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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천 일의 기적
대악마 | L:38/A:461
71/210
LV10 | Exp.33% | 경험치획득안내[필독]
추천 1-0 | 조회 248 | 작성일 2019-02-23 01: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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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천 일의 기적

 

츄잉을 켰다가 봉변 당했다.

 

츄잉이라는 이름은 사이트의 이름이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내가 원하는 캐릭터들도 수집할 수 있고, 구매할 수 있다.

 

천 일을 출석체크하면 가장 높은 등급인 유니크 등급 캐릭터를 주는데, 나는 이날을 학수고대하며 여태껏 살아왔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살아온 인생이 스물이다. 그중 고작 삼 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나에게만큼은 오늘이 기적이다.

 

유니크가 뜰 확률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천 일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오늘이 출석체크를 하는 천 일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모든 염원을 담아 참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길 바라며, 출석체크를 하던 순간이었다.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시야가 탁하고 멀어졌다.

 

가까운 곳을 보고 있었는데 강제로 시야가 잡아 당겨진 느낌이다.

 

세계가 치즈처럼 길고 길게 늘어져서는, 내 정신까지 아득해지며 기절하고 말았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서 깨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를 깨운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둔탁한 몸뚱이, 동그란 눈과 툭 튀어나온 노란 부리. 오리 같은데 이상하게 천을 뒤집어썼다.

 

왠지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다. 눈을 끔벅끔벅하더니, 판자를 꺼내어 나에게 들이민다.

 

나무판자에 천천히 새겨지는 글씨.

 

저를 뽑아주시다니, 저는 유니크 엘리자베스입니다.’

 

?”

 

녀석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렇다. 어디서 많이 봤나 했는데, 유니크에서도 극악의 확률로 등장한다는 최악의 유니크 캐릭터였다.

 

유니크 캐릭터는 일반적으로 보통 캐릭터의 가격을 압도적으로 웃돈다.

 

그런데 이 유니크 캐릭터는 영 인기가 없어서 가격이 보통 레어 캐릭터랑 비슷하다.

 

내 천 일의 기적이 엘리자베스라니.”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유니크야 구시대의 유물이다. 이제는 패치되고 없어졌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이미 삭제된 캐릭터를 유니크로 뽑아버리는 나도 끔찍한 똥 손임이 틀림없었다.

 

난 귀여운 키스샷 쨩이나 카토 쨩이 뜰 줄 알았다고. 여기는 어디야?‘

 

여기는 츄잉 세계입니다. 주인님께서 넘어오셨어요.’

 

주인님이라니, 네가 하니 안 어울린다.“

 

본인은 아는가야 모르겠지만, 흰 식탁보를 뒤집어 쓴 녀석의 아래로, 검은 털 같은 게 삐져 나왔다. 이 속에는 아저씨가 있는 게 틀림없다.

 

놈의 천을 잡아당겨 보려 했지만,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휘저으며 마구 저항했다.

 

어떻게 해야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

 

저도 모르겠어요.’

 

나는 녀석과 함께 펼쳐진 초원을 걸어 나갔다.

 

아무리 걸어 나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루해 있던 찰나에, 어딘가에서, 소녀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 저기로 가 보자.“

 

엘리자베스는 나를 천천히 따라왔다. 뒤뚱거리는 폼이 제법 귀여웠다.

 

, 뭔 이렇게 잡레어가 많아. 츄잉은 쿠폰을 쓸데없이 많이 준단 말이지.“

 

, 주인님. , 저를 삭제하지 마세요.“

 

한 소녀가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울먹이고 있다.

 

유저로 보이는 그가 오른손을 그녀에게 뻗자, 그녀의 곁에 하얀 창이 떴다.

 

삭제하시겠습니까?’

 

소녀는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유저는 소녀의 경매장 가격을 확인했다.

 

, 이거 거의 오백원이네. 착한 경매 등록비가 더 비싸겠다. 삭제.“

 

그가 삭제를 누르자, 소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유저를 바라보았다.

 

, 주인님. 정말 좋아해.“

 

그렇게 일반 캐릭터로 보이는 소녀는 잔상이 되어 사라졌다.

 

, . 다시 쿠폰 돌려.“

 

유저는 몇백 개나 되는 쿠폰을 돌렸다.

