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그래서 여름을 좋아한다.
나는 아주 더운 7월 말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던 해는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지속되는 더위 탓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해였고,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뒤로하고 엄마의 비명과 고통 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우리 엄마는 그 살인적인 여름 더위 속에서도 나를 낳고 그렇게나 기뻤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의 어릴적 세상에 가장 큰 울타리는 우리 엄마였고 당연히 세상의 전부였다.
몇 해가 지난 어느 여름 날,
나는 엄마가 뿌려주는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냉장고에서 매실 주스를 꺼내 마시고 선풍기 앞에 앉아 잠시 TV를 보다
문득 엄마가 욕실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걱정이 되었다.
슬그머니 욕실 문을 열어보니 엄마는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 몰라 그냥 문을 닫고 못 본척 했다.
그 시절 철없는 아빠 때문에 매일 힘들어하던 엄마를 보고도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엄마가 왜 힘들어하는지 몰랐다.
사실 우리 엄마는 친구들의 엄마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를 낳을 적에는 아마 30대 중후반이였을 것 같다.
어느덧 내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가 성장하는 만큼 우리 엄마도 함께 나이 먹어간다는 것을 몰랐다.
친구들의 엄마는 젊고 예뻤지만 우리 엄마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여름 방학에 자식들을 마중 나오던 한껏 멋을 부린 젊고 예쁜 엄마들 속에
우리 엄마는 너무나 초라해보였고 창피한 마음에 모르는 척 했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나무라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셨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나도 우리 가정사에 대해서 얼추 알게 되었고,
능력 없고 게으른 아빠 때문에 늘 엄마가 고생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 무렵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겉잡을 수 없는 반항감을 표출하며 살았다.
가출을 일삼고 매번 엄마를 경찰서나 병원에서 만났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바르게 잡으려 노력하셨다.
늦게 가진 아이라 엄마는 내가 더 귀하고 소중했을 것이고,
본인이 부족한 탓에 내가 엇나간다고 생각하셨는지 무던히도 자책하였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조차 보기 싫어 죽어버리라는 말도 서슴치않게 했었다.
우리 집엔 아빠 때문에 생긴 빚이 많았고 아빠는 나 몰라라 했기에
엄마는 나와 동생을 먹여 살리며 집안을 이끄려고 참 애쓰셨지만
나는 애써 외면하며 더 좋은 집에서 태어나고 싶었다는 말로 엄마 가슴을 난도질 했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힘든 나날을 버티다
결국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게 되었고
난 아무것도 모른체 친구들과 지내다 동생의 연락을 받고 그 사실을 알았다.
정말 엄마가 죽는 줄 알았다.
천만다행이도 엄마는 긴 수술을 무사히 견디고 살아났지만
살아있는 동안 평생 약을 먹어야하고
또 다시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협을 당해 발작이 생기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의 어릴적, 세상에 가장 큰 울타리는 이제 없어진 것이다.
그 동안 애써 외면했던 엄마의 모습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어느 순간 내가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등학교 3학년,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빠르게 취업을 했다.
엄마를 생각하며 악착같이 이 악물고 돈을 벌었고
덕분에 까마득하던 빚도 다 갚은지 오래,
지금은 엄마가 사고 싶어하는 물건들도 사주고
엄마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들도 다 사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도 휴가를 받으면
내 생일에 맞춰서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능이버섯백숙에 장어구이를 먹으러 갈 생각이다.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그래서 여름을 좋아한다.
나는 아주 더운 7월 말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던 해는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지속되는 더위 탓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해였고,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뒤로하고 엄마의 비명과 고통 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우리 엄마는 그 살인적인 여름 더위 속에서도 나를 낳고 그렇게나 기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를 만나게 해준 여름이 너무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