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여행 - 박얼서
여긴 푸른 섬, 하늘도 물빛 바다다
바다도 경계도 없어진 하늘이다
이런 시공과 마주쳐 본 사람은 안다
더 이상 정복할 미지는 없다
난 지금 외섬 꼭대기에 뛰어올라
아직도 못 만난 이름들을 불러보지만
끝없이 펼쳐진 내 앞의 야성들
체온도 없는 열정일 뿐이다
다가서면 아니 될 신기루들
오늘 문득, 발길에 통증을 느낀 이곳
가던 길 멈추고 쭈그려 앉은 섬봉
세월 먼길을 걸어온 저물녘이다
해원 저 끝머리에서 서성거리는
노을 진 무인도 섬들의 합창소린
이승을 떠나보내는 곡소리였다
오늘을 묻으러 가는 꽃상여였다
그 서러움을 훔쳐버린 날이다
흐느낌까지 들어버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