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핀은 핀이네요
핀의 경우, 자신의 목적인 '일족의 재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존재는 물론이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작중에서 줄곧 암시되었습니다. 로키와의 첫만남을 다룬 외전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왔고요.
우선, 핀이 대강 제노스의 존재에 대해 알아채게 된 본편 10권과 제노스 탈출전을 치룬 11권에서, 핀이 제노스와 대화가 가능하든 어쩌든간에 파룸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라면 거리낌없이 제노스들을 족칠 거라는 건 분명하게 나왔습니다. 정확힌, 헤스티아와 로키 간의 대화에서 간접적으로 암시되었죠. 그 시점까지 핀의 영웅을 향한 선망은 오라리오에서 몬스터의 위협을 크게 낮춤을 통해 비로소 이룩할 수도 있을 지 모르는 평화, 아니, 거기에 더해 주신 로키와 파밀리아의 동료들을 더한 것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대략 30년 정도 같이 지낸 로키가 제노스의 존재에 얘기하고 싸우지 말라고 권유한다면 핀은 바로 의절을 시전할 거라고 했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본편 11권과 12권 사이, 즉 외전 10권 후반부 시점에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됩니다. 핀은 여전히 명예에 목말라있고 극도로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즉시 파악하고 수단을 바꾸었습니다. 핀의 상황판단은 작중에서 체스와 비슷한 형태로 묘사되는데, 제노스 탈출전 시점에서 핀은 로키 파밀리아 단원들이라는 일부 말들을 가지고 제노스들이라는 적측 말들과 벨이라는 킹을 궁지에 몰아넣음을 통해 체크메이트에 성공하고 승리 직전까지 다가섰다면, 체스 대리랭을 시도하는 헤르메스와 장외 난입자와도 같은 아스테리오스의 등장을 통해 아예 체스판 자체가 엎어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판에서 벨의 명성이 급부상하면서 전세가 뒤바뀌자, 아예 자신의 색깔을 바꿔버리고 유리한 전세에 놓인 쪽으로 배신을 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죠. 흑에서 백, 백에서 흑과 같은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아직 상대편에 남아있는 말들을 회유해 끌어들이기까지 하는 상황입니다. 어찌 보면 몬스터를 확고히 적대하는 한쪽 편에 있던 상황에서, 어느 쪽에든 붙을 수 있는 회색분자로 바뀐 거죠.
말이 좀 두서없긴 한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이겁니다. 현재의 핀은 흑도, 백도 아닌 회색에 해당하고,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핀은 자신의 명예와 관련해서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아직 한 번 이상 편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분기점은 아마도 외전의 크노소스 공략이 될 테고, 이 과정에서 제노스와의 협력 관계에서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 일이 틀어지게 될 경우, 다시 한 번 벨과 적대하는 쪽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작가님의 성향대로라면 제우스와 헤라의 기조를 따라 완전히 우라노스의 계획에 협력하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