 

그의 곁에 수많은 캐릭터가 생겨나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유저가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젓자 창이 떴다. 버튼을 누르자 네모난 기계가 초원 중앙으로 떨어진다.

 

유저는 캐릭터들의 얼굴을 살펴본 후에, 명령을 내렸다.

 

일반 캐릭터 전체 삭제.“

 

일반 캐릭터들이 비명을 지르더니 재로 화하여 분분히 흩어진다.

 

값어치 나가는 너, , 빼고. 나머지 전부 저기로 들어가.“

 

?“

 

레어 캐릭터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인에게 죽음을 강요받는 것이다.

 

거대한 기계, 분해기의 내부에서는 톱날들이 얼기설기 뒤엉키고 있다.

 

그 사이로 갈가리 찢긴 살점과 손가락 잔해가 보였다.

 

, 주인님. 하지만 어떻게 저기를.“

 

아니, 시간 없으니까 닥치고 들어가란 말이야.“

 

유저는 한 레어 캐릭터의 머리채를 잡아서는 단숨에 분해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피부가 찢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노란 액체와 선혈이 허공을 수 놓았다.

 

여자 캐릭터의 남은 하반신이 경운기처럼 달달 떨리고 있다. 그리고 분해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해기는 소녀의 시신을 먹어 치우고는, 더 달라는 듯이 이마에서 빨간 불을 껌뻑였다.

 

레어 캐릭터가 최소 세 개 필요합니다.“

 

아니, 너희 왜 그래? 줄 서서 빨리 들어가라고. 시간 없으니까. 너네 갈거나 팔고 빨리 유니크 뽑기를 해야 해.“

 

캐릭터들의 소유권은 유저에게 있었다.

 

츄잉 사이트의 시스템 구성상, 캐릭터들은 유저의 명령을 거스를 권한이 없었다.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분해기 앞에 줄을 섰다.

 

나는 참지 못하고 유저에게 달려가서 놈의 목덜미를 쥐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나는 그대로 놈을 부딪쳐서 깔고 앉았다. 그리고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누군가 내 손목을 쥐었다.

 

주인님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유저.“

 

탐스러운 금발 머리에 무거운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소녀.

 

, 7 강 레어 세이버. 역시 만들어 놓은 보람이 있어.“

 

세이버는 내 손목을 쥐어서 잡아당기고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은 완력이었다.

 

달려온 내 엘리자베스가 봉을 꺼내 들어 세이버에게 대응했다.

 

하지만 그 봉은, 세이버가 대검을 꺼내 휘두르자 단번에 부서지고 말았다.

 

너는 그걸 유니크 캐릭터라고 가지고 있냐? 갖다 팔아.“

 

유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며 낄낄댔다.

 

난 엘리자베스의 부축으로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유저는 세이버의 턱을 잡고는 좌우로 흔들어 본다.

 

그래. 캐릭터는 모름지기 이쁘고, 비싸고, 강화 차수가 높아야지. 그래야 난투극에서도 이긴다고.“

 

이 와중에도 유저의 분해기에는 레어 캐릭터가 차곡차곡 들어가고 있었다.

 

, 너희 들어가지 말라고.“

 

나는 그들의 행렬을 막으려 했지만, 캐릭터들이 오히려 나를 밀쳐냈다.

 

그들 중 한 남자 캐릭터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너도 저 인간이랑 똑같은 유저인 주제에. 우리가 싸다고 갈고, 필요 없다고 갈았잖아, 그럴 거면 쿠폰은 왜 깐 건데.“

 

나는 그들에게 해명했다.

 

그게, 아니야. 쿠폰 유뽑을 하려면 레벨이 15가 넘어야 하는데 난 10이라서, 쿠폰을 쓸 수가 없으니까 레어 쿠폰 뽑기를 한 거라고. 그리고 칸수가 모자라니까.“

 

핑계 대지 마.“

 

남자 캐릭터는 나를 비웃고는, 그대로 분해기 속으로 달려들었다.

 

그의 사지가 분해되고, 뼈가 으스러지고, 안구가 톱날에 갉히어 산산이 흩어진다.

