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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리 데이즈 전체 번역_프롤로그~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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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1,853 | 작성일 2020-10-22 02: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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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리 데이즈 전체 번역_프롤로그~4장

거의 2년도 넘게 전에 유니탈링 프롤로그 번역 올리고 두번쨰로 올리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제 번역 돌릴거도 없어서 올릴 글도 없을 듯

마테리얼 에디션으로 나온 부분이 겹치기 때문에 어디서 본 내용이 있는데... 싶은 곳이 여럿 나올겁니다.

 

아무래도 후기까지 223p나 되는 책 한권의 번역인지라 양이 좀 많아서 한 번에 올리려니 렉도 걸리고 안 올라가더군요. 그래서 게시글 3개로 나눠서 올립니다.

 

네이버 카페에도 올리긴 했는데 여기도 수위제한이 있어서 전체번역이라고는 했지만 1장, 2장은 자체적으로 편집한 부분이 있습니다. 스토리 파악에는 큰 문제는 없어요.

 

괄호 안에 *이 있는건 제가 읽는데 도움되라고 넣은 주석같은 거고, 그냥 괄호만 있는건 실제 책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새로 나오는 신캐 둘의 말투를 제대로 못살려서 아쉽긴 합니다. 시대극이나 사투리 같은 말투라는데 그런걸 살릴 실력은 아니라서... 물론 이상한 말투 땜에 번역기 돌릴때 겁나 빡친건 덤

 

처음에 나오는 부분은 책날개에 있는 전체 내용의 대략적인 줄거리이고, 그 다음부터 일종의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공략길드 <혈맹기사단>을 탈퇴한 키리토와 아스나는, 각자가 살던 집을 떠나서 아인크라드 22층에 있는 숲속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통나무집에서 조용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한때의 평온함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이었지만, 아스나가 NPC상점에서 발견한 S급 목재 테이블을 계기로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놀라운 솜씨를 지닌 목공이 비밀리에 만들려고 하는, 아인크라드에 존재할리가 없는 <무기>. 오랜 친구인 도끼전사이자 상인인 에길의 과거. 그리고 암약하는 <크리티컬 원리주의자>들의 그림자.

키리토와 아스나는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 내려가 더욱 하층으로 내려가는데.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은 뒤 가볍게 앞으로 뻗었다. 이 동작을 취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을 꼭 쥐는 플레이어들도 있지만, 나는 꼭 쥐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편을 좋아한다.

그 다음, 뻗은 두 개의 손가락의 끝을 내 시선보다 약간 아래쪽으로 움직여서 몸의 중심선과 평행이 되는 각도로 움직였다.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그을 때 어느정도 속도가 붙는것까지는 괜찮지만, 꽤 정확한 각도가 요구된다.

서 있을 때라면 가상의 중력에 맡긴 채 곧바로 아래쪽으로 내려 그을 수 있지만 옆으로 누워 있을때는 중심선을 느끼는 것이 어렵다. 그렇기에 누워있을때에는 괜히 윈도우를 열려고 서두르기보다 일어서서 윈도우를 여는 방법이 훨씬 낫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튼튼한 목재 바닥에 똑바로 서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긴장한 나머지 오른팔의 움직임이 어색해졌다. 어찌어찌 제스쳐 커맨드의 입력에 성공하자 내 오른손 바로 아래쪽에 반투명의 직사각형이 출현했다.

메인 메뉴 윈도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것은 VRMMORPG <소트 아트 온라인>의 플레이어와 눈에 보이지 않는 게임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인터페이스이다. 창의 상단에는 [Kirito]라는 이름과 레벨의 수치, HP그래프와 경험치 그래프가 표시된다. 왼쪽열에는 [EQUIPMENT (*장비*)]와 [STORAGE (*인벤토리*)], [STATUS (*스테이터스*)], [SKILL (*스킬*)]같은 탭들이 위아래로 정렬되어 있고, 오른쪽의 주화면에는 초기상태일때 [장비 피규어]라는 이름이 붙은 인간형태의 실루엣이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각종 스킬의 발동에 대한 단축 아이콘들이 있다.

가운데 손가락을 물리고, 두번째 손가락으로 메뉴칸의 중간에 있는 [OFFER]탭을 눌렀다. 기본화면에서 여러 요청에 대한 선택모드로 바뀌었다. 위에서부터 거래요청, 파티요청, 친구 요청... 그리고 최하단부에 내가 찾던 버튼이 있다.

[MARRIAGE (*결혼*)]. 사기와 배신이 가득한 데스게임인 SAO에서 눌린 횟수가 가장 적은 버튼일 것이다. 게임 시작날로부터 2년 하고도 17일이 지났지만 결혼을 한 플레이어와 만난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그 버튼을 눌렀다. 거래나 듀얼과 달리 결혼 요청은 이미 상호간에 친구로 등록된 사람에게밖에 보낼 수 없다. 그 대신에 커서를 추가로 조정할 필요는 없고, 윈도우에 직접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이 표시된다. 자신을 기준으로 반경 10m... 아니, 설령 1km 떨어져 있어도 단 한명의 플레이어명만이 존재한다.

나는 배열된 방법도 아름답고 귀하게 느껴지는 다섯개의 알파벳에 두번째 손가락을 가져다 놓았다. 첫글자는 A로 시작, 그리고 순서대로 s, u, n, a의 문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윈도우창이 입력을 인식했는지 이름이 희미하게 빛났다.

이 단계에서는 YES/NO 같은 대화상자가 표시되지 않는다. 그것을 선택하는 권리는 신청을 받은 쪽이 가지는 특권이다. 고개를 들어 정면 2m 앞에 있는 그녀를 응시했다.

아인크라드의 22층의 외곽부분 근처에 위치한 통나무집의 지붕 너머로 보이는 저녁노을이 그녀 - 아스나의 긴 머리카락과 흰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옷을 황금빛으로 만들었다. 그 빛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나는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스나의 앞에는 작은 윈도우가 나타나 있다. 윈도우에 기록된 메세지는 아마도 [키리토로부터 결혼 요청이 왔습니다. YES/NO] 처럼 간결한 말일 것이다.

사실, 말로 프로포즈를 하는것은 어제밤에 이미 모두 끝났다. 그리고 아스나로부터 '응'이라는 대답도 이미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심장박동이 계속 상승하는것을 느꼈다. SAO안의 아바타가 느끼는 감각의 대부분은 너브기어가 생성하는 유사신호이지만, 심장이나 호흡 등의 신체감각은 진짜와 동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즉, 현실세계의 어느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진짜 몸도 지금 심장이 활발하게 뛰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아스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지만, 표정만으로 알아채는것은 힘들다.

영원처럼 느껴진 몇초가 지나고, 마침내 아스나의 오른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색의 긴 장갑에 달린 은색 팔찌가 석양빛을 반사시켜 반짝반짝거리면서 윈도우 바로 위쪽까지 이동했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버튼 두개가 늘어선 곳 중 한곳에 멈췄다.

조금전의 나처럼 손가락을 멈춘 채 아스나가 고개를 들었다.

개암나무색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심장이 두근, 하고 크게 맥박쳤다.

 

"......키리토군."

 

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정말로 들린것인지, 아니면 아스나의 입술의 움직임만을 보고 내 뇌가 착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다시 멈춘것처럼 완전히 고요해진 노을빛의 세계에서 가느다란 손가락이 천천히 윈도우를 만졌다.

내 앞에 열려있는 메인 윈도우에 새로운 메세지 창이 떴다. 그렇지만 거기에 기록된 문자를 읽기도 전에 아스나의 미소와 두 눈에 고인 보석같은 눈물이 그녀의 대답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나와 아스나 둘이 동시에 한발짝을 앞으로 내밀자 윈도우가 자동으로 사라졌다. 한걸음 더 발을 내딛자 우리 둘 사이에 있던 2m의 거리가 0이 되었다.

어느샌가 양팔을 쭉 뻗어 서로를 끌어당겼다. 키는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둘의 심장이 서로 겹쳐졌다. 불과 몇십분전까지 어떤 퀘스트에 휘말려서 전투를 했기 때문에, 나의 가슴에는 작은 가슴보호대가, 아스나도 은색의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장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아바타가 맞닿은 부분에서 서로의 고동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경종처럼 뛰는 두개의 심장은 완만하게 템포를 떨어뜨리더니 이윽고 하나가 되었다. 일 초에 한 번씩. 이상하게도 아바타의 중심에서 두근, 두근 반복되는 느낌이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어제, 말만으로 프로포즈를 했을때 느껴지던 숨이 멈춰질 정도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2024년 10월 24일 오후 5시 19분. 나 - 검사 키리토는, 사랑하는 소녀 - 세검사 아스나와 시스템적으로도, 그리고 심적으로도 결혼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되었다.

 

 

 

 

 

1

 

"그... 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그... 결혼식 이라던가."

내 질문에 아스나는 찻잔을 양손으로 잡은 채 '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깥의 저녁 노을은 거의 지고 있었다. 통나무집의 거실에는 우리가 사들인 많은 램프가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 개나 있는 방의 커스터마이즈는 아직도 멀었기에 지금 거실에는 초기장비인 테이블과 소파, 주방에는 요리도구 세트, 침실에는 더블사이즈의 침대만 있는 상태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벽과 바닥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졌고, 붙박이 벽난로에서는 진짜(이 세계에 한해서지만) 불꽃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있었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아스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결혼식에 대한 동경심은 나도 가지고 있어. 애슐레이씨가 드레스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한적도 있고... 이렇게 보여도 나도 여자애인걸."

 

"으, 응, 그야 당연히 알고 있지."

 

<섬광>이라는 이명을 가진 뛰어난 실력의 세검사님은 내 대답에 후훗 웃으면서 옅은 김이 올라오는 허브티에 입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표정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런 저런 피치못할 일들이 있었다고는 해도, 우리들은 개인적인 이유때문에 길드를 탈퇴 한거잖아.... 지금도, 혈맹기사단이나 성룡연합, 에길씨나 클라인씨를 비롯한 공략조의 다른 사람들은 75층의 돌파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고. 그러니까... 다른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75층을 클리어 하면, 조그마한 파티 정도는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렇구나."

