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제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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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나는 그 건물 3층으로 올라가 그 종이가 붙은 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누구 안 계세요?”
역시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돌렸다.
“딸칵-”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 사이로 조금씩 빛이 새어나왔다.
“끼이익-”
“계세요?”
“······누구야?”
깜짝 놀란 나는 목소리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쪽에는 놀란 기색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아, 실례하겠습니다! 저, 저는 저기 창문에 있는 종이를 좀 가져가려고······.”
“······종이?”
“네, 그 중요한 서류라······.”
근데 그 소녀는 나와 나이도 비슷해보였으나
존칭을 쓰는 나와 달리 아무 거리낌없이 반말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남은 이렇게 존칭 쓰는데 반말이라니, 교양이 없네.
하긴,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자, 여기.”
그 소녀는 창문에서 그 종이를 떼어내어 나에게 건네주었고,
볼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나가려 했으나 소녀의 한 마디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너, 혹시 나 본 적 없어?”
“네?”
어······?
그러고 보니, 이 귀여운 얼굴, 작은 체구,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신비함을 뿜어내는 그 눈동자까지······.
설마?
“오늘 아침 버스?!”
“······응, 나야.”
뭐야, 나야 이 사람을 기억한다고 해도 이 사람이 날 기억할 리가 없잖아······.
“절 어떻게 기억하셨죠?”
“······그야 맨 앞으로 나와서 날 빤히 쳐다봤으니까.”
그래서였나······.
“아, 근데 아침엔 어쩌다가······.”
“······내 소중한 게 부서져버렸어······.”
소중한······거?
“······내 부모님이랑 관련된 물건······.”
“아, 혹시 버스에 밟혀서······.”
“······응.”
그랬구나, 그래서 그런 차가운 눈으로 버스 기사를 노려본 거였어.
근데 어쩌다······.
“어쩌다가 떨어트리신 거예요?”
“······바람에 날아가버렸어.”
그럼 가벼운 거였나? 아니면 바람이 그렇게 셌던 건가?
아니지,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이건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잖아.
“그것 참 안 됐군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전 볼 일이 끝났으니 이만 가볼게요.”
“······한형석.”
“네?”
이 여자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보자 그 여자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내 명찰을 가리켰다.
아, 그렇구나. 나는 교복이었지, 참.
“······똑똑히 외워뒀어. 미산 고등학교 한형석.”
뭐야, 이 여자. 내 이름이랑 학교는 외워서 뭐 하려고.
뭐, 별로 상관은 없지만.
“딸칵-”
나는 문손잡이를 당겨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다시 문을 닫은 후에
아까 정희랑 헤어졌던 그 곳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자신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초조한 표정을 한 우리 학교 전교부회장께서 서 계셨다.
“서, 선배!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여기 있다, 남은 한 장.”
마지막 한 장을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그 마지막 한 장을 건네는 나를 보며 정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섞인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웃는게 예쁘네.”
“네?”
작은 목소리로 한 말이 다행히도 들리지 않았는지 정희는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웃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빨리 가자. 이거 중요한 서류라고 했잖아. 빨리 가져다 드려야지.”
“아, 네!”
밝게 대답하고는 돌아서는 정희의 뒤에서 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뭐, 저 녀석이 혼나지 않는건 다행이지만 수업을 꽤 많이 빼먹었다고······.
지금껏 못한 반항을 한 번에 다 한 느낌이군. 썩 좋지는 않지만.
“선배, 빨리 와요!”
“응, 가.”
뭐, 괜찮겠지. 지금까지 한 게 있으니.
나는 웃으며 나를 재촉하는 정희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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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선생님께 서류 봉투를 건네는 정희,
그리고 선생님은 그 서류를 받으시면서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 좀 늦었구나. 그럼 이만 집에 가보렴.”
“네, 안녕히 계세요!”
돌아서 나가는 정희를 보고 나도 따라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스스로 악하게 할수록 불이익이 늘어나는 법이다. 똑똑한 너니까 모르지 않겠지.”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그대로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작게 말씀하셔서 못 들었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불이익 따위······.”
그렇지만 두렵다는 것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선배!”
갑자기 내 뒤에서 무언가가 나를 밀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이런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았더니 역시나 정희였다.
“저 두고 어디로 가시려구요!
오늘은 감사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 이거 받아주세요!”
“응? 아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렇지만 선물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고맙게 받을게.”
나는 그 선물이 담긴 박스를 찬찬히 돌려가며 보았다.
음······. 납작한 원기둥 모양의 옅은 붉은색 상자였으며, 노란색 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선물은 집에 가서 뜯어보세요!”
선물을 뜯으려는 나에게 정희가 이렇게 소리쳤다. 뭐야, 궁금하게.
“알겠어.”
일단 준 사람의 말이니 들어야지. 혹시 줬다 뺐을 지도 모르니깐.
“근데, 늦었네.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게.”
종이를 찾는다고 동분서주하느라 어느새 시계는 8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밖은 이미 어둠이 태양을 가린 상태였다.
“괘, 괜찮지만 선배가 꼭 같이 가고 싶으시다면!”
“네네~ 그러시던가.”
나와 정희는 어둑해진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의도대로 이해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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