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에서 - 유치환
달아 나오듯 하여
모처럼 타보는 기차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새에 자리 잡고 앉으면
이게 마음 편안함이여
의리니 애정이니
그 습(濕)하고 거미줄 같은 속에 묻히어
나는 이렇게 살아 나왔던가
기름대 저린 ‘유 치환’이
이름마저 헌 벙거지처럼 벗어 팽가치고
나는 어느 항구의 뒷골목으로 가서
고향도 없는 한 인족(人足)이 되자
하여 명절날이나 되거든
인조 조끼나 하나 사 입고
제법 먼 고향을 생각하자
모처럼 만에 타보는 기차
아무도 아는 이 없는 틈에 자리 잡고
홀로 차창에 붙어 앉으면
내만의 생각의 즐거운 외로움에
이 길이 마지막 시베리아로 가는 길이라도
나는 하나도 슬퍼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