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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새장속의 새
독서 | L:55/A:397
994/1,170
LV58 | Exp.84% | 경험치획득안내[필독]
추천 3-0 | 조회 251 | 작성일 2019-03-08 0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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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새장속의 새

 

윤아이. 아이라... 예쁜 이름이구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내 고막을 두드렸다. 나는 애써 그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무시하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울렸다.

정말...정말로 대단하구나. 또래 친구들과는 비교도 안 되겠어.’

그냥 가. 내 기분 망치지 말고.

아저씨한테 조금 배워보지 않겠니?’

- 아니. 그냥 가 버리라고.

아이야,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했어.’

- 됐으니까 내 머릿속에서 나가 제발 !!!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 거란다.’

- ...안 돼. 가지 마요, 선생님.

이번에 말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아니, 검은색의 단발에 왼쪽 눈 아래의 점. 그것은 어린 시절의 였다.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학생 때 인 듯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과 어린 가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흐릿하게 들어왔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인양, 두 사람에게 핀라이트가 비춰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애원하듯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맞은편의 남자는 냉정하게 돌아서버렸다. 그가 돌아서자마자 그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흩어져 없어져버린다. ‘는 얼마동안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그 자리에 웅크려 앉는다.

- 다시 혼자네.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조그만 의 옆으로 다가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는 훌쩍였다. ‘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C장조. 그 불우한 천재 작곡가의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 부드러우면서도 발랄한 느낌의 도입부가 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 소리에 훌쩍이던 가 울음을 멈췄다. 녀석은 고개를 들었다. 눈물범벅으로 엉망이 된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피기 시작했다. ‘는 이내 양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앞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녀석이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키도 조금씩 커지는 듯 했다.

그러자 서서히 주변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 길을 걸어갈 때마다 의 앞쪽의 풍경이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내 뒤쪽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을 때, ‘는 이미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오직 피아노의 선율만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 앞으로는 복도가 하나 놓여있었다. 갈색의 나무판자들이 열을 맞춰 늘어져 있는 바닥.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유리창들. 그리고 그 햇빛을 받아 불투명하게 빛나는 코팅된 아이들의 이름표. 내 고등학교 시절의 복도인 것 같았다. 기억이 맞는다면, 피아노소리는 복도 끝에 위치한 음악실에 나는 것일 터였다.

몸을 움직여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안쪽의 유리창 너머로 교실들을 들여다보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교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교실들을 지나가고 있는데, 별안간 피아노소리가 멈췄다. 연주가 다 끝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이질적으로 멜로디가 끊겼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다른 것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복도 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음이 급함에도 뛰지 않은 것은 그럼에도 이곳이 학교라는 내 무의식의 탓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복도 끝에 다다라, 커다란 여닫이 나무문의 한쪽 손잡이를 잡고 열어젖혔다.

- 어...

순간 가슴에 무언가가 포근하게 착 가라앉았다. 시야에 포착된 광경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린 날의 작고 귀여운 추억.

방금 전의 보다 조금은 성숙해진 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목소리는 음소거라도 한 듯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녀석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소년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년과는 달리 얼굴에 웃음이 만개한 채로.

두 사람한테 나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음악실의 한켠에 놓여 있는 장구를 의자삼아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감상했다. ‘가 몇 마디 말 하더니 이내 소년은 그것을 듣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건반이 만들어내는 가락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 이번엔 베토벤인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테레제’. 베토벤이 가장 좋아한 소나타 중 한 곡이자 사랑스럽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 일품인 곡. 음조가 복잡함에도 소년의 손가락은 거침없이 건반 위를 누볐다. 그 모습에 는 감탄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나 정도로 피아노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또래를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선율이 흐르는 대로 내 머릿속 역시 마음대로 흘러가게 놔두었다.

그래. 기억났다.

