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Requiescat in Pace (R.I.P) - 2. 알수가 없어 (태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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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 수가 없어
“이게 내 판결이다.”
아침부터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스아를 괴롭히던 사건 하나가 해결되었다.
내일은 중요한 행사가 있기에 다른 심판관들은 오늘만큼은 하던 일을 정리하고 쉬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 심판관들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사는 건강한 남, 여 대부분이 그렇다.
내일은 이 나라에서 이렇게 불리는 행사가 있는 날이다.
“뜻의 날인가….”
지스아가 오른손에 있는 사과를 한 줌 크게 깨물며 말했다.
왼손에는 싱싱한 채소가 갈색 봉투 안에 가득 담겨있다.
법의 심판관이 부하를 시키지 않고 어째서 직접 시장에 나와 장을 본다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오늘은 뭘 만들까”
그렇다. 지스아의 특기 중 하나가 요리이다.
요리에는 꽤나 자부심이 있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직접 장을 보러 나오고,
싱싱한 재료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지스아를 알아본 시장 사람들이 차례차례 인사를 건넨다.
“지스아! 오늘은 우리 가게에서 하나 사주지 그래?!”
“저번에 도와줘서 고마웠어!”
“새로 만든 요리인데 한번 먹어볼래?”
등등. 시장에서 만큼은 꽤나 친숙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지스아이다.
사람들이 말을 많이 건다고 해서 귀찮아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사람을 귀찮아했다면 법의 심판관 따위는 진작 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오, 이거 맛있는데요?”
지스아가 시장의 말 많은 아줌마 중 한명인, 헬리 아줌마가 새로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는 꽤나 놀란 듯이 말했다.
“정말로 아줌마가 만들었던 요리 중에는 가장 훌륭한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려. 아니 근데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 아무튼 이거 하나 싸 줄테니 가서 루디아랑 같이 먹게나.”
지스아가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지만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헬리 아줌마는 푸석푸석, 봉투에 요리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꽉 조여진 봉투를 지스아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일이 뜻의 날이니까 오늘 많이 먹어야한다!”
뜻의 날을 간략 적으로 설명하자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밝혀내는 날이다.
그 능력을 신의 뜻으로 삼아 예전부터 ‘뜻의 날’이란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능력은 사람마다 제 각각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라진 네 번째 심판관은 불의 능력, 적란운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심판관 전원은 그 능력이 모두 밝혀졌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러나 그 능력을 모두 전투에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능력이 없기도 하다.
(보통 나이 20살이 될 때까지 능력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겐 능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날부터인지 뜻의 날, 그 전날에 좋은 음식을 자식에게 해다 먹이면 다음날 좋은 능력이 나타난다는 괴소문이 있다.
이 소문 때문에 헬리 아줌마는 지스아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건네줬을 확률이 높다.
“고맙습니다. 헬리 아줌마. 잘 먹을께요.”
헬리 아줌마에게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양손에 장을 본 재료를 잔뜩 가지고, 다시 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작은 언덕을 넘고, 다리를 건너 다시 성으로 도착하니 경비병이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지스아가 왼손 봉투에 담겨 있던 사과하나를 경비병에게 던져주었다.
경비병은 날아오는 사과가 마치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라는 듯이 능숙하게 사과를 받아냈다.
성문 앞에 서서, 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스아가 고개를 휙 돌리고 경비병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아들 내일 처음으로 ‘뜻의 날’ 참석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흐음-”
지스아가 조금 생각하더니 아까 헬리 아줌마에게 받은 요리를 경비병에게 건넸다.
“이…이건?!”
“오늘만큼은 좋은 음식 먹여주세요.”
저녁의 일이 끝나고 밤이 되었다.
방으로 돌아온 지스아는 한 쪽에 놓아둔 봉투에 들어있던 음식을 덜어내고 식탁에 앉아 그 음식을 쳐다만 보기 시작했다.
“이 괴소문 때문에 내 좋은 식량들이 이 날 한 번에 날아갔다는 건 누구에게도 말 못하지.”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 식기구로 음식을 집더니 한 입 조심스럽게 먹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맛은 있네.’하고 양 팔로 힘껏 기지개 모양을 취하더니 이내 침대에 털썩 누우며 말한다.
“내일이야말로…”
한 쪽에선 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 한쪽에서는 누군가 노크도 안하고 방문을 들어오는 소리.
매일 마주하는 아침과 같다. 여자가 방문을 살짝 열자마자 말했다.
