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ll] 019. 더 큰 속죄 같다는 이유로
019. 더 큰 속죄 같다는 이유로
일은 끝났다. 갇힌 양을 구해내고 괴물을 물리쳤다.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권선징악의 결말. 하지만 조용히 가라앉는 죄책감, 자괴감, 자기혐오의 감정..
마침맞게도 다음날은 비가 내렸다. 나는 정말이지 비를 맞으며 등교하고 싶었던 수(水)요일. 주위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나는 끝내 우산을 들었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더 큰 속죄 같다는 이유로.. 그런 졸렬한 이유로 비를, 그녀를 피해버렸다. 덕분에 평소에도 잘 먹지 않는 아침이였음에도 배는 쓰려왔다.
학교에 도착하고나서도 가라앉은 분위기는 더욱 커져만 갔다. 비는 습기를 머금고 무겁게, 아주 무겁게 아래로 향했다. 그것을 응시하며 따라 숙이는 고개처럼 내 몸도 주저앉아버렸다. 빠르게 생기를 잃는 육체. 이럴 때마다 나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분명 려욱이나 지원이가 그런 내게 말을 걸어왔을거다.. "성철아, 왜 그래?" "무슨 일 있냐?" 라든가.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나의 대답에 그들은 조용히 돌아갔을 거다. 그렇게 '요약적'으로 지나가는 하루. 이런 기분, 이런 느낌. 정말이지 '내가' 느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수업이 다 끝나고도 교실에 남았다. 영화처럼, 만화처럼.. 스쳐가는 모든 사람 속에서 나는 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손으로 만들어버린 잔인한 결말. 벗어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부디 그것을 허락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미치게 했다.
돌아가는 길은, 혼자였다. 우산도 없이, 가방도 없이, 그 무엇도 없이 그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이했다.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어디로 돌아가야만 했을까,
대답은 발이 대신했다.
"오늘은 안 우네?" 그 따스함이 나를 다시 맞이했다. 내가 그 어떤 상태일 때나(그래봐야 주로 울 때지만) 그녀는 말로, 몸으로, 행동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영혼의 교감, 그것을 나는 다 젖어서 불은 몸이 다 풀릴 때까지 가만히 느끼고만 있었다.
"후회 돼? 그녀에게 그렇게 한 게?"
"아뇨, 후회 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게 더 후회 돼요, 후회되지 않는 게."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내 눈앞까지. 그녀가 속삭이듯 말할 때마다 나는 구화라도 하듯이 입모양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볼 수가 있었다.
"그럼,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래?" 쿵, 하고 내 마음이 울렸다. 돌이라도 맞은건지, 쉽게 그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녀를 만날 수 있어요?"
'그럼, 언제든지 그녀가 원할 때면 말이야..'
말없이 의지로 그렇게 전한 그녀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스스로 내리고 있잖아." 올려다본 하늘에는 정말 그녀를 닮은 회색빛이.. "있잖아, 알.. 넌 그녀를 죽인 게 아니야. 그저 소통의 길을 열은 것뿐이지. 한 번 말을 걸어봐."
부르르, 떨려왔다. 시도하기 전부터 온몸이 반응했다. "레인?" 그 어느때보다도 간절하게 그녀를 불렀다.
"뭐야, 또 왜! 이 나쁜 놈!" 빗방울 하나가 그렇게 스쳐 떨어졌다.
"레인..?" 벅차서.. 벅차서... 그녀를 다시 한 번 불렀다.
"아, 뭐! 말을 해, 말을. 너, 바보야?" 두 번째 빗방울의 그녀는 짜증을 냈다.
"레인,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생애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그렇게 사죄했다.
"흥, 됐어. 너 같은 놈한테 당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하지만, 충격적인 그녀의 발언.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됐어. 네 그 약해빠진 공격으로는 요만큼도 날 건드리지 못했으니까 말야. 신경 끄고 울지 말란 말이야. 이 멍청아. 이제 와서 울면 뭐가 달라지냐구!"
"곧 비가 그칠거야." 라엔이 선고하듯이 이야기해주었다.
"그렇다는데.. 아, 정말이지. 나한테 그렇게까지 미안하다면 하나만 알아봐줘. 날 돌려보낸 놈, 보이지 않는 검을 썼었어. 다음에 내릴 땐 그게 뭐였는지 알고 싶을 거야." 그렇게 사르륵하는 느낌과 함께 그녀는 그쳐버렸다.
"아.. 레인? 레인! 레인!!" 그녀의 끝자락을 잡고 싶었다.
결국 그러지 못한 나는 다시 울기 시작하려했는데.. 그렇게 속죄하려고 했는데...
똑, 하고 마지막 빗방울이 떨어졌다.
"울지마, 울면 진짜 용서 안 할거다?"
그렇게 한동안 개어오는 하늘을 보며 무릎 꿇은 내 위로 라엔의 손이, 레인의 물기가 느껴졌다..
Rain, 그녀는.. 언제라도 나의 곁으로 찾아올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주머니 속의 일기장은 그렇게 이야기의 끝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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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r : 울면 가만 안 둘거다?
뭣하러 그렇게까지 나를 흉내내려 하는 건지 원..
이 바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