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처 - 유치환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한 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 가다
이 앞에서는 전 우주를 다하여도 더욱 무력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
가만히 눈감고 아내여
이 덧없이 무상한
골육에 엉기인 유정의 거미줄을 관념하며
요요한 태허 가운데
오직 고독한 홀몸을 응시하고
보지 못할 천상의 아득한 성망을 지키며
소조히 지저를 구우는 무색 음풍을 듣는가
하여 애련의 야윈 손을 내밀어
인연의 어린 새 새끼들을 애석하는가
아아 그대는 일찍이
나의 청춘을 정열한 한 떨기 아담한 꽃
나의 가난한 인생에
다만 한 포기 쉬일 애증의 푸른 나무러니
아아 가을이런가
추풍은 소조히 그대 위를 스쳐 부는가
만약 그대 죽으면
이 생각만으로 가슴은 슬픔에 즘생 같다
그러나 이는 오직 철없는 애정의 짜증이러니
진실로 엄숙한 사실 앞에는
그대는 바람같이 사라지고
내 또한 바람처럼 외로이 남으리니
아아 이 지극히 가까웁고도 머언 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