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학기의 끝을 앞두고 있는 여름날 첫사랑의 마지막 이야기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정말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다. 20살 대학교 새내기 커플이었고 사귄지 50일이 넘어가도록 손만 잡은 사람이었다. cc에 기숙사도 바로 옆동이었지만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이었다. 20살의 나는 그와 손만 잡고 있어도 좋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사랑을 원하는 미숙한 아이였다.
[보고싶어]
강의실 가는 길에 망설이다 보낸 문자였다. [나도]라는 두음절만 보냈어도 나는 기뻤을 것이다.
[오늘은 안되는데…]
참고로 그 당시의 나는 애정결핍이 만든 우울증과 저 멀리 산골 지방대로 오면서 향수병까지 생겨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져있는 상태였다. 몇시간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볼 수 없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한번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우울한데 같이 술 먹어 줄 수 있어?]
우울함을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였는데 만나고 싶어서 나의 나약함을 드러냈다. 낮까지만 해도 못본다던 그가 그제야 알겠다며 내게 얼굴을 비추었다.
평소처럼 손을 잡고 그가 찻길쪽으로 서며 술집으로 향했다. 아직 나의 손을 잡는건 아직 사랑하는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의 마음에 불씨는 꺼져 연기만 피고 있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마주보고 앉아 치킨에 맥주를 시키고 음식이 나올때 까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색해 테이블만 보았다. 파란색과 분홍색 폴더폰. 서로 기종은 달랐지만 커플폰처럼 비슷해보여 좋아했던 폰이었다.
-요새 내가 너 피하는거 알지?
고맙게도 먼저 침묵을 깬건 너였다.
-응.너가 처음사귈 때 그랬잖아.
생각 많고 그럴때 너가 피할수도 있다고..
-그런게 아닌데…
나의 대답에 작게 중얼거렸다. 괴로워 보이는 표정. 솔직히 나는 그가 했던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어서 당신을 아직 좋아한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신입생 환영회때 너가 버스에서 했던말 기억나?
그때 난 너가 꿈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멋져보였어.
그 모습이 좋아서 그래서 너한테 사귀자고 한거야...
그런데 사귀면서 넌 내가 싫다고 해도 술먹고 계속 전화하고...
그래서인지 더이상 널 봐도 설레지 않아.
그때의 내 술버릇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거였다. 술에 취하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에 취하면 더 보고싶었고 그때마다 짜증내면서도 피하지 않고 받아주는 그가 좋았다. 싫어하는걸 알면서도 전화를 걸었었다. 내 잘못으로 헤어진 것 같아 눈물이 흘렀다. 해주고 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할 수 없어서 대신 터져나온듯이 흘렀다.
잠시후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나는 여전히 울었고 그는 위로도 해주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떠나버리고 싶은 듯 빠르게 술잔을 비울 뿐이었다. 나는 붙잡기라도 하듯 그의 속도에 맞춰 술을 마셨다. 얘기를 좀더 나눴던 것 같은데 기억 나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취했다.
주문한 메뉴를 다먹고 술집을 나왔다. 이제는 손을 잡지 않은채 기숙사로 걸어갔다. 기숙사에 들어오자 마자 그에게 [고마워]라고 보냈다. [미안해]라고 답장이 왔다. 룸메이트의 노트북을 붙잡고 카톡 일촌명을 바꾼 뒤 룸메 앞에서 다시 울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자주 만나줬다면 우울할 일도 술에 취해서 전화걸 일도 없었다. 게다가 우울해서 보자고 했더니 헤어지자고 하다니. 최악의 남자였다. 하지만 20살. 그를 그리워 했던 나의 싸이 배경음악은 그대는 그대만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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