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흐음, 나는 아무리 그래도 긴 머리가 좋아. 여성은 긴 머리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하잖아. 그래도”

  개츠비는 여성을 똑바로 쳐다봤다. 여성은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상당히 예쁘게 생긴 사람이네.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 분명 있겠지. 아니면 없다고 하더라도 금방 생길 테고. 주변에 연락하는 남자들도 많을 거야. 지금도 핸드폰만 보고 있잖아. 이유가 뭐겠어? 아마 남자들로부터 수십 개의 메시지가 와있겠지. ‘뭐해?’나 ‘저녁 사줄게 나와’같은 것들.”

  “네가 그렇게 말하니 흘려듣기 힘든데.”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개츠비의 말은 상당히 그럴 듯 했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물론 내가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은 크나큰 욕심이었고, 이 이상 관계를 진전시킬 의욕도 없었지만 그녀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흐음, 이 친구 중증이로세. 뭐라도 해 봐. 골키퍼 있고 수비수 있다고 골 못 넣냐?”

  “나는 다 못하는 운동 중에서 축구를 제일 못해.”

  “그거 참 비극적이네.”

  개츠비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개츠비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던 탓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혼자서 장을 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과 여성에게 말을 건 다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이었다. 

  “뭐 알아서 잘 해보라고.”

  그 말을 끝으로 개츠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개츠비는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는 듯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날 이후 한 동안 개츠비와 만날 수 없었다. 그 무렵의 언저리부터 나는 어째선지 항상 많은 잠에 시달렸다. 글을 쓰는 직업의 특성상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기도 했고, 개츠비 역시 나를 불러내지 않았기에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혀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일말의 꿈도 꾸지 않은 채 마치 검은 심해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깊은 잠을 잤다. 이상하게도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어느 날 글을 쓰던 자세 그대로 잠들기 까지 했을 때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새 차게 저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커피라도 마셔야겠다.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주로 갔었던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몸이 무거웠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유달리 멀고 길게 느껴진 거리를 지나 마침내 카페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머리에 피가 몰리는 듯 했다. 그토록 졸렸던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개츠비, 그곳엔 개츠비가 있었다. 그렇다면 팔짱을 끼고 있는 저 여성은 누군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짧은 보브 컷에 얼핏 보면 잘생긴 소년으로 착각 되어질 만큼 선이 날카로운 여성. 그 둘이 막 카페를 빠져나오다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오빠 왜 그래?”

  갑자기 멈춰선 개츠비의 안색을 살피며 여성이 물었다. 나와 개츠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나는 애초에 말주변이 없었다. 차라리 개츠비가 무언가 말을 해주었다면 좋았으련만, 개츠비 역시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 쳤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등지고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모처럼 꾼 꿈에서 개츠비가 나타났다. 여성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개츠비, 즐거워하는 여성. 그냥 계속 잠을 청했으면 좋았으련만,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더라면 좋았으련만.

 

  “선화랑 몇 번 얘기를 나눠봤었는데 상당히 재밌는 여자더라고.”

  늘 그랬듯이, 카페에서 다시 만난 개츠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처럼 오만하고 당당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점원과 손님의 관계일까.

  “그래서, 둘이 사귀게 된거야?”

  “설마. 내가 한 여자에게 얽매일 것 같아?”

  개츠비는 카운터로 얼굴을 돌렸다. 점원, 선화라는 이름의 여성이 개츠비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어보였다. 개츠비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개츠비의 입이 움직였다.

  “근데 저쪽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 사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내가 첫 번째 남자친구라던데. 듣는 순간 으악, 좀 깨더라. 나비가 꼬이지 않았던 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흐응….”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맞장구를 쳐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뭐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 가면 되겠지. 선화가 말하기를 자기가 좀 차갑게 생겨서 사람들이 잘 접근을 못했다는 모양인데.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번호를 물어본 남자였데.”

  “잘됐네.”

  “그래 뭐, 그렇게 됐어. 어차피 며칠 만나지도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말인데, 저번에 추천해줬던 여행지가 어디였지? 그 연예인이 다녀왔다던.”

  “그건 왜.”

  “왜기는 뭐든지 빨리 끝내야 할 거 아냐. 벌써 1박 2일로 여행가자고 날짜도 잡아놨다고. 굉장히 좋아하던데?”

  나는 개츠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면 알아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츠비는 동요하는 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했다.

