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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ω 하나 남김 13권 [Interlude] 모음
UNIQUE | L:95/A: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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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162 | 작성일 2018-12-21 20: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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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ω 하나 남김 13권 [Interlude] 모음

 

이 게시글은 번역본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발본을 기다리시는 분은 스포성 글이니 뒤로 가시면 압도적 ㄱㅅ

 

 

목차

interlude

1. 차분히 히라츠카 시즈카는 언젠가의 옛일을 그린다.

2. 무슨 일이 있어도, 잇시키 이로하에게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interlude

3. 마지막까지 유이가하마 유이는 계속 지켜본다.

interlude

4. 다시금, 히키가야 하치만은 말을 건넨다.

5. 모르는 사이에, 엔드 롤은 흐르기 시작한다.

interlude

6. 남몰래, 하야마 하야토는 후회한다

interlude

7. 렌즈 너머로, 에비나 히나가 보는 풍경은.

interlude

8. 적어도, 더는 잘못하고 싶지 않다고 바라며.

interlude

 

7개의 interlude 중에 첫 번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흐르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져 가고.
그리고 나서야 겨우, 무엇이 옳았던 것일까, 뒤돌아본다.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이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며, 마치 타이르기라도 하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날이 밝는 새벽녘에.
빗방울이 맺히는 한낮에.
가루눈이 흩날리는 해질녘에.
어슴푸레 달이 일렁이는 한밤에.
언제나 답을 내려야 할 장소와 기회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때마다 최적해(最適解)를 도출하려 해 왔다.
하지만, 결코 정답을 내려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마도, 분명.
이것이 최선일 거라며.
애매한 회색의, 정확하지도 빗나가지도 않은 선택지를 취해 왔다.
붙지도 떨어지지도 상처 주지도 않고, 정오(正誤)도 진위도 가리지 않고.
하고픈 말을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하고픈 말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무슨 말을 입에 담을 권리가 있었을까.
그러니,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저 올바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과오를, 실수를, 용납하고 싶지는 않다.

더는, 잘못되어서는 안 되니까.

 

2. interlude (이로하)


그건 사실상 고백이었다.
아니면 사랑 싸움이나 이혼 이야기.
딱히 어느 쪽이든 상관도 없고, 아무래도 좋지만.
그래도, 그런 걸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어쩐지 바보 같다.

뻔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마치 아무 관계없는 남이라는 걸 똑똑히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름 돋는다고, 빈정대는 말 한마디라도 던지고 싶어진다.
정말로, 똑바로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
아까 선배가 나갔던 문을 다시 한 번 쏘아보았다.
설마 이렇게나 제대로 확실히 보기 좋게 이야기를 비비 꼬아 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한마디 해 주고 싶은 기분.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그런 이야길 하면, 곤란하다.
평소에는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 눈에, 입도 불만으로 꽉 차서 비뚤어져서는,

거짓말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는 완전 적당한 말만 늘어놓고,

이쪽에서 살짝 건드려 보면 금세 쩔쩔매는 주제에, 리액션은 밋밋하고 반응도 둔하다.
그런데, 굉장히 가끔씩, 엄청 이따금, 진지해 보이는 표정을 짓기 때문에 더 문제다.
정말로 정말로, 똑바로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
애초에, 아직까지도 책임 안 져 주고 있으면서.
그래 놓고, 책임이네 뭐네 핑계 대듯이 가볍게 얘기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선배가 얘기하는 내내, 계속 숙이고 있던 내 얼굴은 보지도 않았달까,

솔직히 안 보였을 거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부분은 알아서 좀 챙겨 줬으면 좋겠다.

선배도 유키노 선배도 유이 선배도 귀찮은 분들이지만, 나도 은근히 귀찮은 성격이니까.
정말로, 귀찮다.
아까를 떠올렸더니, 기껏 시작된 일도 그만 손이 멈추고 만다.
시계를 쳐다보기도 하고, 아까 나왔던 얘길 멍하니 생각하기도 하고,

슬슬 가야 될 시간이네 하고 정신을 팔기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내가 다섯 번 시계를 봐도, 2분밖에 흐르지 않았고, 한숨을 짓는 건 여덟 번째였다.
아홉 번째 한숨을 쉬었을 때, 유키노 선배가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고 눈시울을 꾹 눌렀다.