 

나도 찻잔으로 손을 뻗으면서 수긍했다. 만약 결혼식을 연다면 에길이나 클라인, 리즈벳, 시리카같은 애들은 기꺼이 참석해 주겠지만 - 그때만큼은 정보상인 아르고도 장사에 대해 잊어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아스나의 기분이다. 오늘부터 나는 아스나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지금까지 계속 아스나는 내 옆에 있을때도, 그렇지 않았을 때도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면서 이끌어주었으니까.

속으로 몰래 그런 결의를 다지는 나를 보고, 아스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멋진 집에서 키리토군이랑 둘이서 있는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여기에서 언제까지 같이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이 아인크라드에서 지낸 2년의 세월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

 

"......응. 나도 마찬가지야."

 

전력을 다해서 말을 내뱉었다. 왜냐면 아스나의 말에서 진심을 느낄수 있었으니까. 이 22층에서의 생활은 그저 우리에게 잠시 주어진 잠깐의 휴식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최전선으로 돌아가 다시 전투가 이어지는 나날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초조함을 떨쳐내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결혼식은 100층 공략이 완료되고 모든 싸움이 끝나면 그 때 올리자. 결혼식을 올릴때는 클라인이랑 다른 애들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거야. 카인즈씨 일행이라거나, DDA나 KoB의 멤버들도... 히스클리프는 부르면 오긴 하려나..."

 

그 말에 아스나의 동그란 두 눈이 커다랗게 커졌지만, 얼굴에 미소가 돌아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장한테는 사회를 부탁해볼까?"

 

"음... 틀에박힌 딱딱하고 졸린 말을 할 거 같은데."

 

우리 둘의 웃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물론,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100층 공략을 완료한 후 결혼식을 올리자>라는 것이 실현되지 않을거라는 건 나도, 그리고 아스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SAO라는 이름의 데스게임이 클리어 된다면, 모든 플레이어는 일제히 로그아웃 되고, 두번 다시 아인크라드에 발을 들이지 못 할 것이다.

나와 아스나를 포함한 공략조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해 2년 동안 싸워왔다. 전투 도중에 사망해서 폴리곤 파편이 되어버린 동료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내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마음을 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식탁의 의자에서 일어나서 테이블 둘레를 따라 두 걸음을 내딛었다. 같은 타이밍에 아스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까지 걸어왔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억누르기 위해 아스나를 껴안았다. 결혼 신청을 했을 때와 같은 평안한 포옹이 아니었다. 아스나의 존재를 모두 느끼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아스나를 안은 양 팔에 힘을 주었다. 나도, 아스나도 장비를 해제한 상태였기에 갸냘픈 존재감이 느껴지는 아스나의 아바타의 감촉이 내 온몸에 전해졌다.

 

"아스나......"

 

쉰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면서 비단처럼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에 내 얼굴을 파묻었다. 모든 감각을 내 팔 안에 있는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에게 집중시키고 있으려니, 갑자기 내 몸속에 이질적인 저림이 생겨난 것을 알아챘다.

이 이질적인 감각은 처음 느끼는 감각은 아니었다. 어제, 61층 주거구 셀름부르그에 있는 아스나의 방에서, 나는 SAO에 사로잡힌 뒤 처음으로 이 세계의 아바타에게도 식욕과 수면욕 이외의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메인메뉴 윈도우의 [SETTING (설정)]탭의 깊은 곳에 있는 '도대체 이런걸 누가 알아채겠냐'라고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작은 버튼이나 설명문 내의 링크를 충실히 더듬어 따라가면 출현하는 하나의 체크박스.

그것을 선택하면, 우리 플레이어들의 가상의 몸은 어떤 기능을 획득하게 되는데... 아니, 되찾는다고 할 수 있겠다.

도대체, SAO의 개발진들 중 누가 이런 옵션을 넣은 것일까? 아마도 데스게임의 주모자인 카야바 아키히코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이 게임에 갇히기 전에 현실세계에서 읽은 잡지에서 개발진의 멤버중 몇몇이 게임심사기구의 윤리코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들이 개발 중이던 버전에 장난삼아 탑재했다가 실제 판매가 시작되면서 삭제된 기능이 데스게임이 된 이후 알 수 없는 모종 이유로 부활했다... 고 나 혼자서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소위 말하는 <윤리코드 해제설정>을 어제밤부터 ON상태로 해두었다.

그 말인즉슨, 어떤식으로든 내 감정에 변화가 일어나면, 덩달아 내 아바타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당황하면서 아스나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내 허리에 감긴 아스나의 양 팔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 반응을 알아챘는지, 아스나는 가녀린 몸을 약하게 떨고 있었다.

 

"미, 미안..."

 

아스나가 여전히 나를 껴안은 채 얼굴을 들어올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가까이 다가온 아스나의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아스나는 계속 속삭였다.

 

"...난, 이제 키리토군의 아내야."

 

"어, 응..."

 

"...저쪽 방으로 가자."

 

부엌? 이라는 가벼운 조크를 입 밖으로 말하려는것을 그만두고, 나는 말 없이 끄덕인 채 부엌이 아닌 다른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밝은 거실에서 어두운 침실로 이동한 뒤 램프도 켜지않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방 안에 들어오는 빛은 서쪽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보랏빛의 저녁 노을뿐이었지만, 완전습득을 마친 색적스킬의 효과 덕분에, 아스나의 모습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금속장비나 장갑, 부츠는 벗고 있었지만 익숙한 혈맹기사단의 제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용감한 검사로서의 모습이 내 욕망을 더욱 자극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스나는 양 손을 몸 아래에서 움켜쥐면서,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이럴때에는... 남자애가, 어... 벗겨줘야, 하는거 아니야?"

 

​"어.... 아, 아니... 글쎄, 어떠려나..."

 

데스게임이 시작 될 때까지만해도 단순한 인터넷 게임 폐인에 중학교 2학년 이었던 나는 이 질문에 알맞는 ㅔ대답을 바로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스읍- 하아- 하면서 심호흡을 한 다음, 아스나에게 한 걸음 다가가 오른손을...

 

"......잠깐만, 그거, 무리같은데..."

 

내가 아는 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의 장비 - 그것이 겨우 반지 하나라고 해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해 봤자 내구도를 닳게 해서 파괴시키는 것뿐이지만 그런짓을 이 자리에서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경직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아스나는 뺨을 발갛게 물들이면서 쿡 웃더니 말했다.

 

"미안해, 장난 친거야."

 

다시 초반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이하 일부 생략ㅡㅡㅡㅡㅡㅡㅡㅡ

 

 

 

 

2

 

알게이드의 집에서 지냈을 때에는, 시간표시 윈도우에서 설정할 수 있는 알람의 도움을 받아서 매일 아침 그럭저럭 일어날 수 있었다.

현실세계에서 중학생이었을 때에는, 아침 8시 15분에 울리는 예비종보다 늦게 등교해서 지각 해본적도 거의 없었기에, 딱히 아침에 약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온 이후로는 나도 모르게 야행성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그 이유는, 사냥터가 비는 시간대인 밤시간에 레벨업 하는데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근래 수개월동안의, 내 하루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기상시간은 오전 10시. 오전 시간 동안에는 장비를 정비하거나 수리, 소모품 보충과 정보수집을 하고, 아침 겸 점심밥을 간단하게 먹은 다음에야 필드밖으로 나선다.

낮 시간 동안의 주요 싸움터는, 플로어의 최전선이다. 미궁구가 있는 타워에 도달하기 전에는 필드에 있는 미개척 영역을 탐색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타워에 도달하면 그 이후에는 매핑에만 몰두한다. 이 시간대의 사냥(앵벌이) 효율은 그리 높은편은 아니다. 몬스터들도 강하고, 드랍되는 아이템들도 좋은편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미지의 맵이기 때문에 나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공략을 계속하다가 오후 6시 전후가 될 즈음이면 그 층의 주거구로 돌아간다. 하루의 가장 커다란 즐거움인 저녁밥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생각하면서 돌아가는 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알찬 피로는 되려 좋은 기분이 들 정도다.

번화가에서 혼자 밥을 배터지게 먹은 다음엔 빠르게 숙소로 돌아가 잠시 잠을 잔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흉내를 낸다면 AGI(어질리티)타입에서 VIT(바이탈)타입으로(SAO에 VIT는 없지만) 가는 지름길이지만, 다행히도 이 세계에서는 하루 온종일 감자튀김을 먹는다고 해도 아바타의 체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 시간 동안의 얕은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나만의 <진정한> 밤 시간을 가진다. 공략이 늦어질 때에는 미궁구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때에는 나 자신의 강화를 위해 싸운다. 미리 받아둔 퀘스트가 있을때는 그것을 클리어 하고, 없을 때는 정해진 곳에서 사냥을 한다. 당연히, 후자가 괴로운 축에 속하며, <최전선 만큼은 아니지만, 적이 강한만큼 적당히 위험한> 장소에서 밤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 사냥을 계속하면, 끝날때 쯤에는 몸이 비틀비틀거린다.

마지막까지 아껴 둔 집중력을 써서 주거지까지 돌아온 다음, 전이문에서 알게이드로, 그 다음 내 방에 도착하면, 창밖에서 들어오는 상쾌한 아침 햇빛을 커튼으로 가리고 오전 5시 부터 10시까지 정신없이 잠을 잔다.

정리하자면, 하루 중 수면시간이 6시간, 공략 및 경험치 앵벌이가 12시간, 이동시간과 식사시간, 휴식을 합쳐 6시간이라는 소리다.

현실세계에서 플레이 하던 기존의 MMO라면, 게임은 하루에 20시간! 이라고 말하는 헤비유저도 여럿 있었다.

나 역시 이 데스게임에 갇힌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들어갔던 길드가 전멸했을 무렵에는 엉망진창이라고 할 정도로 레벨업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싸우면서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정신을 깎아내리듯 레벨업을 계속하면, 언젠가 스페이드 에이스를 뽑을 때가 올 것이다, 라고.

