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기주오복 화봉삼축(箕疇五福 華封三祝)’, ‘문신호령 가금불상(門神戶靈 呵噤不祥)’,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등이며, 대련을 보면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옛날 대궐에서는 입춘이 되면 내전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 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하였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의하면, 입춘이 되기 열흘 전에 “승정원에서는 초계문신(抄啓文臣, 당하문관 중에서 문학에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다달이 강독·제술의 시험을 보게 하던 사람)과 시종신(侍從臣)에게 궁전의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는데, 패(牌)로써 제학(提學)을 불러 운(韻)자를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 하였다. 춘련을 써서 붙이게 된 유래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입춘날에는 의춘(宜春) 두 자를 써서 문에다 붙인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춘련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입춘날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주사(朱砂)로 벽사문(辟邪文)을 써서 대궐 안으로 올리면 대궐 안에서는 그것을 문설주에 붙이는데, 이를 입춘부(立春符)라 한다. 입춘부의 글 내용은 후한(後漢) 때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에 진자(侲子, 아이 초라니)가 화답하던 말이니, 곧 “갑작은 흉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은 귀신을 잡아먹고 등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제는 재앙[咎]을 잡아먹고 백기는 꿈을 잡아먹고 강양과 조명은 함께 책사와 기생을 잡아먹고 위수는 관을 잡아먹고 착단은 큰 것을 잡아먹고 궁기와 등근은 함께 뱃속 벌레를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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