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런에서 심도 있는 철학이 나오기 힘든 이유
철학을 논하면서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이트런의 철학에는 심도 있는 고찰이 없는겁니다.
철학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은 답이 없는겁니다. 기찻길의 딜레마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요. 그런데도 나이트런은 미리 답을 정해놓고 '이 답을 따라오지 않으면 나빠'라고 강요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건 철학이 아닙니다. 정말로 심도 있는 철학은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건 나빠. 그러니까 죽이면 안돼.
복수를 해도 선을 넘는건 나빠. 그러니까 넘으면 안돼.
이건 철학을 복잡하게 다루는게 아닙니다. 그냥 단편적으로 다루는거지요. 철학을 다루는건 '강요'가 아니라 '논의'여야 합니다. 나이트런은 이상을 그 방패막이로 삼아요.
이상을 제시하는데 이상을 '도달해야 할 목표지점' 내지 '방향'으로 제시하는게 아닙니다. '이 이상을 못따라오면 타락한거. 검게 물든거. 나쁜거. 그러니까 앤 마이어가 죽여도 좋은거.' 이런식으로 묘사하는게 문제지요.
이상이라는건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상'이라고 불리지요. 이상을 실현하는건 어렵고, 그렇기에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면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는건 더더욱 안좋습니다.
토발편부터 싹수가 있었습니다. '공공이 한 개인을 해쳐서 이익을 얻으려고 할떄, 개인이 그 공공을 파멸시키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주제.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도 다룬 주제이며, 이 주제만으로도 웹툰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심도 있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토발 편에서 생각보다 이 주제는 부각되지 않습니다. 왜? 반이 스스로 '내가 틀렸다'고 인정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작중 반 넬슨은 '국가가 나를 파멸시키려고 한다면, 내가 국가를 파멸시키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쁜놈이다. 하지만 나쁜짓인줄 알아도 감정이 시키므로 할것이다'라고, 스스로 철학적 논의를 하기를 포기해버리고 자신의 행위를 어린애 땡깡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반 넬슨이 "누구를 위한 국가냐. 누구를 위한 공공이냐. 그 공공에 나는 없고, 시온은 없다. 너희들만을 위한 공공을 왜 내가 배려해야 하는가. 너희가 우릴 배려한 적 없는데" 라고 말해야지만 철학적 논의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토발편에서 개인 vs 국가라는 대립구도는 시온의 자기희생적 성녀의 구도에 은근슬쩍 묻혀서 넘어가버리지요.
나이트런은 이런 식으로 철학적 주제에 있어 이상을 빌미삼아 간단명쾌하게 답을 내리고 그걸 강요합니다. '아 이전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발론 보내는거 나빠. 리아 너 타락. 딸이 죽어도 성인군자처럼 모두를 용서해야하는데, 그거 안하는 할배 너 그러면 안돼.' 이런식이 되버리는거지요.
철학은 불편해야합니다. 그런데 나이트런의 철학에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앤의 궤변만이 있지요.
아 글쎄 이게 이상이고 답이야! 이 이상을 못 따라오면 검게 물든거야! 선을 넘은거고! 타락한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