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엉큼한 발상 하나 - 박얼서
책 진열대는 서점 안의 노점상이었다
그날따라 불쑥 튀는
낯선 외침 하나가
내 눈길을 확 잡아챘다
'이것이 XX털이다'
시인이 아니었다 해도
저저 'XX털'
그 야한 대목 앞에선
그대도
은근했으리
XX는 보나마나 털의 주인공이겠다
애써 억누른 떨림으로
무릇 긴장했던지
아랫도리가 흘러내려
'이것이 X지털이다'
겨우 겉바지 하나 벗어 놓은 채로
더 궁금증만 키워 놓았다
신비감만 늘린 셈이다
왜 갑자기 숨이 차오르는지
동공이 두근거린다
아주 먼 시간의 갈피 속으로
내달려온 숨차오름 그 한복판에 서서
두 눈을 꼬옥 감는다
수줍음을 알아버린 사춘기 에덴이여!
뜨거운 포옹의 성지 울창한 원시림이여!
꼭꼭 숨겨진 밀림 은밀한 처소여!
잠시 생각을 덮는다
아무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얼핏 오해를 줄이려는 마음에
주위를 휙~ 하니 훔쳐보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터질 만큼 불순해진 내 상상력을
아무도 눈치채질 못했다는
확신이 들자
대체 그 궁금증의 비밀
어차피 밝혀질 그 성별(性別)을
자신있게 열어젖혔다
그런데 차마 그
최악이라 여겼던 돼지털?도 아닌
디지털!이었다니
여기서 내 엉큼한 발상 하나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내가 내게 들키고 말았다
요 잡것도 못되는 웬 엉뚱한 외래종?
저 요상한 가림막에 빠져들어
그런 내내 설렘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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