길드의 모두가 전멸한 이후에는 그렇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 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그리고 그녀들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가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고, 나 자신에게 알맞는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찌르는 듯한 기상알림의 전자음 - 이 아닌, 보글보글거리는 부드럽고 가벼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시야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시간 표시 윈도우를 보았다. 디지털 숫자는 08:12, 알람이 울리기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있다. 담요를 머리 끝까지 끌어올리고, 달아나려는 잠의 꼬리를 겨우겨우 붙잡으려고 할 때, 이번에는 뭔가 좋은 냄새가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느껴지는 이 달콤한 냄새는...

 

"크림 스프!"

 

라고 외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그 기세에 떠밀려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나를, 침실 문 너머의 부엌에서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내려다 보는 사람은 물론 <섬광> - 정정 - <새신부>인 아스나양이었다.

 

"...좋은 아침이야, 키리토군. 독특한 아침인사네."

 

다리는 침대에, 등은 바닥에 있는 상태에서 나도 신혼 둘째 날 아침에 어울리는 인사를 입에 올렸다.

 

"조, 좋은아침, 아스나. 어어, 그, 크림스프를 마음껏 먹는 꿈을 꿨는데..."

 

그러자 아스나는 기막히다는 듯한 모드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키며 말했다.

 

"꿈이 아니야. 마음껏 먹을 만한 양까지는 아니지만."

 

"...뭐라고!"

 

라고 중얼거리며 코를 벌름거리자 방금전의 그 향기로운 냄새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즉, 처음에 내 잠을 깨운 보글거리던 소리는, 아마도 불 위에 올라간 냄비뚜껑에서 나는 소리였던 것 같다.

평소보다 두시간 가까이 빨리 일어났음에도 - 라고해도 어젯밤에는 2시에 잠들었으니 - 완전히 눈이 떠진 나는 AGI를 전개해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한 후, 식당으로 돌진했다.

보아하니, 방 한구석에 있는 장작 난로 위에는 검은색 냄비가 올려져 있었고, 증기가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스나가 신문을 읽고있던 식탁 위에는 그린 샐러드와 구운 빵이 이미 놓여있었다.

신문을 놓고 일어난 앞치마 차림의 아스나는 그제서야 웃으며 말했다.

 

"세수한 다음에 밥 먹자. 그 동안 계란 프라이 해 줄게. 얼마나 굽는게 좋아?"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이 세계에 갇힌 이후 일어나자마자 얼굴을 씻어본 적도, 계란을 굽는 정도를 골라본 적도 없는 나였지만, 그런식으로 대답을 했다가는 새신부님께서 또 다시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을것 같아서, 약간 생각할 시간을 가진 다음 대답했다.

 

"야, 양면 모두 구워서 반숙으로."

 

"알았어-. 오버이지 말이구나."

 

처음듣는 용어였지만 그랜드 마스터 셰프인 아스나가 말하는 것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그, 그럼 그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긍정의 뜻을 내비치고, 나는 욕실이 딸려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번에 같이 살 집을 새로 고르는데 있어서, 중요시한 조건은 세 가지였다. 1) 플레이어들이 잘 오가지 않는 장소여야 할 것. 2) 주위에서 선공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을 것. 3) 욕실이 클것. 이다.

이 통나무집은 거실 겸 식당 하나, 저장고가 있는 부엌이 하나, 침실이 하나 있는 아담한 구조이지만, 그 대신에 욕실이 꽤 넓은편이고, 흰 나무로 만들어진 욕조는 2미터가 넘는 길이여서 500리터는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세계였다면 수도, 가스 요금이 부담스럽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편리한 VR월드가​ 해결해주어서, 벽에 설치된 수도관에서 항상 신선한 더운 물이 나와서 욕조를 가득 채워준다.

나는 그다지 욕실같은데에 집착하지 않지만, 욕조 안에 가득 담긴 채 김을 내뿜고 있는 뜨거운 물을 보면 세수를 하는 대신 머리부터 풍덩하고 들어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계란 프라이가 오버 이지가 아니라 오버 디피컬트가 될 것 같아서 아침 목욕을 포기하고 은빛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 욕실의 단점은 욕조에서는 온수가 무한정 나오는 반면, 세면대에서는 동상에 걸릴만큼 차가운 냉수만 나온다는 것이다. "우히-잇"하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세수를 해서 남아있는 잠기운들을 날려보내고 식당으로 뛰어 돌아왔다.

 

"투덜투덜투덜..."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계속하면서, 얼굴과 손을 난로 가까이에 가져다대서 가상의 냉기를 빠르게 제거한 다음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부엌에 서 있던 아스나가 다시 기막힌다는 모드로 돌아갔다.

 

"세수할때 만큼은 물이 차가운 게 더 기분 좋잖아."

 

"그... 그야 그럴지 몰라도, 여기 물은 거의 얼음물 수준이고..."

 

"남자애잖아. 그 정도는 참아야지."

 

라고, 아스나는 누나같은 대사를 말하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뭐, 나는 욕조에 들어갔다가 나왔지만."

 

"뭐...... 치, 치사해! 아니, 그보다 나도 깨워줬으면..."

 

"...깨워줬으면, 뭐~가?"

 

생긋 미소를 짓는 아스나의 오른손에는 반짝하고 빛나는 뒤집개가 쥐어져 있었다.

 

"으, 아, 아니, 아무것도... 그보다 계란이 이지가 아니게 될 것 같은데"

 

"앞으로 30초는 괜찮아. ...그래서, 뭐~어~라~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에길의 잡화점 앞에서 "저.얼.바.안!"이라고 당한 다음, 나는 아스나가 손으로 하는 공격에 대해 방어도, 회피도 전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검은 검사>라는 이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당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이건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인데, 항상 여유있게 보이는 아스나도, 정면에서 치고 들어가는데에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가능한 최대한의 상큼함과, 최소한의 신중함을 합친 미소를 지으며-

 

"...깨워줬으면, 같이 들어갔을텐데."

 

뒤집개가 <리니어>의 이펙트 빛을(발할 수 있는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발생시킨 시점에서 재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오른발을 삐질삐질 거리고 있으려니, 이윽고 아스나의 얼굴이 아래턱부터 시작해서 이마까지 새빨갛게 물들었고, 머리의 가마에서 '포옹'하고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비유적 표현을 말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피어올랐다.

우와, 저런 감정 이펙트가 있구나. 라는 표정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은채 놀란채 있었더니, 아스나가 초고속으로 난로쪽으로 돌아가 뒤집개로 프라이팬 안의 계란 프라이를 쿡쿡 찌르며 작게 말했다.

 

"뭐, 뭐어... 키리토군이, 그런식으로.... 말한다면..."

 

쿡쿡쿡

 

"...하지만, 목욕하러 같이 들어가는 거잖아? 드, 등을 씻어주는 정도라면, 해 줄 수 있지만..."

 

쿡쿡쿡쿡

 

"...그, 그러니까, 야한짓은, 안 할 거잖아? 그야, 아직 아침이고, 쇼핑하러 나가서 점심 식사 준비도 해야하...고, 아앗, 꺄아아아-앗!"

 

비명과 함께 아스나의 왼손이 번쩍였고, 프라이팬이 흐릿하게 보일만큼 빠르게 마구 흔들었다.

어떻게 봐도 반숙을 넘어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계란 프라이가 피융- 하고 천장 근처까지 날아오르더니, 한 바퀴 공중제비. 그 다음 프라이팬에 착지.

 

"정말! 키리토군이 이상한 말을 하니까 오버 하드가 되어버렸잖아!"

 

...디피컬트가 아닌건가.

라고 생각하면서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사과했다. 약간 불합리한 꾸중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스나 양에게서 <목욕 OK>라는 언질을 받은 이상, 이보다 더한게 어디 있을까.

 

"미안, 미안, 그치만 아스나가 요리해준 계란 프라이라면 딱딱하게 구워져도 분명 맛있을거야."

 

이것은 한치의 거짓없는 나의 진심이다. 아스나에게도 내 진심이 전해진건지, 새신부님의 얼굴이 다시 홍당무처럼 붉어졌고, 그제서야 언제나처럼 방긋거리며 웃어주었다.

 

 

 

양면 모두 제대로 구워진 계란프라이, 신선한 그린 샐러드, 부드러운 둥근 빵, 그리고 좋은 향기를 내뿜는 크림스프라는, 이 세계에서 지낸 2년 중 가장 완벽한 아침식사를 천천히 시간을 들여 먹어치운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득 담아 아스나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잘 먹었어. 정말 맛있었어. 이건 이제 아침밥이 아니라 블랙퍼스트... 아니, '모닝 디너'라고 해야 하려나..."

 

"어딘가 모순되어 있어, 그 말."

 

아스나는 쿡, 하는 미소를 짓더니, '변변치 못했습니다' 라고 답을 해주었다.

능숙하게 탁자의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한 아내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아스나가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만들어 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쳐도, 지금 이런 태도는 용서 받을 수 없는게 아닐까 하고.

현실 세계에서의 나는,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와 여동생과 거리를 두는 바람에 집안일을 도와준 적이 거의 없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귀가부에 인터넷 게임 삼매경이었던 나보다 잡지 편집 일을 하는 어머니와 검도부인 여동생 쪽이 자유로운 시간이 압도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만약 이 게임이 클리어 되고,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제대로 집안일을 도와주도록 해야 겠다. 아니, 오늘부터 시작하자.

라고 다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식기들을 주방으로 날랐다.

 

"저기, 설거지는 내가 할게."

 

라고 말을 했는데, 뒤를 돌아본 아스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한순간이면 되니까."

 

"...한순간?"

 

"응."

 

이라고 끄덕이면서 내가 들고있던 접시를 받아가더니 겹쳐진 식기들을 '슥'하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줄기에 한 번 가져다대었다.

단순히 그뿐이었는데, 그 순간 식기에 남아있던 오염된 이펙트가 완벽하게 소멸된걸로 모자라, 물기까지 순식간에 증발해서 나는 "헤에엣!"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아스나의 눈빛이 변했다.

 

"'헤에엣' 이라니... 키리토군, 지금까지 자기 집에서 혼자 지낼 때 어떻게 지냈어?"

 

"어, 그게... 외식이 기본이었고, 그 외에는 식기가 필요없는 샌드위치라던가, 만두 같은 걸로..."

 

"헤에~."

 

"......죄송합니다!"

