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게문학] 아바타라 ㅡ 19화
배틀월드 사건 이후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그러나 반대로 이곳 넓은 평야에선 온갖 굉음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아니, 평야가 아니다. 분명 이곳도 언젠가는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것이 사라지고 온통 잿더미만 가득했다.
"크아아아!!!"
얼굴을 붕대로 감고 도복을 입은 누군가가 쉬지도 않고 날뛰고 있었다. 그가 발을 내지를 때마다 불꽃이 일어나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을 조금씩 불태웠다. 해가 슬슬 저물기 시작했을때, 두 팔을 기계로 대체한 거한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박...일표님...?"
"크르....크아아아아아아악!!!!"
박일표는 괴성을 지르며 목소리의 출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붕대 사이로 비쳐 보이는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있었으며 앙다문 이빨은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당장 금이 가도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코나 귀의 형상도 남아있지 않아 마치 인간이 아닌 괴물을 마주하는듯 했다. 기계팔의 거한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접니다!! 집행위원 팀:라틴 '더블 원'...!!!"
박일표는 이를 갈며 더블 원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붕대 너머로 비쳐보일 정도로 잔뜩 일그러뜨린 표정을 보면 과연 더블 원의 말을 이해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때 갈색 머리의 여성이 나타나 박일표의 앞을 막아섰다.
"일표야... 정신차려!!"
"어....박승아?"
박일표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얼마 남지 않은 안면근육을 이용해 반갑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일표님, 말도 없이 나가셔서 하루 종일 찾아다녔습니다."
"하하... 이거 매번 미안하게 됐네요."
몇달 전, 한대위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박일표는 며칠 동안 조용하더니 갑자기 제정신을 잃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집행위원에 더 식스까지 동원해 겨우 가두어 놓았고 최근에야 정신이 어느정도 돌아와 구속에서 풀려나게 되었으나, 갑자기 다시 상태가 나빠져 밖으로 뛰쳐나왔고 이를 알아차린 더블 원이 박승아를 데리고 찾아 나선 것이다.
"한대위....!!!"
박일표는 박승아를 따라 순순히 집으로 돌아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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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세력 작전회의실, '비숍' 두 명과 동쪽의 현자 '한대위', 그 밖에 여러 고위 신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저번 '배틀월드' 사건 이후로... 박무봉의 모습은 단 한번도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면 GOH 경기장을 습격한다는 계획도 전면 수정해야할것 같습니다. 딘 아그네스, 단모리, 파니메르, 세명의 우승 후보가 실종되거나 힘을 잃어버린 상황에 설령 결승전이라도 박무봉이 직접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몸을 사리는 중인가? 곤란하네요. 단아한 양의 완치를 위해서는 박무봉의 '기계팔'이 필요한데..."
박무봉은 아가르타에 틀어박힌 이후 정말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고, 박무봉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동쪽 세력이 기계팔을 빼앗는것 역시 아예 불가능해진 것이다.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빠져 있을때, 비숍 니콜라오가 손을 들고 말했다.
"좋은 생각이 있어요. GOH 경기장을 습격한다는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는 겁니다. 무봉이가 없더라도 '집행위원'들은 대부분 거기 모여있을것 아닌가요? 온통 깽판을 치고 있으면 박무봉이 직접 모습을 보이던가, 그대로 숨어있던가 둘중 하나겠죠."
"만일 박무봉이 나오지 않는다면?"
샤오첸이 질문을 던지자 니콜라오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와이파이를 지닌 박무봉 없이 나머지 세계정부 세력으로썬 우리의 공격을 절대 막을 수 없어요. 그때는 그냥 신나게 날뛰어 세계정부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고 돌아오면 됩니다. 영원히 숨어있을 수는 없을테니 나중에라도 박무봉은 모습을 드러낼테고, 그때는 기계팔을 뺏는 것이 더 쉽겠죠."
니콜라오는 애초에 단아한을 치료하는 것만이 주 목적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세계정부의 파괴'를 바라고 있는 그에게는 조용히 기계팔만 가지고 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평소라면 반대했을 한대위도 '배틀월드 사건' 이후로 뭔가 태도가 바뀌어서인지 니콜라오의 발언을 듣고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니콜라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총 공격에 들어가더라도 한대위 님은 혹시라도 나타날 박무봉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아껴야 하니 저를 포함한 나머지 분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겠죠. 그러니 제 차력을 완벽히 끌어낼 수 있는 바로 이 날에, 작전을 실행하는 겁니다."
니콜라오는 허공에서 달력을 꺼내 펼치더니 한 날짜를 가리켰다. 그 날짜는 12월 25일,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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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
수많은 원숭이와 소들이 오가며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중이었다. 우마왕과 단모리는 멀리서 건설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때 아우, 너를 위한 제단이야 모. 완공된 뒤에 저 안에서 가만히 명상을 하면 예전 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모."
단모리, 아니 진모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국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인지 이미 그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힘을 되찾으면 우선 박무봉을 죽이고, 그 뒤엔 나도 오래국 재건을 도와줄게 형님."
제단을 바라보는 진모리의 눈동자에 잠깐 십자가 모양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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