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랑향 분홍 풍선
골목이 시작되고, 골목 옆구리
파도 출렁대는 곳에 환한 창이 있다.
그 창에선 초저녁부터 김칫국 냄새가 번지고
가끔 웃음소리도 들리곤 한다. 그런데 빠져나온
웃음소리 하나가 창을 부풀게 한다.
자꾸만 부푸는 게 마치 커다란 분홍 풍선이다.
쪼그리고 앉아 그 풍선 잡고 있으니 내가 질질 끌려간다.
끌려가 감나무에 걸려 대롱대다
바다에 빠져 죽을 것 같아 안간힘으로 버티어 본다.
그러자, 갑자기 내 어머니가 나타나고 쓸쓸한 우리 집 식탁이 보인다.
식탁 너머 내 이른 귀가를 기도해 주던 상도교회 구역장님이 지나가고
복슬 강아지, 검은 고양이, 군고구마 아저씨도 지나가고……
지나가지 않아야 할 것들도 지나가고 있어
난 잡고 있던 풍선을 그만 놓아 버린다.
에구머니나, 분홍 풍선이란
잠자던 것들까지 깨워 띄우는 신기한 기구,
허름한 유리창에선 더욱 높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
찬 바람 불면 더욱 슬프게 펄럭이는 어선의 깃발
난 그 풍선을 잡고 먼 나라로 가고 싶다.
항구란 배만 타는 곳이 아니라 그런 풍선을 잡고
더 따뜻하고 아늑한 나라로 출발하는 것임을,
풍선에 바람이 빠져버리면
예서부터 흔들리는 귀환이 시작되는 곳임을
배운다, 마량항 부둣가에 고동처럼 붙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