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인(小作人)의 딸 - 박영준
소작인(小作人)의 딸
- 박영준
풀진(津)에 손가락이 까매지도록
김매고 돌아와
컴컴한 부엌을 더듬으며
독밑 바닥쌀을 박박 긁는 소작인의 딸인 이 몸은
저녁이나 먹어야 이 밤을 잘 수 있겠기에
보리 훑으러 간 아버지를 위해
이 저녁도
보리죽을 쑤고 있습니다.
뒷집 큰마당에 간 아버지와 오라버니
큰 집에 반작(半作) 떼어주고
나머지로 꾸어먹은 보리 다 물어주고
보리알 얼마나 찾아오려나
햇보리 났으니
얼마동안이라도 맘놓고 살아야 하겠건만
먹을 것 없고 쌀끝이조차 없는 이 집을
내 이 겨울 어찌 떠나가리
반오십(半五十) 넘도록 장가 못든 오라버니
솥 긁으라 버려두고
나 어린 이 몸이 그 시집을 어이 간단 말가
그래도 아버지 빚 갚으러
이 몸을 팔았다니
안 가지도 못할 것을
어머니나 살았다면
집떠나 돈 벌어서 몸값 묵고 편히 살 것을
어머니조차 없는 집이니
시집갈 날만 가까워 오는구나
빨래조차 할 이 없는
홀아버지 남겨두고
이 몸이 어찌 떠난단 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