 

나는 유저의 레어 캐릭터들이 모조리 A4 용지처럼 갈가리 분해될 때까지 오열하기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이럴 거면 나도 7강 레어 캐릭터좀 만들어 놓을걸.“

 

내 곁에는 엘리자베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레어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그 유저를 이길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몇 번 덤벼 봤지만 세이버에 얻어맞기만 하고 그대로 쫓겨났다.

 

엘리자베스가 내 등을 토닥토닥 쳐 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츄잉의 세계는 기이했다. 있는 건 드넓은 초원밖에 없으며, 낮은 짧고 밤은 길다.

 

밤의 싸늘한 공기는 척수까지 저려올 정도로 추웠다.

 

엘리자베스가 나를 끌어안았다. 천 재질이 뭐로 이루어졌는지 제법 따뜻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몸을 몇 번 더듬어보니, 잘록한 허리가 손에 잡혔다. 그녀는 당황스러운지 뒤로 물러났다.

 

, 여자였냐?“

 

놈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진다.

 

나는 엘리자베스라는 캐릭터를 잘 모른다. 유니크 뽑기를 해서 이 녀석이 나오지 않았다면 영영 이 캐릭터에 대해선 모른 채 살아왔으리라.

 

겉은 천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속은 귀여운 미소녀였다던가, 그런 설정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네.“

 

나는 추워서 그녀를 껴안았다. 엘리자베스는 살짝 저항하다가 결국 나를 안고 잠들었다.

 

****

 

눈을 떠보니 알림창이 와 있었다.

 

[접속 오류 보상으로 100만 포인트와 300 쿠폰을 지급합니다.]

 

, 여기서도 이런 게 있나. 하긴, 이 포인트로 맨날 유뽑도 많이 했지.“

 

나는 멍한 오리처럼 생긴 엘리자베스를 힐끔 보고는, 보상을 받았다.

 

보상을 받자 내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동전 같은 쿠폰이 수 백개 들어차 있었다.

 

이걸 누르면 캐릭터가 나오는 건가?“

 

동전을 꺼내서 쿠폰을 개봉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나온 캐릭터를 분해하거나 돌릴 거라면, 처음부터 쿠폰을 열지 않는 게 나았다.

 

어제 유저를 보면서 울먹였던 소녀 캐릭터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입양한 애완동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것과 진배없었다.

 

아니, 애초에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데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나와 어제 보았던 유저는 별 차이가 없다.

 

필요한 캐릭터가 중요한 것이지, 그 외에 캐릭터는 의미 없다.

 

캐릭터에 인권을 부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공과 일로 이루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초원을 걸어가고 있는데, 주변에서 상반된 환호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 유뽑 했는데 레어 캐릭터 나옴. 갈아야지.“

 

쿠폰으로도 돌렸는데 싹 다 레어. 합성시키자.“

 

혼돈의 도가니였다. 죽어가는 캐릭터들이 괴성을 지를수록 유저들의 환호성은 높아져만 갔다.

 

여기에 계속 있다간 점점 미쳐갈 것만 같았다.

 

즐거워하는 유저들의 목소리와 괴로워하는 캐릭터들의 신음이 진자처럼 머릿속을 왔다 갔다 했다.

 

족히 보아도 유저들은 수백 명이다. 나 혼자서 그들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엘리자베스가 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판자를 들어서 나를 향해 보여주었다. 새하얀 글씨가 수면에 떠 오르듯이 차오른다.

 

주인님, 저를 경매장에 파세요. 그리고 더 강한 캐릭터를 구매해요.’

 

싫어. 지금 캐릭터가 너 밖에 없구만 뭘 팔아.“

 

저는 전투력도 없는 캐릭터에요.’

 

그건 내가 능력치 부여를 안 해줘서 그런 거 아니야?“

 

일단 캐릭터가 생겼으면, 그 캐릭터에 능력치를 부여해줘야 전투력이 생긴다.

 

그렇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능력치를.’

 

내 처음 유니크는 능력치 개방 안 하고 내버려 둘 거다. 무려 천 일이나 걸려서 얻었으니까.“

 

하늘에 불덩이 같은 태양이 살긋 떠올랐다.

 

나는 태양을 향해서 꾸준히 걸었다. 유저들로부터 멀어질 때까지 그렇게 걸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건너편에서 하얀 팬더가 걸어온다. 나는 팬더의 정체를 직감했다.

 

츄잉 사이트의 마스코트인 츄잉이다. 그의 정체는 운영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고 팬더에게 달려갔다.

