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단팥빵
전쟁과 단팥빵
우리가 만약 오늘 빵집에 간다면, 당신은 무슨 빵을 사겠는가? 상당히 빵의 종류가 다양해진 지금은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빵이란 단팥빵, 앙금빵이 빵집에서 사오는 거의 대부분이었다.(나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우리는 우리가 먹는 빵을 미국이나 서양에서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럼 대체 단팥빵, 앙금빵은 어디서 시작해 우리나라의 국민빵으로 자리잡은 것일까? 오늘은 그 기원을 알아보도록 하자.
예상한 분들도 많겠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현지화된 서양음식은 일본에서 먼저 제작되어 우리나라에 스며든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요새 도라야끼나 일본식 빵의 유입으로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단팥빵이 일본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앙금이 들어간 동양식 빵의 시작이 어딘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특히 단팥빵이 전쟁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대중화된 음식이라는 것은 더더욱 모른다. 우리 근대 음식 문화의 상당부분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니 상당히 껄끄럽긴 하지만, 기원을 밝히는 것은 사실과 관련된 부분이니 제대로 한 번 알아보는 것도 재밌고 유익할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입튀어나오는 건 유전인 듯-
일본의 메이지유신(1868) 이후로 일본은 급격한 서양화의 길에 접어든다. 당시 일본군도 당연히 서양화, 즉 근대화에 착수하기 시작했는데, 군대의 식사에 관련된 부분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이미 일본은 1840년대부터 군용 식량으로 이용하기 위해, 빵에 대해 심각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서양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아편전쟁때부터 일본은 군대를 근대화 시켜야될 필요성을 이미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특히, 병사들의 식량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일본군의 군용식량의 서양의 조롱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봉건 사회도 아닌 이미 근대의 한중간에서 전투 중에 밥짓겠다고 불을 피운다는 것은 내 위치가 바로 적에게 탄로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주먹밥을 싸서 돌아다니자니 휴대하기도 쉽지 않았고, 여름에는 쉬어버리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 씹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막부는 군용 식량으로 빵을 이용하기 위해 기술자를 지원하면서 빵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결국 1842년 에가와라는 기술자가 처음으로 일본식 빵과 반죽을 구울 수 있는 오븐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최초의 단팥빵 제과점 광고(기무라제과점)-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식 빵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는가? 바게뜨처럼 딱딱한 빵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에가와가 처음 납품한 빵은 딱딱하고 바삭한 형태의 바게뜨였는데,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밥에 입이 길들여져 있던, 일본군에게 빵은 입맛에 맞지 않는 서양 문물일 뿐이었다. 결국 일본은 이 빵에 대한 개량에 착수한다. 그러던 중에 민간에서 단팥빵이 개발되는데, 빵에다가 효모를 넣지않고 일본의 주정을 넣어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빵을 부드럽고 쫀득하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된 것이었다. 또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팥앙금을 소로 넣어 찌지 않고 서양처럼 구워내어 일본군의 입맛에 어느 정도 맞추게 된다. 덕분에 1877년 일본의 마지막 내전인 세이난 전쟁에서 전투식량으로 군에 납품되기 시작한다.
-세이난 전쟁이 모티브인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1877년 3월,세이난 전쟁.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관군과 사이고 다카모리의 반군이 사투를 벌인다. 3월임에도 수시로 큰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흘간 벌어진 전투에서 사무라이 반군은 비 때문에 제때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굶주린 채 싸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관군은 민간에서 만들어져 납품된 단팥빵을 받았기에 무리없이 싸울 수 있었다. 당시 단팥빵의 원조인 기무라 제과점을 비롯한 3개 제과점에게 납품 요청한 단팥빵의 무게만 봐도 23만 7천근에 달하니 얼마나 많은 관군이 이 단팥빵을 접했는지는 말을 안해도 잘 알 것 같다.
-단팥빵이 시작된 기무라제과점-
많은 관군들이 전쟁에서 단팥빵을 먹게 되니 당연히 그 맛은 전국으로 퍼지는 법, 단팥빵은 전국적인 음식으로 일본에 자리잡는다. 그 이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한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이 넘어와 단팥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나라 단팥빵, 앙금빵.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앙금빵인 호두과자, 국화빵도 이러한 일본빵의 변형이라 하겠다. 일본어로 팥소를 ‘あんこ(앙코)’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팥소를 팥앙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문화의 전래과정에서 남은 잔재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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