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에 두고 온 쉼표 - 홍관희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본래의 내가 하도 그리워
낡은 기억의 나무계단을 삐그덕 찌그덕 오르내리다가
바람에 실려
슬로우시티라는 청산도를 구름 저어 다녀온 적이 있다
들도 바다도 사람들도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을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내리우며
길이 아님에도
흔쾌히 나를 통과하는 길이 되어 주었다
그 길을 따라
구불구불 그리운 나를 찾아 헤매다
나에게 돌아올 즈음
계절은 노랗게 무르익고 있었고
나는 비로소 나에게서 나를 놓아줄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놓아주자
길이 아님에도 기꺼이 길이 되어주던 것들이
발걸음마다 쉼표로 따라 붙었다
발걸음마다 따라붙던
쉼표 몇 개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나이테가 몇 겹은 더 늘어난 지금
쉼표도 나만큼 더 익었는 지
그 쉼표 만나러
나를 데리고 한 번 가봐야 쓰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