 

"뭐, 남자애니까. 그래도 목욕 정도는 했겠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뱉은 자신의 말에 어떤 독특한 뉘앙스가 담겨 있는걸 알아챘는지 아스나의 얼굴이 또 다시 빨갛게 되었다.

 

"아, 그게...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머뭇거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로서는 아스나의 왼손을 꾹 붙들고

 

"응, 들어갈게."

 

라는 말을 하는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최초로 상용화 된 풀다이브머신 <너브기어>는, 착용자의 뇌에 미약한 전자 펄스 신호를 전송해서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모든 오감을 가상 현실 환경을 통해 체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가상세계 - 다른 말로 전자 감옥에서 약 2년을 보낸 내가 느끼는 오감의 재현도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게 내 견해이다.

시각과 청각에 한해서는 거의 완벽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전송되는 시각, 청각 정보가 인공적인 3D오브젝트와 합성사운드이기 때문에 현실세계의 그것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고 듣는 행위 자체에 위화감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각과 후각도 꽤 충실한편이다. <무언가를 먹는 감각> - 즉, 음식의 맛과 향기, 그리고 혀에 닿는 감촉과 씹는 감각이 모두 포함된 복합적인 감각을 리얼타임으로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프리셋된 데이터를 <미각재생엔진>이 결합, 재생하는 것뿐이지만, 익숙해지기만 하면 맛있는 것을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느껴진다.

특히, 요리스킬을 컴플리트한 세검사님이 만들어주는 요리는 - 설령 그것이 간단한 계란프라이라고 해도 - 여기가 가상세계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의 만족감을 준다. 뭐, 약간의 정신적 보정이 들어가 있을 테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촉각, 즉, 따뜻함이나 차가움을 포함하는 피부감각이다.

유감스럽지만, 촉각에 느껴지는 위화감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를 능동적으로 만지고 있을때는 괜찮다. 가죽을 감은 애검의 칼자루를 꽉 잡을때의 기분.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만질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이라던가. 이럴 때는 현실 이상의 해상도로 내 촉각을 만족시켜준다.

그렇지만 수동적인 정보, 즉, 아바타 전신의 피부가 평상시에 느끼는 각종 감각에 대해서는 현실세계의 감촉과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옷 안쪽의 천이 피부에 스치는 느낌. 겉옷의 무게나 하의의 팽팽한 정도, 공기의 온도나 흔들림. 바닥을 딛고 서 있으면 발바닥의, 의자에 앉을 때 허벅지 뒷쪽의 압박감. 이런 종류의 <전신에 항상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각>의 대부분은 사실 SAO에서는 엄청 간략화 되어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정보량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무언가를 입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마치 낮은 비트레이트(*수치가 낮아지면 질이 낮아짐*)의 영상처럼 밋밋하고 조잡한 감각을 받는다.

그래도 이런 감각에 익숙해 질 수는 있다. 현실세계에서도 옷의 촉감이 어떻다던지를 항상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기에 일상생활에 있어 불편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촉각의 낮은 퀄리티를 어쩔 수 없이 체험해야만 하는 상황도 존재한다.

장비를 모두 해제한 상태로 전신을 따뜻한 액체에 담글 때, 즉, 목욕이다.

 

 

 

2024년 10월 25일 오전 10시

욕실로 이어지는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음음음~ 후후~후흥~]하는 콧노래. 그리고 물이 경쾌하게 떨어지는 소리도 같이 들린다.

어쩐지 예전에, 다크엘프 야영지에서 같이 지냈던 때가 기억나는 상황이지만,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나에게 없던 것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문을 열 수 있는 권리이다.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그러자 콧노래가 멈추고, 일시적인 침묵이 흐르더니 '들어와'라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이쪽도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문을 열었다. 안쪽의 창에서 들어오는 오전의 햇살이 욕실에 가득 찬 수증기 이펙트를 하얗게 비추고 있어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인크라드 22층의 숲에 자리잡은 통나무집 자체는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욕실만큼은 여유가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넓이는 약 2m x 4m. 현실세계에서의 표준 욕실은 1618사이즈 - 즉, 1.6m x 1.8m라고 아스나가 말하는 걸 들은적이 있으니, 면적만 놓고보면 약 2.8배가 되는 작은 온천 여관 수준... 아니, 이건 너무 지나친 생각인가.

소문에 의하면 길드 성룡연합이 56층의 언덕에 지은 요새 클래스의 길드홈에는 길이가 10m가 넘어가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든 욕조가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 정도까지 되면 오히려 차분하게 있지 못할 것 같다. 플레이어 홈으로는 딱 이 정도까지를 사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쪽은 노송나무로 만든데다가, 온수는 원천에서 새로 받을 수 있으니까...

 

"저기,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거야?"

 

뿌연 수증기 건너편에서 그런 소리가 울려퍼져서, 머릿속으로 하던 생각을 인터럽트(*중단*)시켜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아, 들어가. 들어갑니다."

 

욕조를 향해 비틀거리는 요상한 걸음으로 다가가자, 다시 들려오는 질문.

 

"그 꼴로?"

 

헉 하고 나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언제나 입고 있던 검은 옷을 입은채였다. "아, 버, 벗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뒤 윈도우를 열고, 장비 해제 버튼을 연타. 여러개의 천 장비가 인벤토리 속으로 들어가고, 노출된 아바타의 피부에 뜨거운 수증기가 살짝 스쳤다.

여기서 아니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이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16살의 남자가 잇다면 그 녀석은 Stand Alone RPG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VRMMO의 플레이어 중 한 명에 불과한 나로서는, 사고력이 90% 감소 된 디버프에 걸린 것 마냥 비틀거리며 전진 할 수 밖에 없었다.

뿌연 수증기를 헤치고 욕조 앞까지 이동한 나의 시야에 반짝반짝거리며 흔들리는 수면이 들어왔다. 그리고 욕조 한쪽에서 어깨 위쪽을 노출시킨 밤색 머리의 세검사씨도.

 

 

 

 

ㅡㅡㅡㅡㅡㅡㅡㅡ이하 일부 생략ㅡㅡㅡㅡㅡㅡㅡㅡ

 

 

 

 

 

3

 

끼이익. 끼이익.

커다란 흔들의자의 다리가, 나무 바닥 위에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파도를 타고 있는듯한 부드러운 상하운동, 그리고 따뜻한 햇살이 졸음을 불러 오는 것 같다. 아마도, 눈을 감으면 금세 잠들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꺼풀의 무게에 맞서서 내 몸 위에 누워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분 전부터, 계속해서 희미한 숨소리가 내 귀에 와닿는다. 호수를 지나오는 바람이 조금 서늘하지만, 두 아바타의 접촉면에서 생겨나는 열 덕분에 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 이건 모두 가공의 정보이다.

나와 아스나의 몸은 무수한 폴리곤으로 구성된 가공체(아바타)이고, 흔들의자와 나무 바닥, 그리고 뒤에 있는 통나무집도 마찬가지다.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감각, 햇살의 온도, 접촉한 피부에 느껴지는 온도와 부드러움도 현실세계의 어딘가에서 혼수상태로 살아있는 내 머리에 장착 된 너브기어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가공>이라는 단어는, <하늘에 걸린 다리>가 원래의 의미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다리를 세울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 혹은 갇혀있는 - 부유성 아인크라드야말로 완전한 가공세계라 할 수 있겠다. 무한한 하늘에 떠 있는, 높이 수십미터의 돌과 강철로 만들어진 성. 하늘에 다리를 거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치, 영원히 깨지 않는 꿈 같다.

아니, 그건 아니다. 이 꿈은 벌써 2년이나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언젠가는 눈을 뜰 때가 올 것이다. 데스게임을 클리어하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아인크라드에서 떠나거나, 혹은 가공의 생명을 의미하는 HP 게이지가 제로가 되어버리는 그 순간에.

그렇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아인크라드 22층의 한쪽 구석에서 멈춰서 버린다면. 그래서 무서운 몬스터도, 악랄한 플레이어 킬러도 나타나지 않는 이 곳이라면. 따뜻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꿈을 언제까지고 꿀 수 있지 않은가. 우리 둘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게임을 클리어 하는 그 순간까지...

내 의식의 깊은곳에서 생겨난 그런 욕망때문에, 내 아바타가 아주 희미하게 부르르 떨렸다.

 

"으음......"

 

하는 희미한 한숨. 밝은 연분홍빛의 입술이 작게 움직이고, 속삭임 소리가 넘쳐흘렀다.

 

"......무슨일이야, 키리토군...?"

 

아마, 자고 있던 와중에도 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모양이다. 왼손을 들어 길다란 밤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나 자신도 놀랄만큼 조금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속눈썹이 천천히 들어올려지더니, 개암나무 색의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모든 두려움을 빨아들임과 동시에 달래주는 듯한 눈빛에 자극을 받았는지,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조금, 불안해져서. 우리들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은... 아니, 우리 자신도 따지고보면 가공의 존재니까... 그래서, 언젠가는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랬구나..."

 

그렇게 대답하는 아스나의 입술에는 은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플로어 외부 경계선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나 말이야, 어렸을 때, 전선을 좋아했어."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줄만 알았다. 아스나의 시선을 쫓아 저편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전선같은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선이라면... 전기나 신호를 통과시키는 케이블을 말하는거지?"

 

"맞아."

 

"왜 또 그런걸. 전선은 예전부터 경관을 나쁘게 해서 요새는 계속 땅에 묻는 공사만 하는 이미지인데..."

 

"응, 저쪽에서 살고있던 집 근처는 대부분 땅 속에 묻어버렸더라고. 그래도, 땅에 묻으면 더는 보이지 않으니까, 좋아 할 수도, 싫어 할 수도 없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어...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자 아스나는 오른손을 들어 궁중에 스윽 하고 선 하나를 그렸다.

 

"전선을 보고 있으면, 항상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저 선 안에는 많은 사람이 보내는 메일이라던가 사진같은게 흐르고 있었을텐데. 그런데도 걔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향하고 있잖아. 그게 엄청 신기하게 느껴졌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패킷이나 헤더, 데이터를 보내는데는 전선이 아니라 광케이블을 사용한다는 등의 지식이 떠올랐지만, 지금 아스나가 말하는 것은 그러한 구조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신호선 안에는 각기 다른 수신지와 발신지를 갖는 데이터들이 무수히 오고 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통의 편지가 제대로 도착하는 것도 작은 기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것이다.