눈의 피로에 좋다나 뭐라나 하는 안경은 쓰지 않고, 그저 책상 옆에 놓아둔 채, 유키노 선배는 안약을 대신 넣는다.
주륵 뺨을 타고 내리는 물방울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는,

나는 그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저기요, 그만 돌아갈까요?”
유키노 선배는 여전히 눈가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 내 쪽을 보았다. 그 표정은 평소에 비해 색기가 있었던 탓에, 살짝 기죽게 된다.
“……그래. 난 조금만 더 남아서 하다 갈 테니까, 잇시키 넌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그러, 세요……?”
미소랑 말이 딱 어울리는, 온화한 느낌의 유키노 선배의 얼굴을 보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힌다.

다정하게 얘기해 주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돌아가기가 힘들다.

어떡해야 하나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데, 유키노 선배는 이미 내가 돌아가기로 결정이 난 것처럼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그리고, 학생회 멤버들은 내일부터 소집해도 괜찮으니까.”
“어, 하, 하아…… 좀 이르지 않나요? 방침도 오늘 막 정해졌잖아요?”
“내일까지는 모양이 잡힐 거야. 게다가 프롬은 실현될 테니까, 일찍부터 준비하는 게 좋잖니?”
당연한 이야기처럼 아리송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유키노 선배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엄청 단언하시네요.”
“그래.”
유키노 선배의 대답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그 얼굴을 보고 유키노 선배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운을 떼고, 다음 말을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아마도, 내가 할 말은 아닐 거다.
유키노 선배는 무슨 일이니?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내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길 해야 할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닐 테니까, 대신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무리하진 말아 주세요.”
“고마워, 하지만 문제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유키노 선배가 키보드를 타닥 두드린다.

백라이트가 비추는 하얀 얼굴은 애처로울 만큼 아름다워서, 정말 눈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걸로 마지막이니까. ……이걸로 제대로 끝낼 수 있어.”
나를 보고 이야기한 게 아닌 듯한 그 속삭임은,

아까 들었던 그 작디 작은 목소리 다음에 이어져야 했을 말 같아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급하게 코트와 가방 따위를 챙겨서, 나는 서둘러 문까지 걸었다.

아까보다 훨씬 엄격하고, 더 다정해진 유키노 선배와 이대로 계속 이야길 나누다가는 괜한 얘길 꺼내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얘길 솔직히 털어놓는 건 왠지 약간 분하고, 공평하지 않으니까.
“……그럼, 먼저 갈게요. 아, 문단속! 그거만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고생했어.”
밝은 목소리로 내가 말하자, 유키노 선배는 미소로 화답해 준다.

그리고는 다시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면서,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활력 있고, 의욕 넘치는 느낌이고, 어딘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학생회실을 나서던 순간, 몸을 돌려 쳐다본 유키노 선배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 interlude (유이가하마)

 

알 수가 없다.
내 자리에 앉고서도, 애들이랑 얘기를 해도, 종이 울려도, 수업이 시작돼도, 계속 생각했다.
정말 혼란스러웠다. 이걸로 다 잘됐다고, 제대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눈물도 흘리고. 그랬는데 정말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랬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똑똑한데, 정말 바보 같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해 왔다 보니 다른 제대로 된 방식이 있는데도 모른다.

대립이나 승부 같은 이유가 없으면, 가까이 가는 것도 못한다.
그러니까, 이건 핑계다.
승부에서 이기면 무슨 말이든 들어주게 된다.
아마 그녀의 소원은 이미 정해져 있을 거다.
나랑 같으면서도 나랑은 반대. 닮긴 했지만 전혀 다른.
그런 그녀의 소원을 이룰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치만, 그런 건, 절대 안 된다.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까, 무조건 상관하지 않으면, 정말로 전부 끝나 버리고 만다.
……그렇다곤 해도.
분명, 이것도 핑계일 뿐.
아직 노트에 필기하지 않았던 칠판 글자들은 진작에 지워졌고, 교과서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있었다.
이야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분필과 샤프 놀리는 소리 사이로, 한숨이 섞인다.
힐끗 시선을 돌려, 언제나 바라보던 곳을 보았다.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솜씨 좋게 오른손만 가지고 펜을 돌리고, 고개를 살짝 내리고,

