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 서정주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光明)을
광화문 ―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층(上下兩層)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르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
아랫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玉)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城)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太古) 같고
문득 치켜든 머리 위에선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