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귀의 노래 - 유치환
내 오늘 병든 즘생처럼
치운 십이월의 벌판으로 호올로 나온 뜻은
스스로 비노하야 갈 곳 없고
나의 심사를 뉘게도 말하지 않으려 함이로다
삭풍에 늠렬한 하늘 아래
가마귀떼 날러 앉은 벌은 내버린 나누어
대지는 얼고
초목은 죽고
온 것은 한번 가고 다시 돌아올 법도 않도다
그들은 모다 뚜쟁이처럼 진실을 사랑하지 않고
내 또한 그 거리에서 살어
오욕을 팔어 인색의 돈을 버리려 하거늘
아아 내 어디메 이 비루한 인생을 육시하료
증오하야 해도 나오지 않고
날새마자 질타하듯 치웁고 흐리건만
그 거리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노니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가마귀 모양
이대로 황망한 벌 끝에 남루히 얼어붙으려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