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인의 발렌타인 데이
창 밖은 도시를 수놓은 불빛들로 반짝거렸다. 천 위에 박힌 보석처럼 찬란한 야경을 눈에 담으며, 여자는 야경이 왜 도시의 은하수라 불리는 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지금의 상황만 아니면 더 좋았을까. 모르겠다.
사위는 무덤 속 만큼이나 고요했다. 적어도 주변에서 유리된 둘은 그렇게 느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불과 몇 분이 흘렀을 뿐이지만, 수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무겁고 버겁게 느껴진 남자는 결국 다시 한 번 침묵을 깨기로 결심했다.
"우리..."
"뭔 말 하려는지 알겠으니까 그만 하고 닥쳐. 말은 한 번 하면 됐지. 머리 아파."
여자의 말에 남자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침묵을 선택했다. 푸르스름하고 붉은 식당 조명 아래에 있는 여자의 모습이 다소 창백한 것 같기도 했다. 한 쪽 손으로는 디저트로 나온 컵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또 다른 한 쪽 손으로는 탁자를 툭툭. 립스틱을 바른 빨간 입술이 다시금 굳게 닫히자 남자가 이윽고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 못한 건 아니잖아?"
주어가 없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컵을 만지작대다 말고 멈칫했다. 기실 남자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오늘은 아닐 줄 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오늘이, 그리고 밥 먹는 도중에 이게 뭐냐."
싸가지 없게. 덧붙인 말은 칼처럼 벼려져 있었다. 여자의 평소보다 날카로운 말들은 결코 남자의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평상시라면 지적했을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넘겼다.
"...내가 말 안했어도 아마 네가 언젠가는 말했을 거야."
머뭇거리다 한숨처럼 말한 말에 여자는 내심 동의했다. 각자가 헤어짐을 준비한 이유는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찌됐든 조만간 언젠가는 헤어졌을테고, 여자는 그걸 알았기에 타이밍이 어긋난 남자를 타박했어도 이별 자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래, 그럼."
말이 입 밖에서 완성되지 않아, 저런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는 곧 화장실로 향했다. 몇십 초를 걸어 도착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빛 속에서 정적이 무겁게 타고 흘렀다.
여자는 가방 속에 든 초콜릿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3년 전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걸로 시작했던 연애는, 결국 4번째로 넘어가지 못하고 끝났다. 남자는 자신이 초콜릿을 준비했다는 걸 알았을까, 몰랐을까.
이제는 별 상관 없는 일이 실없이 궁금해졌다. 실소한 여자는 화려하게 포장된 초콜릿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몸을 돌려 식당 밖으로 빠져 나왔다.
딱 3년. 길다면 긴 고요한 연애의 고요한 종지부였다.
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올려달래서 올려드림; 글 6년인가 7년만에 써바서 머가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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