 

우웅, 무슨 일?“

 

팬더는 그렇게 말했다. 팬더가 말을 한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이다.

 

운영자님 아니세요? 저를 이 세계에서 꺼내주세요.“

 

? , 사이트 속으로 잘못 들어온 건가. 비밀을 들키고야 말았구만. 후후.“

 

팬더는 내 옆에 있는 엘리자베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팬더의 미간이 좁혀진다.

 

이상하다. 엘리자베스 유니크 캐릭터는 하도 원성이 높아서 지워버렸는데, 왜 아직도 남아 있는 거지?“

 

팬더는 호출기를 품에서 꺼내더니, 버튼을 눌렀다.

 

, 그렇구먼. 더미 데이터 같은 건가. 거기 있는 엘리자베스는 남은 과거 데이터가 씐 캐릭터인듯한데. 데이터가 겹쳐서 지가 엘리자베스인 줄 아는 모양이네. 삭제해야겠어.“

 

잠시만요, 삭제한다고요? 제 첫 유니크를?“

 

엘리자베스는 두려움을 느꼈는지 내 뒤에 숨었다.

 

, 보상은 해 줄게. 그 뭐야, 카와이한 유니크 카토 쨩으로 해주면 되지?“

 

, 그건 좀. 끌리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엘리자베스는 큰 눈망울을 글썽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 애로 충분히.“

 

네가 괜찮은 게 아니라 내가 안 괜찮아. 사이트 오류 걸려. 잡아라. 스탯 250 유니크 10강 키스샷.“

 

팬더의 옆에서 갑자기 금발의 유녀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손톱이 길쭉한 손으로 내 목덜미를 쥐었다.

 

엘리자베스는 품속에서 분쇄봉을 꺼내서는 그녀의 손을 내려쳤다. 그리고 내 오른손을 쥐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쫓아.“

 

츄잉이 그렇게 말하자, 키스샷은 쏜살같이 나를 쫓아왔다.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달리고 있었지만 키스샷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잡히기 일보 직전이다.

 

, 안 되겠다. 쿠폰 개봉!“

 

쿠폰을 한꺼번에 10개씩 개방하는 순간, 수많은 캐릭터가 나타났다.

 

저 캐릭터랑 싸워줘.“

 

그렇게 명령하자 캐릭터들은 각자 가진 무기를 쥐고 키스샷에게 달려들었다.

 

쿠폰을 개방하면 유니크 아래인 레어 등급만 나온다. 유니크 등급에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키스샷이 거대한 장도를 휘두르는 순간, 일반 캐릭터들은 사선으로 몸이 베어지며 피떡이 되어 스러졌다.

 

레어 캐릭터들은 한 방에 쓰러지지 않았지만 키스샷과 몇 합을 겨루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래도 우리는 간신히 키스샷을 따돌릴 수 있었다.

 

****

 

캐릭터들이 전부 죽어 버렸네.“

 

엘리자베스와 나는 어찌어찌 찾아낸 동굴 속에 숨었다.

 

밤은 또다시 급격하게 빠르게 찾아왔다.

 

하얀 달빛이 동굴로 스몄다. 우리는 들키지 않기 위해 동굴 깊숙한 곳에 숨었다.

 

하늘을 보니, 서너 개의 캐릭터들이 하늘을 날며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분명 나를 찾고 있다.

 

캐릭터들이 근접하면 우리는 숨을 죽였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엘리자베스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 주인님을 여기서 나가게 할 방법을 알아요.’

 

어떻게 하는데?“

 

초원의 중앙으로 가면 거대한 포탈이 있어요. 거기에서 주인님이 튀어나오셨거든요. 이틀에 한 번씩 포탈이 열리는데, 내일 아침에 그곳으로 가시면 될 거에요.’

 

,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밤은 점차 깊어졌다. 동굴은 이슬이 차서 싸늘하고 눅눅했다. 이빨이 덜덜 떨려왔다.

 

내일이면 너랑도 안녕이네.“

 

엘리자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판자로 말한다. 애초에 어둠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말을 못 한다.

 

츄잉 사이트를 끊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웹사이트라 이런 식으로 캐릭터와 모험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

 

나도 바쁜 사람이다. 대학생이고, 언제까지 츄잉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

 

엘리자베스가 내게 기대왔다.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

 

남은 쿠폰을 전부 개봉했다.“

 

이 백개의 캐릭터가 내 앞에 늘어섰다.

