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 이용악 시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
구름이 모여 골짝졸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 시의 서두 해설 : 시인 자신의 해설적 설명이 붙어 있는데, 먼 옛날 오랑캐(여진족)가 고려와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다. 윤관(尹瓘)의 여진정벌로 인해 장정들은 전쟁터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후에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머리를 깎은 탓에 세상사람들은 이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