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임시정부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고 1925년에 탄핵당했지만, 1930년대 초에 반 이승만 세력이 약화되면서 임시정부에 복귀함.
임시정부에 복귀한 이승만은 우선 국제연맹에 전권대사로 한국의 독립 탄원하는 역할을 시작으로 완벽한 성공은 아니지만 여론을 일으키는데 성공하고 일본은 만주국이 미승인 되자 국제연맹 탈퇴까지 강행함.
이 때 이승만은 일본의 간도 참변과 관동대학살을 폭로하며 세계에 일본의 군국주의의 잔학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음.
이렇게 국제연맹에 전권대사로서 활약하다가 식당에서 프란체스카 여사 만나서 결혼한 것임.
1933년 11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출됨.
또한 1941년에는 임시정부 소속으로서 열심히 활약하는데, 주미외교위원장이자 전권 대표가 된 후 일본의 전쟁을 예언하듯 알려서 미국에서도 화제를 일으켰고, [일본내막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함.
그리고 미국에게 임시정부를 인정받게 하려고 했지만 루즈벨트 행정부는 소련의 스파이가 있을 정도라 "소련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안 돼."라며 거부하고, 이승만은 이 때문에 미국의 극동 담당자들을 "미국이 아니라 소련을 위하는 놈."이라는 평가를 내림.
1942년에는 일본인과 한국인을 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요구해서 일본 국적 없는 한국인들은 일본인들 취급하지 않겠다고 발표가 나오고(적성국 취급 안한다는 것) 그래도 여전히 일본인 취급하며 탄압과 차별이 있자 이것을 다시 막아냄.
또한 알타 회담 폭로로 미국과 영국에게서 한국의 독립보장을 다시금 언급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듬.
그리고 해방 이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임시정부의 마지막 주석은 김구가 아니라 이승만임.
즉,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이었고, 이미 임시정부 최고 지도자였음.
1948년 건국은 틀린 것이고, 이승만 대통령 역시 1948년에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발표했음.
하지만 건국 대통령이 이승만인 것은 사실임.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이 이승만이고 건국 대통령이라는 것은 임시정부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인게 팩트임.
임시정부의 시작시에 대통령, 끝날 무렵에 주석으로 최고 지도자였고, 그 상태로 그대로 정부수립한 대한민국 1대 대통령으로 이어짐.
1960년 이승만 하야 때도 괜히 4.19 혁명 당시의 시위대들조차도 "이승만 박사님. 만수무강하세요."라고 존경의 예를 표한 것이 아님.
비록 전쟁 때도 신성모 등 측근 관리를 못하고, 말년에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홀딱 넘어가게 한 박마리아가 비선실세로 다 해먹으면서 초고령이 된 이승만은 초창기의 총기를 잃어서(당시 70대는 지금 90대 급임.) 결국 4.19 혁명으로 하야하게 됐지만...
이승만이 독립운동가 시절 보여줬던 업적들은 공과 과를 비교하면 공 95:과 5 정도로 공이 압도적인 것이 사실임.
임시정부 때부터 줄곧 건국 대통령인 것은 정치 성향 떠나서 역사적 사실만 보면 그냥 팩트.
근데 이승만의 독립운동 시절의 화려한 업적들은 왜 보수라 하는 것들도 언급을 안 하는건지...
좌파들은 저 공로들을 두고도 괴상하게 폄하하기 바쁘고.
자칭 보수들은 민족진영 3영수 중 으뜸 위치인 최정상까지 간 독립운동 대해서도 언급 일절 없는게 독립운동 공적을 무시하는거 아닌가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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