하지만,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이런 내 망설임을 느꼈는지 개암나무색의 눈동자가 다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나랑 키리토군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어."

 

속삭이는것 같은, 그러면서도 확실한 목소리.

 

"이 감각 데이터는, 현실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우리 둘의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왕복하고 있어. 비록 이 세계가, 그리고 우리의 몸도 가짜지만... 우리의 목소리나 감각을 전달해 주는 신호는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 신호들은 수많은 케이블들을 열심히 달려서 나한테 도착 하는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아스나는 하늘을 향해 들고 있던 오른손으로 내 왼쪽 뺨을 살짝 찔렀다. 몸의 방향을 바꿔서 약간 움직인 그 순간,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처음에는 새가 열매를 쪼는 것처럼 부드럽게. 조금씩 깊게, 격렬하게, 가공의 기관이 서로 교차한다. 부드럽고 촉촉하게 느껴지는 소리가. 달콤한 향기가. 거칠어지는 한숨이.

그 감각 신호를 받아들이면서 상상해본다. 하늘에, 혹은 땅 속으로 설치 된 멀티 코어 섬유 속을 떠돌아 다니는 무수한 빛들. 그것들은 가공의 존재가 아니다. 확실히 그곳에 - 또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나와 아스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미칠듯한 사랑스러움이 몸의 밑바닥에서부터 끓어 올라서 갸냘픈 몸을 거칠게 껴안았다. 그리고 내 손은 어느샌가 얇은 스웨터 속을 더듬고 있었다.

 

"응... 안돼. 오늘은 이제, 밤까지 기다...리..."

 

한숨 섞인 목소리로 아스나가 이렇게 속삭였지만, 아스나를 탐하는 듯한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흔들의자가 크게 흔들려서 나무 바닥을 불규칙하게 두드렸다.

이윽고, 울먹거림이 반 정도 섞인듯한 목소리가 내 귀로 들어왔다.

 

"키리토군... 전해줘... 나한테... 내 몸에, 키리토군을... 전해줘...!"

 

나는 말로 대답을 들려주지 않고, 양 팔로 아스나의 몸을 끌어당겼다.

 

 

 

2024년 10월 25일, 오후 2시 30분.

통나무집에서 호숫가를 따라 주거구로 향하는 오솔길을 걷고 있을 때, 아스나가 갑자기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우, 우웃-!"

 

"왜, 왜 그래?"

 

나도 당황해서 그렇게 물어보자, 이번에는 양팔을 들어올려서 얼굴을 가려버렸다.

 

"우우우우웅~~~"

 

"호, 혹시 배라도 아픈거야?"

 

"우웃-!"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이상한 버섯 같은걸 먹으면 배드 스테이터스인 <복통>에 걸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오늘 점심은 아스나제 간장을 사용한 데리야끼 치킨이었다. 만일 현실의 몸이 복통에 걸리더라도, 그 감각은 너브기어에 의해 차단된다.

그렇다면 아스나는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는 건가. 하는 걱정스러워 하고 있으려니 -

갑자기 몸을 털썩하고 숙인 아스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으... 나 있지, 원래 이런 아이였던걸까...."

 

"이런...이라니, 무슨 아이?"

 

바로 그 순간, 오른손으로 내 왼쪽 어깨를 때렸다.

 

"그런 걸 말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라며 외치는 아스나의 옆모습이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겨우 아스나가 무슨말을 하려고 했던건지 깨달았다. 아마도, 아침부터 윤리코드에 저촉되는 행동을 여러번 저지른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 같다.

 

"뭐야, 그런거였어?"

 

"잠깐! 그런거라니,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란말야!"

 

"맨 처음에 <그런거>라고 말한건 아스나잖..."

 

손바닥이 다시 내쪽을 향해 날아왔기 때문에, 나는 어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돌렸다.

 

"아니, 그렇겠네. 어, 그 왜... 우리 둘은 이미 결혼 한 사이고, 부부사이면 그런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고, 그러니 그렇게까지 으르렁 거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해, 행위라고 말하지 마! 더 부끄러워지잖아."

 

"그럼... 뭐라고 말하면 돼?"

 

"어... 그러니까, 음......이 아니라! 뭘 말하게 만들 셈인거야!"

 

세번째 손바닥이 어깨에 작렬했고, 그 덕에 나는 바로 오른쪽에 있는 호수의 수면으로 굴러떨어질 뻔 했다.

 

 

 

아인크라드 22층의 주거구 <코랄>은 도시라기보다 마을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권내와 권외를 구분짓는 것은 높이가 1m 50cm밖에 안되는 나무 울타리이고, 건물들도 모두 목조건물이다. 마을 중앙에 있는 전이문 게이트까지는 깔끔하게 손질 된 통나무로 되어있다. NPC 주민들도 얼마 없으니,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제품들은 꽤 충실하다고 할 만큼 갖추어져 있다. 조금 전 아스나랑 같이 앉아있었던 흔들의자도 어제 이 마을을 지나칠 때, 상점에서 찾아 충동적으로 구매한 물건이다. 오늘 이 마을을 재차 방문한 이유는, 통나무 집에 놓을 가구를 채우기 위해서다.

애초에, 침대와 테이블과 의자는 처음부터 집 안에 놓여진 기본 가구였기에, 사야할 가구라고 해 봐야 수납 가구정도 밖에 없다. 아인크라드에서의 수납가구의 존재의의는 90%가 <실내 인테리어 장식>일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템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지에 수납할 수 있고, 플레이어 하우스의 주요기능인 <대용량 홈스토리지>도 보물상자 형태로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거실에 놓을 선반 하나, 침실에 놓을 옷장을 하나씩 사면 좋겠다 -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와아~. 엄~청 굉장하다!"

 

첫번째 가구점에 들어선 순간, 아스나는 방금 전 까지의 수줍음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소리질렀다.

 

"키리토군! 저기, 저기 봐봐! 엄청 멋있는 테이블이야!"

 

"헤에-. 엄청 커다란데."

 

나로서는 참으로 솔직한 감상을 말한 것 같은데, 새신부님은 뭔가 불만스러운지 나를 노려보았다.

 

"잠깐만, 겨우 그게 다야?"

 

"아니, 그야, 테이블같은건 크거나 작은 정도밖에는..."

 

"잘 봐봐, 호두나무로 만든 이 깨끗한 목재 상판을! 열 명이 편하게 앉고도 남는 크기에, 상판의 두께도 10cm는 되고, 나무결도 대단히 예쁘게 손질되어있잖아."

 

매끈거리고 윤기나는 광택이 어린 나무 표면에 뺨을 비비는 아스나에게서 슬쩍 떨어져서 테이블 반대편에 배치 된 가격표를 슬쩍 보았다. 그 순간,

 

"비싸아-!!"

 

라고 외치면서 뛰어올랐다. 그러자 똑같이 놀란 아스나가 '왜, 왜그래!?'라고 물어봤기에, 와들와들 떨리는 오른손으로 가격표를 가리켰다.

 

"그그그그, 그치만, 여여...여기, 무려 70만 콜이라고..."

 

하지만 아스나는 내 말을 듣고도 흠흠거리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700K라 이거지... 뭐, 그 정도는 될 것 같긴 한데..."

 

"에, 에에엑!? 이거 분명히 바가지야! 왜냐면 단순한 테이블이잖아!? 나무에, 판자라고!!"

 

"있지, 키리토군. 만약에 현실세계에서 이거랑 똑같은 테이블을 판다고 가정하면, 아마 천만엔은 갈거야."

 

"ㄴ, 네에에!? 처, 천만... 그 정도면, 집 한채를 통째로 살 수 있는 가격이잖아..."

 

그대로 기겁할 뻔한 나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전시된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기가 막히다는 듯한 표정의 아스나는 내 앞까지 오더니, 방금전 일의 보복이라는 듯 빙긋 하고 웃었다.

 

"있지, 여.보. 나, 이 테이블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데♪"

 

절레절레절레, 하며 고개를 흔드는 나.

 

"우리집 거실에 두면 분명 엄청 잘 어울리고 엄청 예쁠거야. 밥도 더 맛있어 질거라고 생각해."

 

부들부들부들, 거리며 조금씩 떨리는 나.

 

"그리고, 그 의자 말인데, 가격표에 100K콜이라고 써져있어."

 

피융- 하고 튀어올라 바닥에 구르는 나를 미소 지은채 내려다보며 새신부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 그치만 우리집에는 너무 클지도 모르겠네. 좀 더 작은걸로 찾아볼까나."

 

끄덕끄덕끄덕, 거리며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나.

결국, 저렴한 크기의 저렴한 가격이지만, 집에 있는 초기장비보다 좀 더 세련된 테이블과 의자, 장식장, 뚜껑이 달린 커다란 상자를 비롯한 이런저런 소품들을 사고, 거기에 식료품까지 잔뜩 사들인 나와 아스나는 마을을 나와 귀갓길을 걸었다. 사들인 짐들은 모두 공용 스토리지에 넣어두었기에, 마을로 향할때와 마찬가지로 빈손이다. 칼도 들고있지 않았지만, 만일의 경우에는 <퀵 체인지>모드를 사용해 즉시 장비가 가능하다.

쇼핑하는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기에, 상층의 바닥은 석양을 맞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인테리어 같은데 심혈을 기울이는 타입이 아닌데 비해, 아스나는 오랜만의 쇼핑에 만족한건지, 발걸음마저 경쾌해 보인다.

 

"있지, 키리토군. 맨 처음 들렀던 가게에서 봤던 그 커다란 테이블 말인데..."

 

아스나가 갑자기 웃는 얼굴로 이런말을 하자 나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은 미소를 지었다.

 

"으, 으응. 머지않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야. 가격표 제대로 안 봤지? 그거 플레이어 메이드였어."

 

"엑, 진짜...?"

 

"제작자는 <마호클(Mahokl)> 이라는 사람이었어. 혹시 아는 사람이야?"

 

"아니...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야."

 

"나도 그래. 그치만, 저 정도의 테이블을 만들 정도라면, 분명 목공 세공(우드 크래프트) 스킬을 완전습득 했을거라고 생각해. 굉장하지... 아인크라드에는 공략조 인원들 말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어."

