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뉘오의 정체에 대해서
소드 오라토리아 11권에서 에뉘오의 정체가 데메테르로 밝혀졌는데 의외로 여기 게시판에는 (이미 죽은) 디오니소스라고 하시는 진심으로 생각을 하는 건지 웃자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분을 비롯해 페이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네요. 뭐 저도 데메테르라고 결론짓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만.
왜 페이크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페이크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일단 후기에서 다음 12권에서 결착을 맺을 거라고 작가가 까발렸습니다. 복선의 회수가 잘 됐는지 불안하다면서 1권부터 준비해온 것이라고 대놓고 밝혔구요.
이 상황에서 데메테르도 페이크였습니다 라는 전개가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소드 오라토리아가 본격적인 추리물도 아니고. 오히려 대지의 여신으로서 식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데메테르가 레비스 측과 결탁하고 식인화를 비롯한 몬스터를 준비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습니다. 상업계 파밀리아인 데메테르 파밀리아의 판로를 이용했다면 항구로 식인화를 운반하는데 어디에도 들키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요. 대지모신은 풍요의 상징이지만 반대로 죽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데메테르의 위장은 그야말로 완벽했습니다. 신주로 만취하게 만든 디오니소스가 길드를 의심하고 성급하게 움직이게 해서 조사의 발목을 잡게 만들었고, 수완가인 로키와 헤르메스는 너무나도 타이밍이 좋게 나타나 협력을 요청하는 디오니소스를 에뉘오라고 의심하면서 식물의 전문가일 터인 데메테르를 의심은 커녕 자문을 구한다는 발상조차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식물의 전문가이기에 신주를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재료조차 소마와는 달리 자기 파밀리아에서 재배한 포도로 자급자족이었습니다.
크노소스를 이용한 거대한 덫은 데메테르의 용의주도함의 절정. 오라리오의 모험자들이 크노소스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유유히 세력을 늘려 오라리오를 급습할 수 있었고, 크노소스를 발견하고 열쇠를 손에 넣어 침입한 로키 파밀리아를 비롯한 파밀리아 연합은 신의 송환을 신호탄으로 데미 스피릿이 통째로 미궁을 집어삼켜 몰살시키려 했습니다.
제물이 된 디오니소스의 파밀리아는 전멸했고, 로키 파밀리아도 타나토스가 자결해서 탈출로를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디오니소스 파밀리아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겁니다.
그렇게 탈출하고 나서도 이계로 변한 크노소스는 지상에까지 진출하고 어떤 파밀리아도 돌파할 수 없는 철옹성이 되었고, 줄곧 디오니소스를 의심하던 로키와 헤르메스는 에뉘오의 정체에 대해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습니다.
타나토스가 로키를 탈출시켜주고 지나가던 소마가 로키한테서 자기가 만든 게 아닌 신주의 냄새를 맡는다는 변수가 없었으면 데메테르라는 답에 도달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이런데 상황증거 뿐이고 데메테르가 페이크? 그냥 데메테르는 에뉘오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 뿐 아닌가 싶네요. 아니 뭐 이렇게 써놓고서 다음 권에서 정말로 페이크였습니다 라고 나오면 내가 창피할 뿐이지만.
그 포도주 하나만으로 데메테르를 의심하는건 좀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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