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게문학] 아버지 - 하편
" 숙모 "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절친한 친구인 사쿠라 씨를 어렸을때 부터 그렇게 불렀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무거운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나를 겁에 질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절대 말하지 못할 비밀을 지닌 사람처럼.
의료서적이 빼곡히 차있는 그녀의 사무실은 어렸을 때 부터 봐왔지만 참으로 숨막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란 존재는 더욱더 이방의 공기를 앗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내 입에서 던져질 질문이 그녀에게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나는 가볍게 웃어보일려고 애썼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웃는모습을 좋아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눈은 흔들렸다. 그녀는 사라다와 같이 감정에는 솔직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알아채기 쉬운 타입이었다. 굳이 아버지의 상태를 묻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대수롭지 않은 거였으면, 아니 아버지를 다시 일어설수 있게 했다면 언제나처럼 웃으며 걱정말라고 했을터였다.
" 미안하구나 보루토 "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온 , 강인했던 그녀의 두 팔이 희망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괜스래 그 모습에 나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기껏 유지한 평정심들 사이로 슬픔이 범람했다.
어머니는 아예 병원에서 살림을 차렸기 때문에 집에는 동생과 나만 있었다. 동생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바라기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집 분위기는 몇날몇일 동안이나 초상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뭔가 생기를 잃은 듯한 히마와리의 눈은 나까지 힘이 빠지게 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히마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어떻해 ? "
" ..뭘 ? "
" 아빠가... " 히마와리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할말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애가 뭘 말할려는지 충분히 알것 같았다. 동생은 아버지가 13번째 생일 선물로 준 할아버지의 수리검을 꽉 쥐고있었다.
" 걱정마, 어렸을 때 들었잖아? 아버지가 평생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던거 기억안나 ? "
나는 동생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왔다.제발 신이시여ㅡ,
그 때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비릿한 기분이 나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결국엔 받아들여야 할것이라면.
문을열자 내 유일한 스승이자 대부인 우치하 사스케 삼촌이 있었다. 그는 항상 그러했듯이 감정이 잘 보이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 준비를... 해야될거 같구나 "
하지만 표정과는 정반대로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정을 잃은 듯한 그의 감정을 처음 들었다는 것도 자각하기전에 히마와리가 미친듯이 현관을 뛰쳐나갔다. 입을 열어 동생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토기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가는 길이 천릿 길인것만 같았다. 어쩌면 평생 그곳에 도착하지 않길 바랬다. 아니 아직 . 돌아가신건 아니잖아? 기적처럼 살아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일상으로 돌아가 호카게의 자리에 앉아 시카마루 씨와 웃으며 말하던 아버지가 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한 뒤 입맞춤하고 우리에게 ' 다녀왔어 ' 라고 말해줄 수도 있잖아?
호흡이 거칠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병실문을 열었다. 이미 병실안은 아버지의 동기들로 꽉 차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서둘러 기계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심장소리를 들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의 숨조차 멎어버린 것 같았다. 그 침묵속에서 아버지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두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꽉 잡은 어머니의 뒷모습은 심하게 떨리고있었고 그저 슬픔을 삼키는 침묵만이 이곳에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우시는 건 태어나서 처음봤다. 아버지의 관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어머니는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로 통곡하셨다. 히마와리는 더이상 울 기력이 없는건지 내 어깨에 간신히 기대고 있었다.사스케 삼촌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아버지의 관만 뚫어져라 쳐다 보고있었고 사쿠라 숙모는 오열하는 어머니를 끌어안고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 뭐라고 말 해야 할지 모르겠네.. "
팔에 붕대를 감은 사라다가 옆에서 말했다. 딱히 뭐라고 반문해야될지 몰라서 입을 닫았다. 사실은 밤새도록 울어대서 목이 잠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버지는 무뚝뚝한게 아니라 훌쩍 커버린 나를 대하기 어려워 했다는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버지에게서 ' 잘했다 ' 라는 그 한 마디가 너무도 듣고싶었다.미치도록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반대한 위험한 임무에도 자원 했었고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어쩌다 임무에서 심하게 다쳐오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내며 나를 다그쳤다. 심한날엔 내 따귀도 때렸지만 그럴때마다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작은 눈물방울을 보곤했다. 그만큼 끔찍히도 나를 생각해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것이다.
옆에서 히마와리가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이 퉁퉁 불어터질 정도로 울었는데도 아직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나보다.덕분에 괜스래 나도 눈물이 났다.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수긍해야한다는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사라다가 흘끔 눈치를 보더니 어디서 가져온건지 모를 손수건을 내밀었다. 뭔가 반대로된거 같지만 나는 고맙다는 말을하고 손수건을 받았다. 손수건엔 삐뚤삐뚤하게 ' 힘내 ' 라고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주체 할 수없을 만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 고마워 ' 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아버지가 죽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몸이 많이 약해졌던 어머니는 간신히 건강을 되찾는 중이었고 히마와리 역시 그랬다. 점차 아버지의 죽음에 다들 적응해가는 분위기였다. 이른 봄 날씨에 마당에 앉아 가족앨범을 보고있던 어머니에게 호카게가 될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때 호카게는 절대로 되지 않을거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가정에 소홀한것 같은 아버지가 미웠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싫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아버지처럼 호카게가 되고 싶었다. 모두에게 인정받아서, 그래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두 손을 부여잡곤 조그맣게 웃으며 ' 고맙구나 ' 라고 말하셨다.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기분좋은 오후였다. 담장 너머에서 사라다가 ' 임무야 ! ' 라고 소리쳤다.
어머니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선 문 밖을 나섰다. 굉장히 기분좋은 봄바람이 불어왔다.
하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