소년의 이름은 박성훈. 나는 아마 그에게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얼굴, 목소리,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내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그에게로 이끈 것은 역시 피아노. 그 역시 나처럼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살아온 사람이라 연애에 그리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피아노 앞에 섰을 때만큼은 달랐다. 연주를 할 때 그의 손가락은 때로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 듯 부드럽게 건반을 어루만지기도 했고, 또 어쩔 때는 파트너의 은밀한 곳을 애무하는 것처럼 절제되면서도 강렬하게 건반을 훑기도 했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평소에는 서툴고 실수투성이에 오히려 보호본능을 유발하기까지 하다가도 피아노 앞에만 서면 어느 누구보다 당당해지는 모습.

당신과 있음으로써 나는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남자가, 선생님이 떠나버린 뒤로 처음으로 혼자가 아님을 느꼈고, 하루하루 당신과의 미래를 꿈꾸며 즐거움과 행복 속에 살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각자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졸업식 날 저녁에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식사를 했던 일, 콩쿨에서 상을 타 서로 축하해주던 일, 각자 다른 곳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드라마의 한 장면마냥 공항에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련한 추억 속에 빠져있던 그 때,

아이야.”

익숙했던 그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교복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두 풋풋한 소년과 소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맞은편에 있는 것은 조그맣게 미소 짓고 있는 그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꽤나 고급진 레스토랑인 것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머릿속이 잠깐 어지러워졌다.

- 원래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고백했었나?

그는 잠시 망설이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정장의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무어라고 말을 하지만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상자를 열었다. 나는 상자 안의 반지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별안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이는 당황한 듯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는 내 손을 살포시 들어 올려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우리는 서로를 닮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양가 부모님들을 부족함 없이 모시며 행복한 삶을 보낼 예정이었다. 적어도 나는 앞으로 내게 펼쳐진 미래가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내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그때 그 순간까지도.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나는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제 됐어요.”

그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여전히 주위는 고요했다.

- 이 행동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이제 됐다니까!”

나는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주변이 다시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했다. 레스토랑의 샹들리에도, 식탁위의 연어 스테이크도, 그 사람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와 내가 앉아있는 의자만이 남았다.

그러자 아득히 높은 곳으로부터 빛 하나가 나를 내리쬐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할래요.”

“ ...진심인가?”

드디어 허공으로부터 목소리가 응답해왔다.

이유는?”

제일 답하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목소리는 물어왔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유를!”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순간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이가 내 곁을 영영 떠나버리게 된 그 순간을 다시 내 두 눈으로 마주한다는 것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윤아이. 당신은 훌륭히 당신이 택한 삶을 완수했다. 이것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당신이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진행을 거부한다면 당신은 또 한 번 삶을 반복하게 될 터. 이해하고 있나?”

이해하고 있냐는 목소리의 말에 순간 감정이 폭발했다.

이해하고 있냐고? 당연히 이해하고 있어! 당신네들이 내건 조건대로 삶을 이행하면 궁극적인 이상향에 도달하게 해 준다는 거. 근데 그딴 거 내가 알 바야? 당신들의 계약서에 서명한 건 이전의 나지 내가 아니라고! 나는...”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겨우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죽는 거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생에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다시 봐야 한다니. 이전 생의 내가 뭔 약속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것 까지 봐가면서 유토피아 따위에 도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의 소멸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맘대로 하세요.”

높은 사람들은 어찌도 이리 제멋대로인가. 사람이든, 신이든, 위에 있는 것들은 그저 내려다보기밖에 할 줄을 모른다. 굽어 살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관음 할 뿐.

마음을 추스르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이게 최선일 것이다. 사라져버린다면 최소한 그 사람을 떠올리며 가슴이 찢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손등 위로 무언가가 조용히 내려앉는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손등 위의 종이를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딜 봐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흰색 종이쪼가리였다.

찢어라. 그러면 소멸할 것이다.”

- 마지막까지도 저 짜증나는 말투는 그대로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막상 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조금은 두려웠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내뱉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힘든 인생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거두어준 스승은 말도 없이 떠나가고,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이제야 행복해지려나 했는데 하늘이 그 사람을 데려가버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미련이 없어졌다. 겨우 결심이 서게 되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쥔 종이를 있는 힘껏 찢었다.