 

"...그러게..."

 

아스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이 아래쪽 플로어에서 잠시동안의 휴식을 만끽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75층의 공략조 플레이어들은 미궁구역을 목표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를 만들어주고, 수리해주는 리즈벳 같은 대장장이들. 드롭 아이템을 매입해주고, 유통시켜주는 에길같은 상인들. 그 외에도 가죽 세공 장인이나 바느질 장인, 정보상이나 약사들... 수천명의 플레이어들이 매일매일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 역시, 가공의 환상이 아니다. 언젠가 이 세계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곳에서의 기억은 남는다. 원한다면, 현실세계에서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 남길 수도 있다.

길을 걸어가던 나는 오른손을 뻗어서 아스나의 왼손을 잡았다.

아스나도 웃으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저기 말이야, 키리토군. '이 세계에 존재하는건 모두 가공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아까전에 이런말 했었지?"

 

"아... 응. 그랬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한 채 고개를 끄덕이자, 아스나는 저편의 노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가공이라는 말은, 진짜가 아니라는 말이지? 가공요청이라던가, 가공전투기록이라던가."

 

"가공생물도 마찬가지일걸."

 

"후후. 맞아. 그런데 가공이라고해도, 정말 존재하는게 있을 수도 있어."

 

"에에?"

 

뭔가 미스터리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뭔가 모순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공이라고 하는건데..."

 

"원래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해할 거야."

 

"으응...?"

 

하늘에 다리를 걸치는건 있을 수 없다. 애초에 현실적이지 않다. 그게 가공이라는 단어의 어원이었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붉게 물들어가는 상층의 바닥을 올려다 보았다.

갑자기, 몇시간전에 한 아스나의 말을 - 그녀가 보여준 환상적인 정경을 떠올렸다.

 

"아... 혹시, 하늘에 걸친 다리라는거... 전선을 말하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자 아스나가 기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전봇대라던지, 철탑을 사용해서 높은곳에 설치되어 있는 전선을 <가공선>이라고 말하잖아? 어딘가 이상한 단어라고 쭉 생각하고 있었어. 현실세계의 일본에서는 가공선을 점점 볼 수 없게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경치에 방해가 되더라도 나는 그게 좋아. 세계가 그 선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까지 전선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해본적은 없었어..."

 

하늘을 쳐다보던 시선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그치만 오늘 이렇게 아스나한테 여러가지를 듣고 배울수 있었어. 언젠가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내 방 창문을 통해서 전선을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에헤헤... 그렇게 말해주니까 뭔가 기쁜걸."

 

순수한 웃음을 지은 아스나를 본 순간, 전율할만큼의 사랑스러움이 넘칠듯 끓어올라서 나는 아스나의 가녀린 몸을 끌어안았다.

 

"잠깐만, 키리토군. 지금 길 한복판이야!"

 

당황스러운 듯 소리를 외치는 입을 부드럽게 막았다.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그제서야 얼굴을 떨어트려 아스나를 바라보자, 아스나는 화가 나면서도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속삭였다.

 

"정말... - 이제 조금 남았으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3, 2, 1..." 

 

메인 메뉴의 시각표시를 보고있던 아스나가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제로!" 

 

라고 하는 소리와 함께 움찔하며 목을 움츠렸지만, 5초가량이 지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2층의 바깥 경계 근처에 세워진 통나무집에는, 변함없이 온화한 공기만 가득 차 있다. 나와 아스나가 나란히 앉아있는 소파가 급상승 한다거나, 집 자체가 폭발한다거나 그 외에 내가 깜짤 놀랄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뭐, 뭐가 제로야?"

 

내가 주뼛거리며 물어보자, 아스나는 윈도우를 닫고 미소를 지었다. 

 

"지금 딱 17시 19분이 됐어." 

 

'딱'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다. 대체 어떤 시간이길래, 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결혼하고나서 정확히 하루가 지났구나." 

 

"정답! 1주년이 아니라 1주일이야." 

 

기쁜듯이 말하는 아스나를 쓴웃음을 지으며 껴안았다. 

 

"그럼, 축하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 

 

뺨에 걸린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털어내자 아스나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았다. 조그마한 입술에 내 입을 살며시 포갰다. 

긴 키스가 끝난 뒤, 아스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아직 1일밖에... 그게 아니면 벌써 1일이나 된 걸까?" 

 

이 집에서 보낸 24시간을 짧게 느끼는지, 길게 느끼는지를 묻는 것 같다.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가 대답했다. 

 

"둘 다...려나... 아스나랑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이야기도 나눠서 굉장히 충실하게 지낸 하루였지만, 벌써 1일이나 지난건가 하는 기분도 들어."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통나무 집에서 지내는 날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아스나는 공략조 길드 <혈맹기사단>을 탈퇴하고, 동시에 최전선에서의 일시 이탈을 선언한 뒤 이 22층까지 내려왔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이 빠졌다고해서 공략이 멈춰버릴 프런트러너들이 아니다. 불패의 검사 히스클리프가 이끌고 있는 KoB, 공략조 최대 길드인 <성룡연합>, 오랜 친구인 클라인이 리더로 있는 <풍림화산>... 그 외에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75층의 미궁구를 목표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전혀 굳건하지 않은 공략조를 이어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죽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채 모두가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 는 공통의 인식일 것이다. 

SAO에는 마법이 없다. 따라서 힐러나 버퍼 같은, 다른 게임일 경우 전장에서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직업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탱커, 대미지 딜러, 스카우트 같은 역할 분담이 있다고 해도, 결국 어떤 플레이어던지 필연적으로 몬스터의 앞에 서서 공포를 견뎌가며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절대적인 안정감을 주는 히스클리프 같은 플레이어나,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몬스터를 베어버리는 아스나 같은 플레이어는 숭배와도 같은 경의를 끌어모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싸우지 않으면 공략조라는 자격을 잃는다는 말도 된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공포를 컨트롤 하지 못 해서 몬스터와 맞서지 못하게 된 공략조 플레이어도 있다.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전투라면 모를까, 플로어 보스 공략전에서 스위치 지시를 무시하는 것은 파티의... 더 나아가서는 레이드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런 플레이어들은, 말이나 태도로 공략조에서의 이탈을 제안받아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와 아스나의 전선이탈도, 앞선 사례와 비교해본다면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75층에서 지금도 싸우고 있을 플레이어들 - 특히 길드 KoB 내에서는, 갑작스런 이탈에 대해 씁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잠시동안의 휴가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아마 75층이 클리어 될 때까지의 일일 것이다. 

아니... 75층이라면 아인크라드의 세 번째 쿼터포인트이다. 25층, 그리고 50층이 그랬던 것처럼, 플로어보스가 절망적이라고 할 만큼 엄청나게 강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보스방이 발견 되는 시점에서 복귀를 지시받을지도 모른다. 

 

"...벌써 하루가 지나가 버렸네." 

 

아스나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나는 아스나의 가녀린 몸을 껴안았다. 

최전선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스나가 KoB의 서브리더로 복귀한다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고민을 알아차렸는지, 아스나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 겨우 1일 이잖아." 

 

"...응." 

 

"그리고, 아직은 오늘이 다 지나간것도 아니니까, 좀 더, 많이, 여러가지를 해보자?" 

 

"...어, 응." 

 

너무나도 매혹적인 그 말에, 내 아바타가 움찔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아스나가 놀라서 눈을 크게 깜빡이더니, 그 다음에는 얼굴 전체가 새빨개졌다. 

 

"아, 아니야. 여러가지라고 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라고 빠른 말로 얼버무리는 아스나의 목덜미에 내 입술을 가져갔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의 감촉을 느끼면서, 낮에 아스나가 말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전선을 좋아했었어. 라고 아스나는 말했었다. 전선 안에서 여러가지 데이터가 끊임없이 오고가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었다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아스나의 떨림과 신음소리는, 현실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있는 아스나의 뇌에서 방출되는 장대한 광케이블망과 SAO서버를 통해서 내 너브기어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런 사실이 소중한 기적처럼 여겨지는 한편, 답답한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스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힘껏 강하게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혹시......" 

 

그러나, 이 뒷말을 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은 너무나도 멀리 있고, 덧없는 미래였기 때문이다. 이 데스게임이 클리어 된 후를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것처럼 항상 내 생각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아스나도, 지금만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양 손으로 나를 강하게 껴안아 주었다. 

이윽고, 아스나가 입에서 뱉어는 말은 단 한마디. 내 이름이었다. 

 

"키리토군." 

 

그 목소리는 '괜찮아'라고, 어린 아이를 달래주는 듯한 울림을 갖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오븐에서 향기롭게 구워낸 생선과 빵, 감자 포타주 스프와 그린 샐러드라는 메뉴였다. 역시나 요리스킬을 완전히 습득한 마스터답게, 껍질에 절묘하게 탄 자국이 남아 있는 흰살 생선을 향초 소스와 함께 입이 터질만큼 넣은다음 '우물우물, 꿀꺽'하고 삼킨 뒤 셰프에게 질문을 했다. 

 

"이 물고기, 방금 전에 마을에서 사 온 거야?" 

 

"맞아. ...혹시 입에 안 맞아?" 

 

"어? 아니, 엄청 맛있어! 엄청!"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냥, 모처럼 아스나가 직접 만든 간장이 있으니까, 생선회도 괜찮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 먹어보고 싶다아- 생선회..." 

 

아인크라드의 NPC 레스토랑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 메뉴를 상상한 아스나도 넋을 잃은듯한 눈을 했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치만, 이건 내가 묘한걸 신경쓰는 것 같긴 한데... 이 세계에는 냉장고가 없잖아?" 

 

"어, 없지." 

 

"그리고, 마을의 생선 장수도 상온의 케이스에 늘어놓기만 하고... 어쩐지 그런 생선을 사 온 뒤 생으로 먹는 건 좀 그렇단 말이야." 

 

"그, 그렇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는 생선을 땅에 떨어트려 둔채 방치해 두더라도, 오브젝트로서 존재하기에, 내구도가 남아있는 동안에는 품질은(당연하지만 맛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떨어트리고 3초가 지나면 얼룩 이펙트가 생기긴 하지만, 물로 씻어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스나의 거부감도 이해할 수 있다. 생선회로 먹는다면, 역시 갓 잡은 신선한 소재인 편이 맛있게 느껴질테니까. 