일단 교과서를 보는 척하고……. 하지만, 오늘은 그나마 살짝 나을지도, 심할 땐 완전히 저 잡니다 하고

책상에 엎어져 있다시피 하니까. 쉬는 시간엔 맨날 그렇다.
계속 보고 있었다.
반이 달라도, 깨닫지 못해도, 몰랐을 때도, 아는 사이가 되고서도, 조금씩 사이가 가까워진 후에도, 아마도 여태껏 계속.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하고.
힘내서, 웃음을 짓는다.
정말로, 치사하고, 싫은 애다.

 

4. interlude (유이가하마)

 

자는 척을 했다.
이대로 영화가 끝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마지막 따위 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뺨에 닿는 체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다. 이쪽을 신경 써 주느라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조금 딱딱한 어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다랬다.
다른 쪽 손만 내밀어 이따금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그치고,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무릎에만 걸쳐 뒀던 블랭킷을 살짝 끌어 올리다, 그 손이 뚝 멈춘다.

살짝 간지러워서 소리가 흘러나오려는 걸 잠든 척하는 숨소리로 얼버무렸더니, 또 한 장, 자기가 쓰던 블랭킷을 어깨까지 걸쳐 줬다.
이제 곧 영화가 끝나 버린다.
마지막으로 길고 긴 엔드 롤이 흐르고, 그러고 나면, 나는 일어난 척을 해야 하니까, 또 하나 거짓말을 했다.
계속 못 본 척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고, 계속 깨닫지 못한 척을 해 왔다.
사실은 깨닫고 있었으면서.
이런 짓을 해도,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는데.
하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생각할 수가 없다.
그저 함께 있고, 셋이서 지낼 시간이 있고, 셋이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에.
치사한 것도, 핑계인 것도, 거짓말인 것도, 사실은 전부 깨닫고 있지만.
그치만, 조금만 더, 이 시간이 계속되게 해 주세요.
제대로 끝맺을 테니까.
혹시나, 하고 빌지 않을 테니까.
모르는 사이에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고인 눈물도 제대로 뚝 그칠 테니까.
그러니, 제발. 조금만 더 아무도 보지 않는 이곳에서 울 시간을 주세요.
그러니, 제발. 제가 저한테 하고 있는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니, 제발. 부디 그녀와 함께 이 관계를 제대로 끝맺게 해 주세요.
그러니, 제발.
끝내지 말아 줘.

 

5.Interlude(하야토)

 

그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얼굴로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으면 뭐라 대답할 말도 없다.
결국 그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그는 멋대로 사서 떠넘긴 캔 커피를 들이켠 다음

“그럼 이만.” 하는 한 마디를, 바람에 녹아들어 사라져 버릴 만큼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어쩌면 쑥스러움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도망쳤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홀로 공원에 남겨지고 말았다.
역시, 나는 그가 싫다. 정말로, 그런 말에 한순간이나마 동요하고 말았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깊은 한숨을 토하며, 계속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로 다시금 눈길을 돌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건 그리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확인해 두지 않으면 나도 그도 그녀도 이 앞으로 발을 내딛을 수가 없다.

그의 특기인 대단한 허풍 실력에 놀아나 달라고 한다면, 나 역시도 남자의 고집이라는 게 있다.
오랜 시간 바람이 불어친 탓에 꽁꽁 얼어붙고 만 손끝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차라리 받지 말아 주기를 간절히 빌면서.
그러나 이런 순간에야말로, 그녀는 반드시 전화를 받고야 만다. 그렇게 확신하는 동시에 통화음이 끊기고, 김빠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그 목소리에 준비된 말로 답한다.

“지금 바로, 만날 수 있을까?”
『……응. 알았어.』
그녀는 짧은 침묵 사이에 무언가 감지한 분위기였다. 변함없이 날카로운 사람이라 정말 난감하다.

옛날부터 무엇 하나 숨길 수 없었다. 이번에도 분명 그렇게 될 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불길한 예감을 품은 채 사무적인 대화를 두세 마디 주고받은 후, 전화는 바로 끊어져 버렸다.

