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무척이나 더웠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방이 너무 더워서 잠들 수 없던 밤,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놔서인지 시원한 바람에 어느새 눈이 잠겼습니다.
오랜만에 열대야에 시달리지 않고 잘 수 있었는데,
눈에 들자마자 어디선가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이 저절로 떠졌습니다.
눈을 뜨자 제 눈에 들어온 건,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아주머니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달빛에 비친 낯선 얼굴에 온 몸이 얼어붙어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절 쏘아보는 아주머니 눈빛에 저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신이 괜히 나타나는 게 아닐 거야. 분명 사연이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아주머니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거참.
"아주머니,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으세요?"
용기를 내어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는데,
아주머니는 절 계속 쳐다보다가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아주머니의 혼령이 사라져서
저는 다시 잠을 정했고 혼령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우연히 친구 중에서 영감이 강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들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았지만,
평소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걸 본다는 그 친구라면
뭔가 이야기를 해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들은 (영감있는) 친구는 절 굉장히 나무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혼령한테 함부로 말을 걸면 안 돼! 혼령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나 시험해보는 건데,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한테는 직접 들어가 버려!"
즉, 저는 빙의 될 뻔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는 혼령을 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라도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