 

"그럼, 아침에 생선가게가 열리는 즉시 일등으로 사서, 빠르게 달려서 돌아오면 되지 않을까... 아, 그래도 생선이 언제 잡힌건지 알 수 없으니까... 앗, 맞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나는 메인메뉴의 스킬탭을 열었다. 

현재 레벨 96에 도달한 나는, 12개의 스킬슬롯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등록된 스킬들은, <한손직검>, <이도류>, <양손검>, <체술>, <투검>, <무기방어>, <전투시 회복>, <색적>, <은폐>, <질주>, <인벤토리 무게 확장>, <응급처치>이다. 

이 중에서, 숙련도와 사용률이 가장 낮은것은, 분명히 양손검이다. 꽤 예전에 적당히 레어한 양손검을 손에 넣었을 때, 직접 장비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스킬을 익혔으나, 결국 얼마 지나지않아 사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애초에, 양손검 소드스킬을 연구해서, 이후에 생긴 양손검 사용 유저와의 듀얼에서 쓸모가 있었기에 무익한것은 아니었지만 - 이 이상 스킬슬롯에 남겨놓는다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혹시, 스킬 바꾸려고?" 

 

어느샌가 내 뒤에 서있던 아스나가, 내가 꺼낸 윈도우를 들여다보면서 물어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아... 나, 양손검을 버리고, 낚시꾼이 되려고." 

 

"에에?"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하지만 말리지 말아줘, 아스나! 이것도 다 신선한 생선회를 먹기 위해서야!" 

 

그러자 아스나는 테이블 맞은편으로 되돌아가더니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닥, 말릴 생각 없는데." 

 

"엣... 그, 그래?" 

 

"그야, 이도류도 가지고 있는데, 이제와서 양손검 같은건 안 쓸거잖아. 게다가, 키리토군도 생산스킬 계열을 하나쯤 가져도 좋지 않을까라고 늘 생각했고." 

 

"그, 그래?" 

 

"그리고, 나도 맛있는 생선회 먹고 싶기도 하고. 스킬 수행 힘 내!" 

 

이런 격려를 받게되면 "오, 오우, 맡겨줘!"라면서 가슴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나였다. 

 

같이 식탁을 정리한 뒤, 벽난로 앞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스나가 말했다. 

 

"맞다... 생산계 스킬이라니까 생각났는데, 낮에 코랄마을에 가구를 보러 갔잖아?" 

 

"응." 

 

"가게에 엄청 멋진 테이블이 있었잖아?" 

 

"으... 응."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은 이유는, 설마 가격이 70만콜이나 되는 테이블을 사고싶다고 말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나는 '그런 거 아니야'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 이었다. 

 

"그 테이블을 만든 <마호클>이라는 목공장인 분을 찾을 수는 없을까." 

 

"어... 음, 어떠려나. 그 NPC 샵에서 잠복이라도 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아르고한테 부탁하면 한방에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저... 있지..." 

 

그러더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스나의 뺨이 살짝 빨개졌다. 

 

"흔들의자의 오더메이드를 부탁하고 싶은데 말이지." 

 

"헷?" 

 

나는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왜냐면 지금 나와 아스나가 서로 앉아있는 게 바로 흔들의자이기 때문이다. NPC가 만든 기성품이긴 하지만, 앉아 있는 느낌이 그렇게 나쁜것도 아니다. 

 

"가, 갑자기 왜 또 그런." 

 

"그게..." 

 

커피컵을 사이드 테이블에 놓고 일어서더니, 아장아장 걸어온 아스나가 갑자기 내 무릎에 앉았다. 당황한 나머지 나도 컵을 내려두고, 오른손으로 아스나의 등을 받쳤다. 

 

"봐봐. 이 의자로는 둘이 앉으려면 내가 키리토군한테 완전히 올라타야 되잖아?" 

 

"으, 응. 올라타게 되지." 

 

"면적이 좀 더 넓으면, 둘이 나란히 앉을 수 있겠지?" 

 

"으, 으응. 나란히." 

 

"그리고, 등받이의 각도가 좀 더 뒤로 완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으, 응. 그럴지도." 

 

대답을 하면서 슬슬 왼손도 아스나한테 뻗으려고 했으나, 아스나는 '떽' 하면서 이쪽을 가볍게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더니 들뜬것처럼 허겁지겁 윈도우를 열엇다. 

 

"그럼 나, 아르고씨한테 의뢰 메세지 보내둘게. 마호클씨를 발견하면 내일 같이 보러가자?"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목공 장인이라면, 낚싯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실세계의 낚시라면 <강태공은 낚싯대를 고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인크라드에서는 도구의 질이 결과로 이어진다. 낚시 스킬은 숙련도를 올리는 게 답답하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잡히는 편이 수행에 재미있을 것이다.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리는 아스나의 진지한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분명, 아직도 해야하는 일, 재미있는 일들은 잔뜩 있다. '앞으로 며칠뒤면 끝나버린다' 같은 생각은 일절 하지 말고, 매일매일을 전력으로 보낼것이다. 이 대원칙은 최전선에 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열어놓은 윈도우로 시선을 옮겨서, 양손검 스킬이 설정되어 있는 슬롯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나타난 서브 메뉴에서 스킬 삭제를 선택. 실행하면 숙련도가 제로가 된다는 경고문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 많이 써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OK 버튼을 누르자, 조금 쓸쓸한 듯한 효과음이 나더니, 슬롯이 비워졌다. 

 

 

 

다음날 2024년 10월 26일 

아침식사를 마친 나와 아스나는 22층 주거구의 전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더욱 아래층에 있는 아인크라드 3층으로 내려갔다. 

주거구인 줌프트는 도깨비처럼 생긴 거대한 세 그루의 바오밥나무의 속을 파내서 빌딩처럼 만든 도시이다. 전이문에서 빠져나오자 아스나는 다부지게 생긴 거목을 올려다보며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그리운걸." 

 

"그러게..." 

 

우리 둘은 나란히 선채로 잠시 예전 추억을 떠올렸다. 

먼저 말을 내뱉은 사람은 이번에도 아스나였다. 

 

"자, 이제 가자. 마호클씨의 공방이 있는 곳은... 저 나무구나." 

 

어느샌가 손을 맞잡은 우리 두 사람은 남동쪽의 바오밥나무를 목표로 삼고 걸어갔다. 

정보상 아르고는, 목공장인 마호클이 어디에 사는지에 대한 정보를 하룻밤만에 알아내 알려주었다. 스킬을 완전 습득레벨까지 올렸기 때문에, 상층에 계속 가게를 열고 있을 줄 알았는데, 3층에 거주한다고 말했을 때는 놀랐었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공예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고급 목재이다. 아인크라드의 3층의 테마는 <숲>이고, 하층인만큼 플로어 면적도 광대하다. 게다가 지금 이 시기에는 찾아오는 플레이어의 수도 적기 때문에, 고급 목재를 두고 동업자와 다투는 일도 별로 없을것이다. 

한산하다 - 기보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전이문 광장을 가로질러서 바오밥나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이용해 3층까지 올라갔다. 원형통로를 돌아 들어가자 예의 공방이 있었다. 

작은 문 옆에 있는 한 개의 작은 간판. 그 간판에는 [Mahokl`s atelier(*마호클의 아틀리에*)]라는 글자가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무슨 가게인지 전혀 모를 것 같아......" 

 

내 의견에 아스나도 찬성하긴 했지만, 이름을 보면 틀림 없을 것이다. 

문에 다가가서 노크를 해봤지만 대답이 없어서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그 순간, 그릉그릉그릉!거리는 굉음이 터져나와서 무심코 몸을 뒤로 뺐다. 

공방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넓었 - 으나, 공방 곳곳에 거대한 통나무나 네모난 각재, 판재등이 쌓여있었다. 때문에 마치 미로처럼 되어있어서 공방 전체를 파악 할 수 없었다. 탕탕 거리는 소리는 방의 중앙 부근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산처럼 쌓인 목재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겨우겨우 도착한 우리들이 본 것은 - 직경 1미터, 길이 3미터나 되는 통나무를 마치 양손검처럼 보이는 거대한 톱을 사용해 세로로 두 동강 내려고 하는 몸집이 매우 작은 플레이어였다. 

키는 <생쥐> 아르고보다 2, 3센치 정도 작아보였다. 거의 아이처럼 보이는 아바타가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자기 자신보다도 큰 톱을 솜씨좋게 움직여서 자신의 두 배 이상이나 되어보이는 통나무를 양단하는 광경은, 일종의 예술적인 퍼포먼스처럼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릉거리는 소리의 근원인 톱은, 거대한 통나무를 거침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더니 바닥까지 도달한 그 순간, 번쩍거리며 눈부시게 빛났다. 라이트 이펙트 안에서 통나무는 여러장의 판재로 변했다. 생각해보니 목공장인을 직접 보는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브젝트의 변화가 완료 된 순간, 나와 아스나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나란히 박수를 쳤다. 

오른쪽 어깨에 톱을 올리고 몸을 뒤로 휙 돌린 작은 플레이어는, 옛날 만화처럼 소용돌이 무늬가 새겨진 둥근 안경을 반짝 빛내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용무이신가?" 

 

갑자기 시대극같은 어조로 물어보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차라리 "웬놈이냐!"라고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수상한 사람이 아니오!" 라는 정해진 문구로 대답을 할텐데,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동안, 아스나가 고도의 대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발휘해서 시원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업중에 실례했습니다. 목공세공사인 마호클씨 맞으시죠? 저는 아스나, 이쪽은 키리토라고 합니다. 가구제작을 부탁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실례를 범했습니다." 

 

"흐-음, 손님인겐가." 

 

마호클은, 방금 거대한 통나무를 두 동강낸 초대형 톱을 선반에 훌쩍 올려두고 억센 작업화를 거칠게 울리면서 다가왔다. 