 

본래라면 캐릭터 수 제한이 있었겠지만, 여기선 그런 게 없다.

 

그중 늑대 캐릭터가 보였다. 나는 그 캐릭터 위에 엘리자베스와 탑승했다.

 

엘리자베스, 방향을 알려줘.“

 

엘리자베스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뒤를 따라서 호위하듯이 캐릭터가 달려오고 있다.

 

그 순간이다, 거대한 대검을 든 세이버가 측면에서 나타나 내 캐릭터를 단숨에 뭉게 버렸다.

 

,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엘리자베스는 판자로 뭐라 말했지만, 나는 늑대를 조종하느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무지막지한 유니크 캐릭터들이 연달아서 등장했다.

 

새하얀 백발 캐릭터가 등 뒤에서 날개를 뿜으며 달려든다.

 

그럴수록 방패가 된 내 캐릭터들은 거품처럼 무너져갔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고대하던 포탈이 보였다.

 

저기야.“

 

나는 늑대에서 내렸다. 유니크 캐릭터들이 나에게 달려들자, 엘리자베스가 내 앞을 막고 말했다.

 

제게 능력치를 지정해주세요.’

 

능력치 지정!“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내 몸이 포탈 속으로 빠져들고, 엘리자베스는 유니크들의 공격으로 산산히 흩어져 버렸다.

 

*****

 

눈을 뜨니 컴퓨터 앞이다.

 

그리고 나는 츄잉 사이트를 보고 있다.

 

, 돌아왔다.“

 

내 캐릭터 창에 처음 보는 캐릭터가 있었다.

 

이미지에는 엑스자가 쳐져 있다. 소위 말하는 투명 캐릭터다. 레어 캐릭터 합성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능력치가 설정되어 있었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남아 있는 100만 포인트를 확인했다.

 

유뽑이나 해 볼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유니크 뽑기 버튼을 눌렀다.

 

[축하합니다! 유니크 캐릭터에 당첨되셨습니다.]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유니크 캐릭터 메세지.

 

역시나, 투명 드래곤 캐릭터가 유니크 캐릭터로 대체되어 있었다.

 

내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역시 그 녀석, 속은 귀여운 미소녀 캐릭터였잖아. 흑발 교복이라니 섹시하네.“

 

어떤 캐릭터는 겉모습이 이상하고 비호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 무엇보다 귀한 진주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때는 엘리자베스였던 캐릭터를 몇 번 눌러 보고는, 츄잉에서 로그아웃했다.

 

 ---

 

쓸데없이 많이썻군요 8000자를 맞췃슴니다.

올만에 츄잉왔다가 이벤한다길래 즐겼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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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34/A:508]
종이
접수.
2019-02-23 02:13:09
추천0
[L:34/A:381]
地獄フブキ
http://m.chuing.net/rank/chara_main6.php?ed_num=2883

얘 유니크 있었었나요...?
2019-02-23 08:30:22
추천0
[L:48/A:504]
은발기로리
ㅇㅇ 마요네즈 쳐먹으면서 빠따 들고 있었나?
2019-02-23 23:28:01
추천0
[L:7/A:145]
인간맨
조금 슬픈 내용인 것 같네요.
2019-02-24 15:45:24
추천0
[L:57/A:221]
김무제
재밌네요
생각보다 감동적인걸
2019-03-08 19:54:23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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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류(支流)에 서서 - 신석정
크리스
2021-08-28 0-0 248
10227 시 문학  
샘물이 혼자서 - 주요한
조커
2021-08-27 0-0 228
10226 시 문학  
새벽 편지 - 곽재구
조커
2021-08-27 0-0 234
10225 시 문학  
새벽 1 - 정한모
조커
2021-08-27 0-0 222
10224 시 문학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조커
2021-08-26 0-0 222
10223 시 문학  
새 - 김지하
조커
2021-08-26 0-0 244
10222 시 문학  
새 - 박남수
조커
2021-08-26 0-0 224
10221 시 문학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조커
2021-08-25 0-0 214
10220 시 문학  
상행(上行) - 김광규
조커
2021-08-25 0-0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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