×    ×    ×

지정된 카페는 그녀가 옛날에 자주 들르던 가게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내놓는 블루마운틴을 다 마시고, 한 잔 더 부탁하려던 차에 손목시계로 눈을 돌린다.
약속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그러나 딱히 연락도 오지 않는다.
그쪽에서 불러낼 때는 이쪽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재촉해 오면서, 본인이 늦을 때는 이런 식이다.

익숙한 일이다 보니 굳이 연락을 취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 상대로도 그러냐고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말에 그녀는 「그래」 하고 자랑처럼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의외로 시간과 약속은 칼 같이 지키는 사람이다. 친구와 약속을 해 놓고는 지나치게 일찍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상대편이 늦을 때도 다짜고짜 재촉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독 일부 사람들에게는 대우가 거칠어지는 편인 모양이다.
그걸 친애나 신뢰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라든가, 혹은 여동생을 대할 때에는 그런 경향이 눈에 보인다.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일종의 순수한 관심을 보내는 것이다.
다만 예외도 존재한다. 장난감조차 되지 못한 존재는 그야말로 스크래칭 보드 수준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렇게 사색에 잠겨 있는 사이, 두 잔째 블루마운틴이 나온다. 입에 대 보니, 아까보다 씁쓸함이 더 강해진 느낌이다.
이윽고 낮게 흘러나오던 재즈 스탠더드 넘버의 곡조에 카우벨 소리가 섞여 든다.

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느와르 기조의 카페 안으로 루주가 난입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코트를 벗으며 카운터에 주문을 하고는, 내 모습을 찾아보려는 시늉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와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무슨 일 있어?”
그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젓고, 그녀가 주문했을 과테말라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그녀가 컵을 손에 들고 한숨 돌리고 나서야 나는 이야기를 꺼낸다.
“공의존……. 그에게 그렇게 말했어?”
느닷없는 질문에 그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런 표정은 흔히 보여주는 게 아니다 보니, 나는 그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만다.

거기에 화답하듯이 그녀도 웃는다.
“……들었어? 의외네. 하야토한테 그런 얘기도 하는구나.”
그 웃음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에 잠기고 만다.

순수하게 그의 행동의 의외성에 즐거워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고작 나 따위에게 이야기했냐는 멸시를 담고 있는 걸까.
어차피, 어느 쪽이든, 관심의 대상은 내가 아닌 그다.
그러니 내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아니, 다른 일로 그가 입에 담았을 뿐이야. ……하지만, 굳이 그런 표현을 들어서 그를 부추겨 놓을 사람은 대충 짐작이 갔으니까.”
“제법이네, 명탐정님? 정답이야.”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그 시선은 명백히 내가 간섭해 오는 걸 혐오하고 있었다. 반쯤 농담처럼 던진 그 말은 그만두라는 뜻을 전하는 신호다.

그 사인을 일부러 못 본 척 넘기고, 나는 눈앞의 커피잔에 시선을 떨군다.
“왜 그랬어?”
“그야 사실이잖아?”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한층 더 즐겁게 말했다. 긴 손가락을 교차시키는 그 동작을 시선 끄트머리로 확인하고, 나는 엷은 한숨을 흘린다.
“그들은 그 상태로 충분했어. 그런 식으로, 조금씩…….”
“그런 건, 모조품이잖아? 내가 보고 싶은 건 진짜뿐이야.”
내 말을 가로막는 건 차디찬 목소리, 였을 터였다. 거기서 토라진 듯한 반향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마도 나뿐이리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다 보니,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데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만은 알 수 있다.
“거기서부터 성장하는 마음도 있다고 난 생각해.”
“말도 안 돼. 겪어 봤잖아?”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뜨고, 얼어붙은 시선으로 나를 꿰뚫는다. 그 말투가, 그 여름날의 말과 겹친다.
그 눈초리가, 그 목소리가, 언제나 나를 얽어맨다. 결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녀 또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소중히 아끼는 것을, 더는 다른 누구에게도 상처 입지 않도록, 스스로 앞장서서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상처를 입혔던 자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
“그렇게나, ……미워해?”
누구를, 하고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거짓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을 깜빡거린다. 그러나 이내 이해가 되었는지 생긋 미소를 짓는다.
“아니야, 너무 좋아해.”
턱을 괴고 촉촉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분홍빛 입술로 고혹적인 미소를 빚어낸다.
이것은, 저주다.
내게는 끝내 속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떠넘긴 것이다. 적어도, 그들만은 하는 마음에.
아아, 진심으로 질투가 난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로서,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으리라.
설령 그것이 모조품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위작이라면, 아무도 가짜라고는 부를 수 없을 터.
만약 내가 그걸 손에 넣었더라면, 분명 이 일그러진 형태에 하나의 이름을 붙일 수 있었으련만.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그때, 온 힘을 다해 도왔다면.
그랬다면…….
당신은 나를 용서해 주었을까.