 

...

 

?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달리 일어난 일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주변은 아까와 똑같았다. 검정뿐인 공간에 빛을 받으며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 하나.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뭐야, 이게?

또 속았다. 원래 저 녀석들은 사람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그런 족속들인데.

! 지금 나랑 장난쳐? 내가 우스워?”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던 그 때,

아니. 그런 게 아니란다, 얘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또각또각하는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신의 남자는 깔끔한 수트 차림과는 상반되게 흰색의 이상한 새부리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선생님?”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 맞죠? 선생님이 왜 여기에 계신거에요?”

서두를 거 없단다, 얘야. 하나하나씩.”

남자는 가면에 오른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가면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얘기를 해보자꾸나.”

가슴이 요동쳤다. 오래 전에 나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 버린 선생님. 내게 피아노라는 선물을 안겨준 일생의 스승이었지만 다시 나를 외톨이로 만들어버린 사람.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들이 끊기듯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말했잖니.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아니...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몇십년은 지났을 텐데 나이도 안 드신 것 같고...”

나는 떨리는 눈으로 선생님을 응시했다.

왜 저를 떠나가셨던거에요?”

듣고 싶었다. 무언가 잘못 되었던 거였다고. 의지할 데 없는 나를 그렇게 하루아침에 떠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왜 저를 그렇게 버리셨냐고요?!! 나는 당신 때문에...”

그러나 나는 다음 말을 이어서 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나를 꼭 껴안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 다 보고 있었단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선생님을 밀쳐 내며 소리 질렀다.

보고 있었으면서 ! 보고 있었다면서 왜 !”

선생님은 깜짝 놀란 듯 했다.

왜 그 사람이 죽는 걸 보고만 있었던거에요...”

그만 고갤 떨구고 말았다.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야. 다 괜찮단다. 그건 이 친구가 설명해 줄 거야.”

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선생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또 한 사람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야.”

그 사람이었다.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만나고 싶어서 눈물로 밤을 보냈던 사람.

성훈아...”

잠시 제자리에 얼어붙었던 나는 정신이 들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눈물범벅으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그가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틀림없는 그 사람이었다. 나는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그 뒤로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없었다고......왜 그렇게 가버린 거야 도대체...”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어째서 선생님이랑...”

나도 선생님은 이곳에 와서 만나게 되었어. 내가 죽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날 맞아주셨지. 선생님은 그러니까...”

선생님은 계속 말해도 괜찮다는 듯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담당사자셔.”

그런 명칭은 요새는 잘 쓰지는 않지만 말이야. 너무 구식이잖니.”

일정 정도 정해져 있는 우리의 삶을 그 안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이끌어주시는 일을 하시는 거지.”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된 거란다. 내가 너의 어린 시절 너의 앞에 나타난 것도 너를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함이었지. 그게 조건 내에서 네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갑자기 떠나버린 건...복잡한 사정이 있어서야.”

그러더니 선생님은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정식으로 사과하마. 네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춰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 이제 괜찮아요. 어쩔 수 없으셨던 거잖아요. 고개 드세요. 그것보다 저희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그래, 중요한 얘기를 빠뜨렸구나.”

선생님 뒷짐을 지고는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너는 조건을 훌륭히 이행했단다. 성훈이가 죽고 나서 얼마간은 폐인처럼 살긴 했다만, 그 뒤로는 슬픔을 승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러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죽었지. 물론 너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 생에서 행해진 약속이다만. 어쨌든 주어진 범위 안에서 성실하게 삶을 살았단다.”

위대한 피아니스트...”

그래. 너의 말년에 네게 붙었던 수식어란다. 너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겠지만.”

그리고는 위를 가리키셨다.

저 녀석들이 말하는 유토피아는 거짓말이 아니거든. 그래, 여기쯤이 좋겠구나.”