“아침이야. 일어…!”
일어나란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눈앞에 첫 번째가 몸을 단정히 한 채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특별한 검정색 옷을 입고 지스아는 이미 나갈 준비를 마쳤다.
“뜻의 날이니 만큼 어느 날과는 확연히 다르네? 오늘은 특히 더.”
“그냥 잠이 일찍 깨서 나갈 준비를 했을 뿐이야. 뜻의 날과는 별로 상관없어.”
“흐음-”하고 루디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도 밝혀지지 않는다면 벌써 6년째인가.’
뜻의 날의 능력을 밝혀내는 순서는 이렇다.
일단은 국가에 돈을 많이 바치는 귀족의 자식들이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첫 번째로 밝혀지기 위해 줄을 선다.
그 다음은 국가의 일을 맡아하는 사람들의 아이나 혹은 그 당사자이다.
(지스아가 어제 음식을 건넸던 경비병의 아들이 그런 경우이다.)
귀족, 국가의 일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 순서는 보통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오후 1시. 정해진 시간이 되자. 성 안에는 벌써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분비기 시작했다.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는 몰라도 멋있는 옷으로 한껏 치장한 귀족의 아이나,
누추한 옷차림으로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고 온 가나한 아이 등.
이 날이 아니면 보통 성 안에서 볼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성 안에 성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나타나 커다란 계단위에서 일제히 노래를 부르면, 그것이 시작의 신호이다.
성가 중간에 능력을 밝혀내는 신의 사자, 즉 사제가 중앙에서 나타나 아이들의 능력을 하나 씩 밝혀내기 시작한다.
(사제의 능력은 능력을 밝혀내는 능력이라 해야 옳다.)
“꿀꺽-”
성가의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 못지않게 긴장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첫 번째인 지스아이다.
떨고 있는 지스아에게 루디아가 등을 팍-치며 웃으며 말했다.
“잘 될 거야!”
“등, 아파-”
하나씩 소리가 들린다. 기뻐하는 사람의 소리, 슬퍼하는 사람의 소리, 안도하는 사람의 소리.
“해냈다! 능력이 있어!”
“아이고 우리 애기 장하다! 있을 줄 알았어!”라며 부모님 품에 안귀는 귀족의 아이가 있는 반면
“엄마…”
“괜찮아. 능력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리고 내년이 있잖니.”
아까 보았던 누추한 옷차림의 아이. 왠지 울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 아이 어머니의 등이 커보였던건 지스아의 착각이었을까.
시간은 흘러가고 하나 둘씩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한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지스아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서서히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성안엔 햇빛이 비추지 않아 그림자는 없었지만, 지스아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드디어 홀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떠나가고, 홀 안엔 지스아와 루디아, 성가를 불러주었던 여러 사람들, 그리고 사제만이 남았다.
첫 번째의 차례가 왔다.
지스아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커다란 홀 중앙 의자에 앉아있는 사제를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들이나, 사람들과는 다르게 성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에 일일이 능력을 밝혀내는 데에 성가는 부르지 않는다.)
격려의 메시지였을까.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벌써 6번째인가.’
‘매번 부탁하는 것도 죄송하네.’
‘제임스 아저씨 목소리가 좋아지셨는걸.’
‘루디아는 좀 돌아갔으면 하는데. 또 밝혀지지 않는다면…’
사제의 앞으로 끝까지 걸어간 후, 정중히 인사를 하고난 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왔는가.”
사제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사제님.”
지스아의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멀리서 바라보는 루디아도 두 손을 모아 그 광경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네.”
“예. 사제님.”
사제의 오른손에 반짝이는 빛이 스며들고 이내 지스아의 머리를 감쌌다.
성가를 불러주었던 사람들도, 그리고 능력을 밝혀내는 사제도,
한쪽에 숨어 바라보는 루디아도, 그리고 지스아 자신도 모두가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날따라 지스아의 머리를 감싸는 빛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고 루디아에게 들은 건 며칠 후의 이야기다.
밤이 되었다. 해는 이미 지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홀에는 한 명의 남자만이 서있었다.
그 모습이 어두워서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사제는 일을 마친 후 쉬기 시작했고 성가를 불러주었던 많은 사람들도 돌아간지가 오래였다.
그렇게 몇 분을 서 있은 후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끼익-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끼익- 쿵-
방문이 다시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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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읽어주시기만 해도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소설 연재하시는 분들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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