 

 

6. Interlude (하루노&유이)

 

오늘 밤도 취하지 못할 것 같다. 핫 와인은 몸을 녹일 수는 있을지언정, 몸속 깊은 곳까지는 스며들지 못했다.

그 뒤로 술잔을 몇 번이고 거듭 기울여도 기분은 고양되지가 않고, 그저 속만 계속 역해질 뿐이다.

다섯 잔째 글라스를 비워 가며 한 병 더 주문할까 싶어 와인 리스트로 손을 내밀어 볼까 하다, 그만뒀다.
4인석 테이블은 지나치게 넓어서, 아무리 병을 더 주문해도, 아무리 글라스를 늘어놓아도, 어딘가의 누구를 불러내더라도, 분명 그 여백은 메울 수 없으리라.
무료함을 달래려 읽다 만 책을 펼쳐 보지만, 한 페이지도 진도를 나가지 못한 채 책갈피는 같은 자리에 도로 꽂힌다.

몇 번이고 수없이 되풀이하여 읽은 탓에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다 알고 있건만, 찍혀 있는 엔드 마크의 그 다음을,

진정한 결말을 끊임없이 계속 요구하고 있다 보니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는다.
거짓 없는 유일한 올바른 결말. 설령 직접 손에 넣는 게 불가능할지라도 그런 게 실재한다고, 누군가가 증명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런 공상을 안주 삼아 글라스를 비우자, 굽은 유리 너머의 좌석이 투명하게 비친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고, 유리 안에서 성격 고약해 보이는 미녀가 자조적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문득 그 유리에 인기척이 비쳐서 깜짝 놀란다. 자세히 보니 먼저 돌아갔을 터인 그녀가 있었다. 여기까지 단번에 달려온 모양인지 어깻숨을 쉬는 중이다.
“뭐 잊고 간 거라도 있어?”
말을 건네는 한편 우선은 블랭킷을 넘겨주고 의자에 앉기를 권하자, 그녀는 얌전히 아까 앉던 자리에 앉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턱을 괴고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는 무릎에 걸친 블랭킷을 스커트와 함께 꼭 쥐고는, 뭔가 결심한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저기…… 역시 아까 그건 아니라고 봐요. ……공의존이란 거요.”
느닷없이 나온 말에 나는 그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돌아온 거였나.

거기서 뜻밖에 이해가 간다. 그렇다, 오늘, 이 아이는 내게서 그를 지키기 위해 함께 온 거였다.

그게 독점욕 때문이라면 차라리 흐뭇한 미소라도 지어지련만, 이건 오히려 보호욕에 더 가깝다는 느낌도 든다.
그 갸륵한 마음은 솔직하게 칭찬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정면으로 도전해 온다면 나 또한 진지하게 상대해 줄 수밖에 없다.

유전 탓으로 돌릴 마음은 없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어머니와 꼭 빼닮았다.
사실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귀찮고, 그렇게까지 한가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귀여워하는 아이에게 미움을 사는 것도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걸 잘못된 채 내버려 두는 건 그보다 더 기분 나쁜 일이니까.
나는, 기분만 역해질 뿐이란 걸 알면서도, 병의 내용물을 글라스에 전부 쏟아붓는다.

×    ×    ×


피처럼 검고 새빨간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킨다. 거품이 터지고 일렁일렁 흔들리는 게, 꼭 내 심장 같았다.

