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문학] 슬기의 인생.txt
슬기는 외로웠다.
초중고 모두 남들에게 주목 받아 본 적 없는 주변인으로 지냈으며
딱히 특별한 일이랄게 없었던 찐따 중의 찐따새끼였다.
그런 슬기도 남들처럼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술을 마셨고
알 수 없는 만능감이 솟아나 우스꽝스런 실수를 저지르기도했지만
어째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슬기에게 관심을 보였다.
성인이 되어 대학에 온 아이들은 찐따새끼를 봐도 괴롭히지않았다.
그저 영혼 없이 띄워주고 뒤에서 비웃고 우월감을 느끼며
넘어오지 못하도록 선을 긋고 적당히 지낼 뿐이었다.
슬기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관심에 묘한 쾌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호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슬기는
자신을 치켜세워주던 아이들을 친구라고 착각하고
은근슬쩍 무리에 섞이려고 했다.
찐따새끼랑 어울려주는게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대학생활을 원만하게 보내길 바란 아이들은
차마 단호하게 슬기를 거절하지 못하고 무리에 끼워주었다.
무리의 누군가 "미팅 있는데 너도 갈래?"
라고 지극히 예의상 물을 때마다 슬기는
자기도 빠질 수 없다며 눈치 없이 콜을 외쳤다.
초중고를 엄사옷만 입던 슬기는
미팅이란 말에 한 껏 들떠서
찐따같은 패션감각으로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고
그걸 본 아이들은 또 멋있다고 띄워줬으며
슬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우쭐해했다.
여자와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던 슬기는
그답지 않게 아무리 취해도 입이 얼어 조용했다.
다른 아이들이 아무렇지않게 웃고 떠들고
자연스럽게 여자들과 서로 스킨쉽도 하는 모습을 보며
슬기는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걔중에는 슬기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말을 걸거나
괴롭힐 생각으로 굳어있는 슬기에게
짖궃은 스킨십을 하는 여자도 있었다.
슬기는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집에 와서 혼자 그녀들과 망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20년 찐따 버릇이 어디가지 않았고
어느날부터 슬기는 술 기운이 잔뜩 오르면
여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으며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않고 분위기를 십창내기 일쑤였다.
찐따새끼라도 품어준 마음씨 착한 아이들었지만
결국은 참다못해 손절할 수밖에 없었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모두 조용히 슬기를 피했다.
하지만 슬기는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때부터 좆목무새가 되어 피해망상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같이 술 마셔줄 친구가 없을 뿐이지만 남자랑은 술 안 마신다는
측은한 자기방어로 자존심을 지켜나갔다.
정신을 못차린 슬기는 동기 선배 후배 가릴 것 없이
여학우들에게 들이댔으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이후로 슬기는 어떤 사람과도 만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외로움에 시달리며 츄잉에 글을 썼다.
동경하는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평생 말도 못 걸어볼 여자들과 술 마시며 놀던
슬기에게 있어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그때를 추억하고
본인이 그때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그때보다 더 추잡한 상상력을 더해
변함없이 더러운 망상을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슬기가 그리워하던 그때처럼
찐따새끼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