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좆두 vs 고대 축신
아르투르의 1329골은 FIFA에 의해 인정받은 기록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록의 신빙성 그리고 공식 경기의 인정범위[11]가 다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그 시절의 레전드들이 골을 경기당 한 골씩 넣는 사람들이 뒤져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계로 어쩌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르투르는 그 시절의 축구 선수 중 골로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사람이며 그와 비슷한 기록을 가진 선수조차도 역대 축구역사를 뒤져봐도 펠레나 요제프 비찬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트라이커로서 갖춰야할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한다. 몸이 마르고 빨라서 몸싸움을 하기보다는 몸싸움을 피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용감했고 빠른 스피드와 양발로 처리하는 정확하고도 강력한 슈팅으로 수많은 골을 넣었다고 한다. 또한 페널티 킥도 잘 차서 실축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100m를 10초대에 끊는[17] 엄청난 준족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빠른 발과 정확한 양발 슈팅[18]으로 수많은 골을 넣었고, 골 기록에 있어서는 정말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즉 정리하자면 빠른 발과 정확하다 못해 치명적인 양발 슈팅으로 돌파 후 어느 각도에서든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였다. 훈련 시간에 묘기를 부렸다는 점을 보면 탁월한 드리블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단한 기록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는 선수가 되었다. 판단은 축구 팬 개인의 몫. 어차피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선수들은 영상도 거의 남지 않았기에 비교나 평가에 있어서 그냥 논외로 두는 편이다.
1000골 돌파 이후 같이 오스트리아에서 뛰었던 동료 프란츠 빈더는 '그런 식이라면 내 동료 비찬은 5000골은 넣었을 거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기자가 비찬에게 그 내용을 인터뷰했는데, 정작 비찬은 오히려 '펠레의 다섯 배만큼 골을 넣었다면 그걸 누가 믿겠냐?'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RSSSF 등의 기록에서 펠레보다 골을 많이 넣었다고 나오기는 하지만, 비찬의 기록은 편차가 큰 편이다. RSSSF에서 나온 비찬의 기록은 918경기 출전 1468골인데, 이는 친선 경기로 분류되는 모든 경기를 합친 기록이고 공식 경기 기록은 800여 골 정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공식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
공격수로서 못하는게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드리블 기술과 창조성이 특히 뛰어났다고.. 당시 관중들은 신델라의 플레이뿐만 아니라 축구라는 게임 자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신델라의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한다.
그라운드의 모차르트[13]라는 별명과 더불어 그를 대표하는 별명으로는 종이 인간(Der Papierene)이 있다. 이는 몸싸움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몸의 움직임이 빨라서 마치 바람에 날리는 종이같이 몸싸움을 피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 추가로 63kg의 몸무게도 한 몫했다.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나 앙헬 디마리아과다.
스웨덴의 前 축구선수로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북유럽 축구 역사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플레이어 가운데 한 명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50년대 초중반 전 세계에 위세를 떨쳤던 전설의 팀 매직 마자르를 이끌었던 주장이다. 축구 역사상 최다 득점 4위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