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노래-윤곤강
지렁이의 노래
윤곤강
알지 못할 게라 검붉은 흙덩이 속에
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
긴 허물을 쓰고 태어났는가
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과니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이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
닥쳐올 앞날은 더욱 모르노라
자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
낮은 진구렁 개울 속에 선잠을 엮고
밤은 사람들이 버리는 더러운 쓰레기 속에
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 부르노니
오직 소리 없이 고요한 밤만이
나의 즐거운 세월이노라
집도 절도 없는 나는야
남들이 좋다는 햇볕이 싫어
어둠의 나라 땅 밑에 반듯이 누워
흙물 달게 빨고 마시다가
비오는 날이면 땅위에 기어나와
갈 곳도 없는 길을 헤매노니
어느 거친 발길에 채이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고 두 도막에 잘려도
붉은 피 흘리며 흘리며 나는야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사노라
(정해 여름 삼팔선을 마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