  “외모는 사실 내 취향이 아니지만 말이야. 몸매가 장난이 아니야.” 그 왜, 만져보니 손에 닿는 볼륨이──싫어하는 척──하여간────내숭────

  “그래서 언제인데.”

  “10월 21일. 바로 내일 모레야. 그러고 보니 그 날 수연이랑도 약속이 있었는데. 그 술집에서 만났던 여대생 말이야. 하, 어쩌지. 사실 나는 수연이 쪽이 더 취향인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옅은 분노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개츠비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선화랑은 네가 나대신 갈래? 너 선화 좋아하잖아.”

  나는 거리로 나왔다. 뒤에서 날 부르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러나 곧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에게는 말을 걸어볼 용기조차 낼 수 없는 여성들이, 개츠비에게는 그저 귀찮은 존재들, 하룻밤의 유흥에 불과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뒤죽박죽 섞였다. 깊은 곳에서 뻗쳐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오직 발을 내딛는 것만 생각했다. 가을의 바람이 서늘하게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날의 그 이야기가 나와 개츠비의 마지막이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개츠비는 선화라는 여성과의 다음 데이트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어디서도 개츠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개츠비가 사라진 것이었다.

 

  개츠비, 그 친구는 정말로 홀연히 사라졌다. 몇 달간 서로의 음악 취향, 취미, 하물며 이를 닦는 순서까지 알고 있었을 만큼,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꿰고 있었던 나와 그의 사이였지만 막상 그렇게 사라지게 되니 나는 그 녀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개츠비는 내 인생에서 한 순간 짧게 빛난 채 빠르게 사그러져 갔다. 개츠비를 만나 변했던 나의 삶 역시 다시 제 자리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개츠비가 사라진 이후 나는 대체로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애초에 친구가 없기도 했고,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 혹은 불신 같은 감정들이 피어올라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르바이트와 간간히 들어오는 인세로 버티고 살았던 궁핍한 삶이 더욱 더 무너져 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집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것뿐이었다. 얼마 지나 그 마저도 지겨워 질 때 쯤, 무심히 집어든 책무더기 사이에서 한 장의 종이가 툭 떨어졌다. 대체 무엇일까, 이 좁은 단 칸 방에 내가 모르는 것들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종이는 명백히도 낯선 것이었다. 종이에는 글자와 일련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것이 곧 무언가의 주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의? 혹시 개츠비가 자신의 집 주소를 나의 책들 속에 몰래 껴놓은 것이 아닐까? 아니, 개츠비를 이 집에 초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왠지 낯이 익은 그 번호에 나는 핸드폰을 들고 주소를 입력했다. 묘한 긴장감에 손에서 땀이 났다.

  ‘D’

  그것은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D’, 그러한 이름을 가진 술집, 개츠비와 함께 갔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일순 스쳐지나갔다. 나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옷을 주워 입고 거리를 향했다. 평일인지 주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늘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번화가의 거리, 나는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정신없이 걸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다. 네온사인의 빛이 강렬하게 눈앞에서 번쩍였다. 누군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형 오랜만이에요, 왜 요즘은 축구모임에 안 나오세요?”

  아니, 정말 그것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던 것일까? 일종의 피해망상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그들의 두 눈동자와 하얀 이빨들만이 공중에 떠서 내 주변을 맴돌았다. 목 뒤의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가게가 있는 건물에 도착 했을 때 나는 거의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하나씩 올라 가게의 문을 열었다.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나는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조용한 가게였다. 나는 빠르게 눈을 움직여 가게 안을 살폈다. 개츠비의 모습은 없었다. 종업원의 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 종업원이었다. 종업원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여기 자리 방금 치웠으니까 앉아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종업원이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희미한 향수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얼떨결에 창가의 자리에 앉았다. 

  “늘 먹던 것으로 주면 돼요?”

  “늘 먹던 것?”

  내가 되묻자 종업원이 명랑하게 말한다.

  “연어 카르파쵸랑 맥주 한 병. 오늘은 오랜만에 왔으니까 새우튀김도 서비스로 드릴까요? 좋아하잖아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연어 카르파쵸가 무슨 요리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맥주라니? 나는 도수가 낮은 술이라도 한 모금을 마시면 금방 취해버리기에 술은 즐기지 않았다. 새우로 넘어가자면 알러지가 있기에 입에도 대지 않는 음식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음식이 눈앞에 차려졌다. 긴 머리의 종업원은 익숙하게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나의 테이블에 배치해놓고는 나와 마주 앉아버렸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는 거에요? 나도 오늘 하루만 재워주면 안 돼요?” 종업원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집?”

