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인생, 영화 "걸어도 걸어도"
평론가 이동진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중 최고라 평가했고 저 또한 동일 감독의 작품에서 이 보다 더한 맛을 느끼지 못한 영화, 걸어도 걸어도 입니다.
일본 어디엔가 있을법한 가족들의 인생의 한조각을 잘라내어 보여주는 듯한 걸어도 걸어도는,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동안 느긋하게 그들의 이틀간을 보여줍니다.
큰아들, 준페이의 10년째 되는 기일에 맞추어 모인 가족들은 여느 가족들처럼 화목해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다 각자가 서있는 입장과 갖고 있는 상처들때문에 조금씩 삐그덕거리기 시작합니다.
큰아들 준페이는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사랑받는 자식이었지만,
그에 반해 둘째아들 료타는 이것저것 자기가 하고싶은것들을 하며 사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자식입니다.
아버지로써 큰아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큰데다가 본인의 직업인 의사를 아들 중 한사람이 이어가기를 바랬던 아버지와
애딸린 과부와 결혼한 료타가 내심 탐탁찮은 어머니,
더군다나 료타도 또한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고싶어하던 시절도 있기 때문에 료타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애가 없는게 나았지. 아이 딸린 과부는 재혼하기도 힘드니까."
(아이 딸린 과부와 재혼한 료타와 장본인 유카리 앞에서..)
"하필이면 고른게 중고품이라니..."
"그런 말은 좀 심했어요."
"게다가 사별은 죽은 남편과 비교당해서 힘들어, 이혼이 낫지 이혼은 싫어서 헤어진 거니까"
"가벼운 말투로 무서운 소리하네요 엄마는."
큰아들 준페이는 10년전 바닷가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가 물에 빠져서 죽고, 구하려고 했던 어린아이만 살아남았습니다.
◀준페이의 의해 생명을 구해진 아이, 요시오
준페이의 기일인 만큼, 생명의 은인인 준페이의 집에 왔지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아버지와
어디까지나 살갑게 맞아주지만 말에 가시가 있는 어머니때문에 이 친구도 가시방석입니다.
나중에 료타는 요시오가 너무 힘들어하는것 같아서 어머니에게 더이상 부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냐고 묻지만 어머니는
"불편해 하라고 부르는거야. 10년정도로 잊어버리면 곤란해. 그 아이 때문에 준페이가 죽은거니까."
"미워할 대상이 없는만큼 괴로움도 더한거야. 그러니까 그 아이도 1년에 한번쯤 아픈 기억을 준다고 해도 벌은 안받겠지?"
▲집안에 들어온 나비를 보며 큰아들 준페이라며 죽이지 않고 잡으려 하는 어머니
료타는 이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료타와 유카리 부부는 분명 가족들 다같이 묵고 간다고 했음에도
료타의 것만 준비해둔 세면도구
딸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를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며 서운함을 표하기도 합니다.
료타와 아버지는 사이좋게 집을 나서서 산책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들 간의 간격은 줄어들줄은 모릅니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족"이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같은 느낌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명절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각자의 직업, 학력, 정치적 스탠스,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설전을 벌이다가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 모두가 알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다시한번 모여서 화목한 척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족이란 명목만으로는 서로간의 간격을 좁히기 힘듭니다. "있을때 잘해" 참 흔한 말이지만 결국 실천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킹무갓키)
결국 영화에서는 어긋난 마음을 만회하지 못한체 지나가버렸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가슴속에 씁쓸하게 남아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