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재행(悲哉行) - 백거이
悲哉爲儒者 (비재위유자) 슬프구나 선비의 신세는
力學不知疲 (역학부지피) 지칠 줄 모르고 학문에 힘써
讀書眼欲暗 (독서안욕암) 책 읽으니 눈은 어두워지고
秉筆手生胝 (병필수생지) 붓 잡은 손에는 굳은살이 생겼네
十上方一第 (십상방일제) 열 번 과거보아 어렵게 급제하나
成名常苦遲 (성명상고지) 이름내기 힘들어 항상 괴롭고
縱有宦達者 (종유환달자) 벼슬자리 구하여 얻는다 해도
兩鬢已成紗 (양빈이성사) 귀밑머리 이미 드물어 졌다네
可憐少壯日 (가련소장일) 가련히도 어리고 젊은 시절에
適在窮賤時 (적재궁천시) 궁핍하고 천하게만 지내다가
丈夫老且病 (장부로차병) 장부 되자 이미 늙고 병드니
焉用富爲貴 (언용부위귀) 부귀와 영화인들 어디에 쓰랴
沈沈朱門宅 (침침주문댁) 웅장한 붉은 대문 집 안에는
中有乳臭兒 (중유유취아) 귀족의 젖내나는 아이가 있어
狀貌如婦人 (상모여부인) 얼굴 생김은 여인과 같고
光明膏梁肌 (광명고량기) 기름진 살결은 희게 빛나네
手不把書卷 (수불파서권) 손에는 책을 든 적이 없고
身不環戎衣 (신불환융의) 몸에는 갑옷 입은 적이 없는데
二十襲封爵 (이십습봉작) 스물에 봉지와 작위를 세습 받고
門承勳戚資 (문승훈척자) 가문의 공훈으로 얻은 재물로
春來日日出 (춘래일일출) 봄이면 날마다 밖으로 나가는데
服御何輕肥 (복어하경비) 비단옷에 살찐 말만을 타네
朝從博徒飮 (조종박도음) 노름패와 아침부터 술 마시고
暮有娼樓期 (모유창루기) 저물면 기약한 창루로 가고
平封還酒債 (평봉환주채) 봉지의 세금으로 술빚을 갚고
堆金選蛾眉 (퇴금선아미) 금을 쌓아놓고 미인을 고르니
聲色狗馬外 (성색구마외) 주색잡기 이외에는
其餘一無知 (기여일무지) 아는 것이 하나 없네
山苗與澗松 (산묘여간송) 산의 묘목과 골짜기의 소나무가
地勢隨高卑 (지세수고비) 지세 따라 높고 낮게 자라는 것은
古來無柰何 (고래무내하) 예로부터 어찌 못할 일이었거늘
非獨君像悲 (비독군상비) 유독 그대 혼자만이 슬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