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렙×정엘] 파멸의 재래 2화
<사하라 사막>
[주군,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군단의 전력이 반토막 난 뒤로 3일이 흘렀다.
이제 군단에 남은 병력들은 전원 기사 등급 이상의 그림자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2일 전에 차원의 틈새로 쳐들어가려 했지만 또다시 이종족들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반토막 났던 전력은 이종족들로 보충할 생각이었지만 왜인지 몰라도 이종족들을 그림자 추출할 수 없었다.
그림자는 존재했고 영체의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념은 버리고 줄어든 군단을 재편성하고 전략도 훈련한 뒤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한국에서 차원의 틈새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게이트를 열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마력 감응도가 높은 사하라 사막으로 온 뒤에 게이트를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 실수로라도 이곳을 보면 안됐기에 일찌감치 어금니가 결계를 쳐놓았다.
"가자."
게이트가 거대한 아가리를 열었다.
아무리 진우라 해도 게이트를 생성하는데 꽤나 마력이 많이 들었다.
윤회의 잔을 사용하기 전에는 게이트를 생성하는데 많은 마력이 들지 않았으나 대기에 존재하는 마력이 거의 없어진 현 상황에서는 인위적인 게이트를 만들기 힘들었다.
그리고 모든 군단과 자신이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진 후, 게이트는 사라졌다.
"... 별일이군."
차원의 틈새는 마력이 넘쳐나기 때문에 게이트 생성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가 게이트를 완전히 없앨 의지가 없었는데 게이트가 저절로 사라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차원의 틈새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짐을 의미했다.
"다들 그림자로 돌아와."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모든 그림자들이 안식의 영역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기척을 최대한으로 줄인체 탐색을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시간이 계속 흘렀음에도 기척은 커녕 마력조차 탐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군주들이 지구를 발견하고 침공한 것처럼, 다른 한 차원을 발견해서 그곳을 침공했을 거라고.
물론 억측이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추측만으로 군대를 돌리기에는 아직 걸리는 점이 있다.
첫째,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기 중의 마력은 느껴지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둘째, 너무나도 고요했다.
마력을 숨기고 있어도 기척은 조금이라도 감지되는데 감지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 두 가지는 일반인이 생각하기엔 당연하겠지만 여기의 주인은 일반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사는 '사람'은 없어도 무언가의 흔적은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그 때였다.
뒤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인간. 당장 여기서 꺼져라."
3일 전 자신을 망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사라진 엘뤼엔이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성급히 공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군주들이 살아있다면서? 그 녀석들은 내가 처리한다."
"겨우 인간따위가 영체의 힘을 손에 넣었다고 우쭐대지 마라. 네 놈의 그 힘은 나와 비등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네 놈은 나에게 대항하지 못했어. 영체에 대한 방어기제만 존재할 뿐, 영체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네 놈은 어차피 군주들에게 못미친다."
"말에 모순이 있군. 나는 모든 군주들을 내 손으로 처리한 적이 있다. 영체의 힘이고 뭐고 나는 충분히 강해. 그리고 네 놈에게 당한 건 내가 지쳤을 때의 일이다. 못 믿겠으면 다시 덤벼라, 전력으로 상대해주지."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즉시 참형이다. 그럼 나도 기꺼이 전력으로 상대해주마."
파아앗
그의 손에서 빛이 퍼져나가더니 새하얀 물체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익숙했다.
"총?"
총이었다.
게이트의 재앙이 시작되기 전, 그리고 재앙이 일어나지 않은 지금 현대가 발명해낸 최고의 무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총은 마력을 가진 존재에게 통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총의 속도보다 이동 속도가 빠르니 마력을 실어 공격해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탕.
"커헉."
보이지 않았다.
탄환이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다 지켜보고 있었다.
총을 쏘려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 도약해서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보지 못했다.
"탄환이 보이지 않았겠지? 그게 너의 한계다. 심판관에 맞았으니 회복도 더뎌질 것이다. 경고 사격은 끝났으니 이제 꺼져라."
"잠깐, 엘뤼엔. 저 녀석은 신계로 데려가야 해."
"... 천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지?"
엘뤼엔의 뒤에 천신이라고 불린 여성이 서있었다.
그녀는 은빛 갑주를 입고 있었고 눈이 바다처럼 푸른 색이었으나 강렬한 분홍빛 머리카락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 눈에 봐도 미의 여신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웠다.
"저 녀석은 최초야. 인간임에도 영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연구 가치가 있다고?"
"연구 가치? 헛소리 하지 마라. 인간이 영체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무슨 연구 가치가 있다는 거냐."
천신이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소리 차단 마법을 사용한 것 같았다.
'제길...'
너무나도 무력했다.
내가 강하다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했었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마치 S급 헌터 앞에 선 E급 헌터 같았다.
잊었던 과거가 다시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는 잊고 싶었던 무력했던 E급의 과거였다.
[무음 마법 내]
"라데카의 시계가 복원됐고, 운명이 점지되었어. '인과 영의 힘을 가진 자가 악의 연쇄를 끊어내리라.'고."
"시계가 제 역할을 못했을 수 있지. 분명 저번에도 '고귀하고 엄격한 심판관' 그리고 '아버지'라는 운명을 점지해놓고서 결국은 마신이 소멸되었지. 저런 쓰레기가 어떻게 악신 탄생을 막는다는거지?"
"그건 두고 봐야지. 아무튼, 저 녀석은 신계로 데려가야 해."
그 말에 엘뤼엔은 더 발끈했다.
악신을 쓰러트린 후에 천군은 거의 마비되었고 신계도 삭막해졌다.
마신의 궁처가 사라지면서 신계의 균형이 깨져 어지러운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군주의 힘을 지닌 자를 신계에 데려간다는 건 균형을 더 깨버리겠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운명의 신 라데카가 직접 이곳으로 왔다.
"시계는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저 아이를 신계로 데려가는 게 맞아. 그리고 심판관은 가급적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해라."
"... 알아서 해라."
천신 이오웬과 명계의 신 섀넌은 최고신이지만 넉살이 좋아 편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라데카는 뭔가 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의미 없는 논쟁을 끝내고 신계로 이동했다.
'저딴 쓰레기가 어떻게 악신을 막는다는건지 모르겠군.'
엘뤼엔은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고선 자신의 궁처에 도착했다.
"마음에 안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이 그리워졌다.
'빨리 돌아와라... 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