역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바람에, 아직도 두근두근 소리가 가라앉질 않는다.
“나한테는 그렇게 보이는걸? ……너희 세 사람의 관계는.”
공의존이니 뭐니, 그런 말은 모른다. 자세한 뜻도 모른다. 나는 어려운 건 잘 모르니까, 모르는 척하고 있으니까. 정말로 전혀 모를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람의 표현은 너무도 알기 쉬웠던 나머지, 나는 금세 깨닫고 만다.

“저도, 말예요……?”
간신히 진정되기 시작한 심장이 또다시 두근두근 뛰기 시작한다. 부탁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맘대로 서둘러서, 금방 답에 이르고 만다.
그러자 그 사람은 생긋 웃더니……. 곧이어, 너무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히키가야는 가하마한테 의존하고 있는 거구나. 그리고, 가하마 넌 그게 기뻐서, 뭐든지 해 주고 싶어지는 거지. ……사실은 이쪽이 제일 중증이었네.”
“…………아녜요, 그런 거.”
입술이 떨리고, 목소리가 똑바로 나오지 않는다. 몇 번이고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아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그 애들이 그 모양이니까, 네가 제일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겠지.”
상냥한 목소리로 뭔가 얘기하고 있지만, 나한테는 이미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뭔가 해 주고픈, 그런 맘이 드는 건, 당연한 거고…….

힘들어 보이고, 열심히 애쓰고 그러면, 응원해 주고 싶고, 계속 함께 있고 싶어지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아마도, 정말로 화가 나서, 진심으로 누군가를 노려본 건 처음이었을 거다. 몸속에 가득 차 있던 공기가 맘대로 흘러나와서, 목이 탄다.

소매로 이마를 쓱 훔치고, 나는 정면을 노려본다.
저 사람은 그런 내 모습을 어른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감는다.

그러더니 기도하는 것처럼, 신님한테 물어보는 것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있잖아……. 그건, 진짜라고 부를 수 있어?”
“몰라, 그런 거.”
계속 생각했었다. 진짜란 뭘까 하고. 그치만, 역시 난 모르겠으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대답하는 목소리는 작아지고, 눈앞이 눈물로 흐려지고, 고개도 아래로 내려가고 만다.
“……그래도, 공의존 같은 건 아니에요.”
고개를 들자, 그녀와 꼭 닮은 얼굴이, 어째서냐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가슴속 깊은 곳이 욱신거려서 꼭 움켜쥐자, 벌써 다 흘려 없어진 줄만 알았던 눈물이 멋대로 넘쳐 흐르기 시작한다.
분명,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것뿐. 오직 이것뿐. 이게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믿을 수 있다.
“왜냐면, 이렇게 아프니까요…….”
가슴만 아니라, 마음만 아니라. 전부, 전부 아프다.
──내 전부가, 아플 만큼, 좋아한다고 비명을 지른다.

 

7. Interlude(하치만)

 

닫힌 문이, 두 번 다시 열리지 않도록, 단단히 걸어 잠갔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
그 문을 어루만지며, 감촉을 피부에 새긴다.
그것이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그것이 아프면 아플수록.
선택한 답이 진짜였다고 믿을 수 있다.
달리 확인할 방법을 알지 못하기에, 결국 올바른 답은 알아내지 못한 채, 틀린 그림 찾기는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는다.
오직 하나뿐인 진짜를, 애타게 동경해 왔기에, 속이 탈 만큼 비뚤어진 나머지,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하염없이 몸만 타들어 간다.
완전히 불타 버린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건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만 모조품.
그래도,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꿔서는 안 될 가짜니까.
적어도, 부서지는 일이 없도록, 살며시 소중하게 깊이 간직해 두고, 이걸로 모두 끝내기로 하자.
──부디 이것이 올바른 마지막이기를.
그렇게 기도하면서, 문에서 손을 떼었다.
한 걸음 멀어지고, 두 걸음 멀어져, 더는 손을 뻗어 만지려 해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곳으로 가서.

뒤돌아보는 일은, 이제 없으리라.

 

          

 

 

삽화들은 스캔에서 발췌한 거라 정발본이 나오면 삭제

번역은 현재 블로거 활동 중이신 노x공x님 공개배포 자료 입니다.

고인이 된 게시판 누가 있겠습니다만은

제가 편하려고 14권 나오면 츄잉 접속 상태에서 막간만 읽어 보려고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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