바로 눈 앞까지 왔는데도 둥근 안경의 소용돌이 텍스쳐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았다. 땋은 머리의 색깔은 밝은 갈색이고, 파란색 데님 앞치마를 입었으며, 양 손에는 두꺼운 가죽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나와 아스나의 친구이자 대장장이인 리즈벳이 입고 있는 메이드풍 에이프런 드레스와는 정취가 다른, 그야말로 장인클라스! 같은 차림이다. 

빙글빙글 소용돌이 무늬 안경을 낀 채 나와 아스나를 지그시 검사한 마호클은 양 손을 허리에 대고 새 질문을 입에 담았다. 

 

"어떻게 이 가게를 찾은겐가?" 

 

"정보상씨한테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아스나가 정직하게 대답하자, 마호클은 그것만으로 정보의 출처를 알아챈건지 '흥'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생쥐>녀석 말입니까." 

 

"...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꾸벅 고개를 숙인 아스나에게, 목공세공사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간판도 내놓았고, 그저... 음-, 애초에 제 이름은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들은게 아니라, NPC샵에서 마호클씨가 만든 테이블을 봤습니다. 너무 멋있어서, 이걸 만든 장인에게 주문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테이블을?" 

 

아스나의 대답을 들은 마호클은, 안경 위쪽으로 보이는 눈썹을 꾸욱 찡그렸다. 

 

"거 이상하군요, 위탁상품은 전부 회수했을텐데... 어디에 있는 샵이죠?" 

 

"22층에 있는 마을인 코랄에서요." 

 

"코랄............ 아, 아-" 

 

마호클은 오른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탁하고 내려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었네요, 그런 마을이. 그러고보니 그곳의 NPC가구점에도 맡겨뒀었는데... 완전히 잊어버렸네요." 

 

마침내 물음표를 머리에 드러낸 아스나 대신, 내가 지금까지의 대화에서 생긴 위화감을 입에 담았다. 

 

"....그, 아까부터 같이 듣고 있었는데, 왠지 몸을 숨기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제 기분탓인가요?" 

 

"기분탓이 아닙니다."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더니, 목공세공사는 장갑을 낀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일단 물어보겠습니다만, 제게 주문하고 싶은 물건이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아스나가 대답했다. 

 

"흔들의자입니다!" 

 

"...그렇군요." 

 

마호클은, 세웠던 검지손가락을 접더니 공방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럼, 두 분은 손님이시군요. 차라도 내올테니, 이쪽으로 오시죠." 

 

 

 

공방의 안쪽에는 알파벳 를 닮은 이상한 모양의 테이블과, 팔걸이가 있는 의자가 네 개 놓여져 있어서 아스나와 나란히 앉았다. 판이 노출되었는데도 딱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의자의 앉는 면에 놀랐다. 

마찬가지로 나무로 만들어진 머그컵을 테이블에 세개 늘어놓은 마호클은, 옆에 있는 난로 위에 놓여진 주전자를 - 당연히 이건 금속이었다 - 들어올려서 머그컵에 끓인 물을 졸졸 따랐다. 

 

"드시죠." 

 

...라고 말해도, 이건 차가 아니라 그냥 끓인 물 이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예의 바르게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잘 마시겠습니다" 라고 아스나와 입을 맞추며 말하고 컵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자 놀랍게도 농후한 단 맛과 고소함, 청량감 있는 맛이 입 안에서 넓게 퍼져나가서 무심코 아스나와 눈이 마주쳤다. 

소용돌이 안경을 번쩍이며 씩 웃은 마호클은, 자신도 컵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말했다. 

 

"이 머그컵은, S클래스의 향나무로 만들어서, 끓인 물을 붓는것만으로도 저절로 차가 됩니다." 

 

"헤에에에~.... 목공 스킬도 꽤나 심오한데요..." 

 

내가 몹시 감탄하고 있으니, 아스나가 테이블의 표면을 어루만지더니 말을 이었다. 

 

"이 테이블과 의자도, 마호클씨가 만드신건가요?" 

 

"물론이죠." 

 

"앉는 느낌, 손에 느껴지는 촉감, 외형까지 모두 최고에요. ...이 정도나 되는 품질을 가진 물건을 만들 수 있는데, 왜 몸을 숨기시려는 거죠...?" 

 

아스나가 묻자, 마호클은 차를 한모금 더 마신 뒤, 아스나의 질문에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아스나쨩과 키리토군 이랬죠? 두 분은 권내에서만 지내는 사람들? 그게 아니면 바깥에도 나가는 사람들?" 

 

평소 많이 들어본 적 없는 질문에, 다시 파트너와 시선을 나눴다. 완전 무장을 하고 있으면 바깥에도 나가는 쪽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나와 아스나는 쇠 부품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 볼 수 없을만큼 캐주얼한 복장이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짧게 대답했다. 

 

"일단은, 권외에도 나가는 사람, 이 되려나요..." 

 

"뭐, 그야 그렇겠죠. <생쥐>와 교류가 있을 정도에다가, 제가 만든 테이블의 가격을 보고도 주문하러 오셨으니까요." 

 

마호클은 씨익하고 입가를 올렸지만, 이내 그 미소를 지운 채 안경 위로 드러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흐~~~음'하며 신음했지만, 이윽고 볼륨을 낮춘 목소리로 새로운 질문을 입에 담았다. 

 

"그럼 <콤퍼지션(*composition*)>이란걸 알고 있습니까?" 

 

뜻밖의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어..." 

 

콤퍼지션, 혹은 콤퍼짓효과라고 하는것은, 여러개의 스킬에서 발생하는 <조합효과>를 가리키는 SAO내의 용어이다. 내가 습득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자면, 한손검 스킬과 체술 스킬이 모두 일정 수치를 넘어가면 소드스킬 <메테오브레이크>를 발동할 수 있다. 이는 전투계열 스킬뿐만 아니라, <장병무기제작스킬>과 <한손무기제작스킬>을 올릴 경우 관통(피어스)/참격(슬래쉬)의 양속성을 지닌 무기인 미늘창(핼버드)을 만들 수 있고, <요리>스킬과 <조합>스킬을 올리면 약효가 있거나, 반대로 독성을 지닌 음식을 만들수 있다던가 하는 등 생산계열 스킬에도 콤퍼짓효과가 많이 존재한다. 

데스게임 초창기 시절에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콤퍼지션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찾아낸 조합을 숨겨두기도 했지만 시작한지 약 2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는 갖가지 조합들이 발견되어 정보상에게서 일람표를 구매할 수도 있다. 즉, 이제와서 비밀로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목공세공사의 심각해 보이는 태도에 약간 위화감을 가졌지만, 나는 이야기가 더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호클은 머그컵 안에 든 차를 빙빙 돌리더니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콤퍼지션 때문에, 저는 가게 행방을 감추려 한 겁니다." 

 

"....그게, 무슨...?" 

 

"음~~~......" 

 

더 많은 정보를 말할지 말지를 고민하는건지, 마호클은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고개를 들고, 소용돌이 모양 렌즈 너머로 나와 아스나를 차분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스스로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 말씀, 믿겠습니다. ......저는 저번달에, 새로운 콤퍼지션을 발견했습니다." 

 

"헤엣!" 

 

이 말에 진심으로 놀란 나는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이제는 모두 발견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목공세공사는 인원이 적으니까요. 현 시점에서 <목공> 스킬을 완전습득(컴플리트)한 플레이어는, 다섯 명 정도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흐음." 

 

"그 다섯 명 중에서 <목공> 스킬 외에 <재봉>스킬을 어느정도 올린 사람은 저 외에는 한명 뿐." 

 

"흐음, 흐음." 

 

"그리고, <장병무기제작>도 올린건 저뿐이죠." 

 

"흐음, 흐음."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느 나를 대신해서 아스나가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 말인 즉, 마호클 씨가 새로 발견한 콤퍼지션은, <목공>, <재봉>, <장병무기제작>의 세 가지 스킬로 인한 복합효과(콤퍼지션)... 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가죽장갑을 착용한 양손으로 짝짝 박수를 치고 마호클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장병무기는 목재를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가구제작에 사용하는 재료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올려보았습니다. 만든 무기들을 NPC 무기점에 팔아봤었는데 적당히 팔리긴 하더군요. 하지만 무기 제작을 본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는건 가구였으니까요." 

 

그것은, 목공스킬을 완전습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몬스터와 싸우다보면 자연스레 올라가는 전투계열 스킬과 달리, 생산계열 스킬은 오로지 지루한 수행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좋아하지 않는데 완전습득까지 쉽사리 갈 만한게 아닌 것이다. 

 

"재봉스킬도, 침대나 소파를 만드는데 필요해서 올렸을 뿐입니다. 생산 윈도우에 새로운 콤퍼지션이 표시된 사실을 발견한 건 재봉 스킬의 숙련도가 900, 장병무기제작이 800을 갓 넘었을 때입니다." 

 

그 말에 나는 휘익 하고 가벼운 휘파람을 불었다. 생산계열 스킬 하나를 끝까지 올리는 것도 힘든데, 전혀 다른 계통의 스킬 세 개의 숙련도가 각각 1000, 900, 800이라는 것은 굉장한 사실이다. 거기까지 도달한 사람이 마호클 한 명 뿐이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니, 그녀가 발견했다는 콤퍼지션이 어떤 것인지 갑자기 흥미가 솟았다. 목공과 재봉의 콤퍼지션 생산물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거기에 장병무기제작이 더해진다면 대체 뭐가 나오는 걸까. 대걸레? 아니면 코이노보리? 

테이블 너머로 몸을 쑥 내밀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 콤퍼지션 이라는게...?" 

 

마호클의 대답은, 나와 아스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발리스타." 

 

"헤? ...커, 커피장인인가 뭔가 하는 그거?" (*발리스타랑 바리스타는 카타카나 표기 - バリスタ - 가 같습니다*) 

 

"일본어로 말하자면, <노포>입니다." 

 

"노포.... 라면.... 에, 에에에에에!?" 

 

경악하며 몸을 뒤로 젖히는 오른쪽 소매를 아스나가 잡아 끌어당겼다. 

 

"저, 키리토군, 노포라는게 뭐야?" 

 

"노, 노포라는건... 고정식에 초거대한 석궁. 그러니까 화약을 안 쓰는 대포같은거야." 

 

".......에, 에에에에에에!?" 

 

라고 이번에는 아스나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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