  “여기서 엄청 가깝잖아요. 내일 바로 출근할 수 있게. 응? 안 잡아먹을 테니까!”

  “가까워?”

  나는 계속해서 바보처럼 되 물을 수밖에 없었다. 종업원은 검지를 펴 천장을 가리켰다.

  “여기 바로 위층이잖아.”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 했다. 내가 복도로 나서자 어두운 계단에 저절로 불이 들어왔다. 나는 난간을 붙잡고 빠르게 계단의 몇 칸을 건너뛰었다. 3층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나는 그 중 가장 깊숙이 위치한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왠지 정신이 아찔해졌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열리지 않았다. 번호로 된 잠금장치가 눈에 보였다. 0817, 나의 생일을 입력했다. 열리지 않았다. 조금 더 많은 숫자가 필요한 것인가? 나는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머릿속에 그날의 숫자를 떠올렸다. 천천히 번호를 눌러본다. XXXX0527, 낯선 알림 음과 함께 잠금이 풀렸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집안의 공기가 얼굴에 화악 끼쳐왔다. 낯선 냄새들이 가득했다. 무언가 썩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방안에서 아무렇게나 손을 뻗자 형광등의 스위치가 그 자리에 있었다. 손가락에 조금 힘을 주자 똑딱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밝아졌다. 책상과 침대, 장롱하나, 그리고 소파와 TV. 그것은 누군가의 방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잘 정돈 되어있긴 했으나 누군가 살고 있다, 혹은 살고 있었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침대 하얀 이불, 그 위에 놓인 핸드폰을 발견했다. 더 없이 느리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전원이 켜져 있지는 않았다. 이윽고 불빛이 들어오며 수백 통의 부재중 전화가 한꺼번에 표시됐다. 나는 부재중전화의 목록 중 가장 맨 위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울려 퍼지는 신호음만큼이나 내 숨소리가 커졌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끼니를 제 시간에 먹지 않아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자조적인 생각에 전화를 끊고 싶어졌다. 곧 신호음이 멈추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들려온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또 그렇다고 통화를 끊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지? 그렇지? 지금까지 뭘 하다가 이제야 전화를 거는 거야? 지금 어디야?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점점 더 광적인 흐느낌으로 변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통화를 끊자마자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에 날아들었다.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받지 않았다. 얼마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핸드폰의 벨이 울려 나는 그만 모든 것이 부서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종이와 펜은 어디에 있을까. 무언가 글을 쓰도록 하자, 조금씩 정리해보도록 하는 거야. 그래, 개츠비, 개츠비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자. 우선 내가 기억하는 개츠비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183cm의 커다란 키에 온갖 종류의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

 

  정말 그래?

 

  나는 움직이던 펜을 멈추었다. 끊임없이 울리는 벨소리를 타고,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집에 누군가가 있었다. 어디일까. 이 좁은 방 안에 누군가가 숨어있단 말인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의 밑을 확인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장롱에 안일까? 누군가가 숨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장롱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나를 덮쳤다.

  그것은 누군가의 옷의 무더기였다. 장롱 안을 가득 채운 옷 무더기를 헤집어 보았다. 그곳에도 사람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잖아.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전보다도 더욱 선명했다! 나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화장실, 그것은 화장실 안이었다. 나는 굳게 닫혀있는 화장실의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앞에 거미줄처럼 금이 간 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세면대의 깨진 거울 사이로 빨갛게 굳은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손을 이마에 가져다댔다. 아직 낫지 않은 상처에 이마가 조금 쓰라렸다.

 

  아─, 그 날 내가 너를 죽였구나.

 

  나는 잔잔하게 웃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한참이나 울려대던 전화벨소리가 이제는 친근하기까지 했다. 통화가 연결되자 나를 향해 두서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여성에게 나는 언제나처럼 말했다.

 

  “응, 선화야, 오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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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수저
여기에 이런 소설이 올라온게 얼마만인지...
재밌게 잘 읽었어요
다음편 기대합니다^_^
2018-12-01 19: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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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쩌리
너무나도 오랜만에 써본 단편이라 문장도 서툴고 구조도 빈약하고 해서 영 부끄럽네요ㅜㅜ 다음 글도 읽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2018-12-02 20:17:29
추천0
[L:14/A:569]
다시시작해
주인공이름이 개츠비라서 잘 이입이 안됬네요
다음 작품은 꼭 제대로 읽어보겠습니다
2018-12-05 02:30:05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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