선생님은 우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내가 문을 열어주마. 이 문을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너희들의 세상이란다. 너희들은 상상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너희들이 알고 있는 어떤 능력 또한 창조해내어 사용할 수도 있단다. , 그 세계의 신이 되는 거지. 너희들이 동경하는 세계든, 아니면 현실과 똑같은 세계든 어떤 것이든 창조해낼 수 있단다. 물론 문은 한 개면 되겠지?”

그 사람과 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대답했다.

.”

그래, 그럼.”

대답과 동시에 선생님이 허공을 몇 번 두드리자 어둠이 갈라지면서 문 하나가 생겼다. 문 너머로는 끝없는 평야와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작별이구나, 아이야.”

나는 그이의 손을 잡고 문 앞에 섰다.

그럼 가볼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몸 건강하세요.”

그래. 여기서는 불로장생이긴 하다만. 마음만 받으마.”

심호흡을 했다. 새로운 곳에 내딛는 발걸음이 조금은 떨렸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이니 두렵지 않았다. 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급격히 눈이 부서졌다. 나는 눈을 감고 앞으로 전진했다. 문을 통과하는 마지막 순간, 나는 생각했다. 내 인생은 힘들었지만, 무언가 의미는 있었노라고.

나는...

 

 

 

 

 

 

 

 

 

 

 

 

 

 

위대한 피아니스트.”

두 남녀가 문을 통과하자 문은 사라졌다. 남자는 중얼거리며 의자 위에 놓아두었던 가면을 다시 집어 얼굴에 쓴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대본을 꺼낸다. 남자는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제목 한 번 잘 짰네. NG도 없고 말이야. 이번 작은 호평이겠는데.”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본다.

아이야,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렴. 힘든 인생을 보낸 네가 받아 마땅한 대가란다.”

그는 가면을 다시 한 번 만지작거린다.

이건 이제 필요 없겠어.”

손에 든 대본을 휙 던져버린 그는,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늘게 내려온 핀 라이트만이 남아 바닥에 버려진 대본의 제목을 희미하게 비춘다.

 

' 위대한 피아니스트 : 어느 소녀의 이야기' 

 

 

 

 

 

 

 

 

 

imo-30

문득 12시쯤에 이벤트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써내려간 글이라

완성도는 미흡하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답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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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7/A:145]
인간맨
그러니까 전생에 피아니스트였던 여성이 여러번 삶을 반복하고 소멸하려고 종이를 찢었는데 다행히 담당사자가 도와줘서 남편과 다시 만나고 유토피아로 갔다는 내용인가요?
2019-03-08 14:17:44
추천0
[L:55/A:397]
독서
아뇨 전생에 무슨 삶을 살았는지는 독자의 생각하기 나름이고요.

그저 이번 생에서의 조건이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남기는 거였던 거에요.
고아로 태어나 피아노 스승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사고로 떠나보내 그 슬픔을 곡으로 승화시켜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는 것.
이것이 큰 틀이라고 할 수 있고요.담당사자의 역할은 그 틀안에서 엇나가지 않게 조정하는 것뿐이에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줌과 동시에 사후세계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이 담당사자의 업무인거죠.
그리고 여자가 태어나서 죽는 것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사후세계의 관객들을 위한 영화였던거고요.종이를 찢는 것은 대본과는 별개로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후세계의 사람들이 짜낸 연극에 맞춰 삶을 사는 게 조건이었지만 유토피아로 보내준다는 사실 자체는 진짜인거죠.

예전에 구상했던 장편을 조금 틀어 급하게 써내려가다보니 구멍이 많네요ㅠㅠ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3-08 14:41:11
추천0
[L:7/A:145]
인간맨
그런 내용이었군요.
잘 보고 갑니다.
2019-03-08 14:39:57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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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소아온 세계관을 가져왔다.]류우토의 검도 (ㅋㅋ우려먹기 + 떡밥 잔뜩 뿌리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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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특집- 검은 밤의 할로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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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소속사의 나날 2부 - 1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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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귀신이야기 이벤트! By. AcceIerator. ㅡ 가위눌린이야기(실제 제가 경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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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테니스 선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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