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시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刹那)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감상 : 이 시는 부정적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즉 있어야 할 것이 ‘없음(無)’의 상태로 파 악된다. (당신, 임의 부재로 인함) 그러나 언젠가는 꼭 있어야 함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